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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주혜의 C] 손끝이 맞닿는 순간, 생명을 느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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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움미술관, 티노 세갈 국내 첫 개인전
관람객은 전시 일부…몸짓·입·기억으로 경계 허물어진 예술 경험
호암미술관, 김윤신 합이합일 분이분일 회고전
나무가 바로 나…작가·재료 하나돼 또 하나의 작품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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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의 창조 [사진=네이버 지식백과]



"아담의 손가락에 채 닿기도 전에" <서양미술사>(예경) 310쪽 중.

거장 미켈란젤로(1475~1564)는 신과 아담의 검지가 막 닿을 듯한 찰나를 통해 위대한 창조의 순간을 표현해냈다. 그가 시스티나 성당 천장에 그린 '아담의 창조'는 전지전능한 신이 최초의 인간 아담에게 '생명의 불꽃'을 불어넣는 모습을 포착한다. 신이 검지 손가락을 통해 형상과 생명, 그리고 무한한 가능성을 인간에게 부여했음을 극적으로 그렸다.

E.H. 곰브리치는 저서 <서양미술사>에서 이 그림에 대해 "신의 전지전능함을 우리의 눈으로 볼 수 있게 만든 방법은 미술의 가장 위대한 기적 중 하나다"(310쪽)라고 평했다.

신은 미술의 기적, 즉 창조의 힘을 인간에게 건넸을까. 인류는 두 손과 열개의 손가락으로 문명을 층층이 쌓아올렸다. 손가락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면서 지능을 고도화하고, 도구를 만들고, 그림을 그리고, 글자를 썼다. 악수로는 연대의 역사를, 주먹으로는 갈등의 역사를 썼다. 그렇기에 손은 특별하다. 중세시대 사람들은 왕의 손길에 치유의 힘이 있다고 믿었다. 영국 찰스 2세의 손길을 받기 위해 신대륙에서 영국까지 건너오는 이들이 있을 정도였다. 왕의 손길은 엄마 손과도 닿아있다. 유년시절 '엄마 손은 약손'이 줬던 안정감을 생각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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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티' 포스터, 영화 '연인' 캡처, 히틀러의 나치경례.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사진=나무위키]



손에는 사랑, 신뢰, 위로, 평화, 돌봄, 권력, 폭력, 지배가 담겼다. 영화 '이티'(E.T.)에서는 외계인과 소년이 손가락을 맞대며 우정을 쌓고, 장자크 아노 감독의 영화 '연인'에서는 두 주인공의 손가락이 닿으며 치명적인 사랑이 시작된다. 부처의 손바닥이 평화와 자비를 전파했다면, 히틀러는 손바닥을 아래로 향하게 하는 '나치 경례'로 전체주의와 공포를 조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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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보스턴 다이나믹스 유튜브 영상 갈무리]



그리고 지금, 인류는 휴머노이드에게 인간의 정교한 손을 전수해주려 한다. 미국 빅테크는 물론이고 삼성, 현대차, LG 등 국내 주요 기업들이 로봇손 개발에 매달리는 것은 '아담의 창조'와 묘하게 겹친다. 훗날 미켈란젤로를 닮은 휴머노이드가 '아틀란티스의 창조' 혹은 '옵티머스의 창조'를 만들지도 모를 일이다.

인간의 손보다 휴머노이드의 손이 더 큰 주목을 받는 요즘, 리움미술관의 '티노 세갈'과 호암미술관의 '김윤신: 합이합일 분이분일'은 잊고 있던 아담의 손을 생각하게 한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티노 세갈은 손을 통한 교감과 손에서 손으로 이어진 문화를 경험하게 한다면, 김윤신은 자연과 하나된 손이 만들어낸 생명의 본질을 눈으로 직접 보고 느끼게 한다. 나뭇가지 위 새처럼 티노 세갈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리움미술관의 로비에는 나무도, 숲도 없다. 하지만 나무를 만질 수도 있고, 새의 지저귐도 들을 수 있다. 나무 몸통처럼 곧게 솟은 검은 기둥에 기대어 에너지를 흡수하는 듯한 해석자들은 군중 사이에 자연스럽게 뒤섞여 있다가 어느 순간 관객에게 다가가 손짓을 건넨다. 해석자와 관객은 손가락을 맞대며 손짓을 공유한다.

