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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위기 원인 ‘병목 현상’ 주목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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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손성호 한국전기연구원 미래전략실장

최근 중동 지역에서 전쟁이 발발하면서 국제 에너지 시장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특히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유조선 운항에 차질이 생기면서 이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 좁은 해협으로는 페르시아만 주변의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연합, 카타르 등에서 생산된 많은 원유가 통과한다. 이러한 흐름에 문제가 생기자 국제 유가는 불안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며, 에너지 공급 불확실성은 세계 경제 위기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에너지 위기는 흔히 에너지가 부족해서 발생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지금 상황처럼 실제로는 생산량보다 이동 경로 문제 때문에 발생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석유가 충분히 생산되더라도 유조선 운항이나 파이프라인 운영에 문제가 생기면 수요처에 도달하지 못한다. 에너지 시스템 관리에서 중요한 질문은 “얼마나 많이 생산하느냐”뿐만 아니라 “어떻게 이동시키느냐”이기도 하다는 얘기다.

경영학과 산업공학에서 언급하는 생산관리나 공급망관리(SCM)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병목(bottleneck)’이라고 칭하며 중요하게 다룬다. 시스템의 어느 한 지점이 막히면 전체 흐름이 그 지점에 의해 제한되기 때문이다.

<더 골(The Goal)>의 저자이자 제약 이론을 제시한 엘리야후 골드랫은 이를 설명하며 시스템의 성능은 결국 가장 약한 고리에 의해 결정된다고 말했다. 시스템 성능이 병목 지점의 능력을 넘어설 수 없다는 뜻이다.

이 원리는 에너지 시스템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석유 산업에서 유조선 이동과 파이프라인이 중요하듯 전력 시스템에서는 전기를 이동시키는 전력망이 중요하다. 발전소가 충분하더라도 전기를 보내는 송전망이 부족하면 결국 수요처까지 전달할 수 없다.

유럽에서는 풍력과 태양광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지만, 송전망 확충 속도가 이를 따라가지 못해 혼잡이 심화하고 있다. 영국 북부와 스코틀랜드의 해상 풍력단지에서는 송전 용량 부족 때문에 발전기를 멈춰 세우는 일이 반복되기도 한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몇 년 전부터 제주도와 전라남도 지역에서 나타나고 있다. 풍력과 태양광 설비가 많이 증가한 상황에서 전력 수요보다 발전량이 많아지면 전력망 안정성을 위해 재생에너지 발전을 멈추는 출력 제한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전력 시스템은 어쩌면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물류 시스템 중 하나일지 모른다. 단지 이동시키는 것이 물건이 아니라 전기일 뿐이다. 전기는 대규모로 저장하기 어렵고 그에 따른 비용도 많이 들기 때문에 생산과 소비가 거의 동시에 이루어진다.

결국 에너지 시스템의 흐름을 결정하는 것은 생산량만이 아니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에너지 위기의 또 다른 이름은 부족이 아니라 병목일지 모른다. 해법 마련을 위한 연구가 필요한 시점이다.

손성호 한국전기연구원 미래전략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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