해석자의 손이 나뭇가지라면, 관객의 손은 나뭇가지에 앉은 새와도 같다. 손은 사진이나 영상을 찍기 위한 도구가 아닌, 서로를 연결하는 살아숨쉬는 매개가 된다. 손끝과 스마트폰이 아닌, 손끝과 손끝이 닿기에 티노 세갈의 작업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아닌 몸과 마음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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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티노 세갈은 ‘물질적 대상이 없는 예술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가’를 평생의 화두로 삼고 그 가능성을 증명해왔다. 그는 조각이나 회화 같은 물질을 남기지 않는다. 인간의 신체, 언어, 사회적 상호작용만으로 이뤄진 '구성된 상황'과 '해석자'들을 통해 자연과 인간, 그리고 예술이 경계 없이 어우러지는 경험을 선사한다. 관람객은 전시의 일부가 돼, 몸짓과 입 그리고 기억으로 티노 세갈의 작업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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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노 세갈, 포토 김제원. [사진=리움미술관]


티노 세갈은 최근 리움미술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예술은 함께하는 게임"이며 "미술이란 게임의 지속"이라고 말했다. "저는 실제 경험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요. 작가의 창작 의도란 일종의 도움일 뿐, 여러분이 작업을 느끼는 게 중요해요."

이번 전시에서는 리움미술관이 소장한 로댕의 작품 '키스'를 비롯해 미술사 속 다양한 키스 장면들을 참조해 라이브로 구현한 작업도 볼 수 있다. 남녀로 이뤄진 두 해석자는 서로를 껴안은 채 천천히 동작을 이어나간다. "제 작업은 과거와 연결되면서도 새로운 부분이 있어요. 키스란 행위는 미술사의 여러 작품에서 나타나죠. 미술사 안의 것들을 제 작업을 통해서 어떻게 이어갈 것인가를 고민했어요."

그의 '키스'는 야구처럼 이어질까. "전수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요. 5세 아이에게 야구를 가르칠 때는 책을 쥐어주는 게 아니라, 말과 몸으로 알려주죠. (미술관처럼) 인류 역사에서 오브제를 보여주는 것이 오히려 예외적인 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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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노 세갈 전시 포스터, 디자인 김영삼. [사진=리움미술관]


더하고 나눠 하나로…나무는 뻗어나간다 "내 손과 나의 감정이 나무와 하나로 연결되지요. 손을 떼는 순간, 완성된 것을 바로 세워놓고 보면 그제서야 내가 하늘에 닿고자 하는 나의 꿈을 토템적으로 구현했음을 발견해요." -김윤신, 나무의 혼, 아트인 컬처, 2023년 4월호 중

책 <형태의 문화사>(한길사)에 따르면 인간, 환경, 인공물, 문화현상을 포함하는 문명 전체는 나무처럼 가지가 뻗어나가는 분기형 구조를 따른다. 배아의 몸통에서 인간의 팔다리가 튀어나와 끝부분이 갈라지며 손가락이 솟아나듯, 뉴런 세포도 폐의 기관지도 나뭇가지 형태다. 강이 바다로 흘러드는 삼각주와 번개도 나무 형상을 취한다. 문명의 흐름도 마찬가지다. 돌도끼에서 시작된 인류의 걸음은 시행착오와 혁신을 거치며 수많은 갈래의 물질문화로 확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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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신,사진 전명은 [사진=호암미술관]



호암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김윤신의 작업 이념 '합이합일 분이분일(合二合一 分二分一)'도 이에 맞닿아 있다. 작가와 재료가 하나가 되어(合) 작품이라는 또 다른 하나가 탄생(分)하는 분산과 수렴의 형태를 취한다. 김윤신은 오랜 시간 나무를 살피고, 전기톱으로 나무를 들어내는 과정을 통해 통찰을 얻었다.

그의 조각에는 수많은 갈래가 모아졌다. 돌탑 쌓기, 한복 소매와 한옥 처마의 아름다움, 가톨릭신앙과 무속신앙, 남미의 웅장한 자연과 색색깔의 문화가 응축돼 있다.

김윤신은 지난 11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나무는 바로 나"라고 말했다. "어렸을 때부터 시골에서, 산밑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았어요. 그게 나예요. 나는 자연이에요."

티노 세갈과 김윤신의 전시 모두 6월 28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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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신 합이합일 분이분일' 1층 전시 전경 [사진=호암미술관]



아주경제=윤주혜 기자 jujusun@a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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