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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모델이 '굳이' 자기 장애 고백한 이유는? "죽고 싶다는 10대 여성들 살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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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혁 기자(mijeong@pressian.com)]
여전히 장애가 욕설로 사용되거나 약점이 될까 숨기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당당히 자신의 장애를 드러내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드라마, 유튜브, 연극, SNS 등 다양한 분야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며 대중의 편견을 깨부수고 있다. <프레시안>은 장애를 소재로 대중문화 활동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 그들이 살아온 과정, 활동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을 들어 봤다. 편집자

금발에 눈에 띄는 복장을 한 젊은 여성이 지하철 교통약자석에 앉았다. 노인, 장애인, 임산부 등을 위한 자리에 건장해 보이는, 놀기 좋아할 것 같은 청년이 앉아 있으니 어색했다. 그는 자신의 모습을 촬영한 영상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며 "노약자석에 앉으면 욕 먹는 장애인인 나"라고 소개했다. 본인도 교통약자에 해당하지만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 오해를 자주 받는단 내용이었다.

논쟁의 여지가 많아 보이는 이 영상은 게시 10여일 만에 1400만 조회수를 기록했다. 영상에는 "장애 팔이", "장애가 자랑이냐" 등 장애를 드러내는 것 자체를 비난하는 악성 댓글이 여럿 달렸다. 영상 속 여성이 과거 히말라야 산맥을 등반했었다며 "이렇게 건강한 사람이 어떻게 장애인이냐"라고 의심하는 글, 춤을 추고 술을 마셨었다며 "장애인이라면서 비장애인보다 훨씬 잘 산다"고 조롱하는 글도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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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교통약자석에 앉은 모델 장보람 씨 영상에 달린 댓글ⓒ인스타그램 갈무리



온갖 비난을 받은 이 여성은 모델이자 인스타그램 인플루언서로 활동하는 장보람(활동명 라미·34) 씨다. 장 씨는 지난달 중순까지만 해도 자신이 장애인임을 밝히지 않은 채 모델 활동을 해 왔다. 겉으로는 장애를 찾아보기 어려웠기에, 평소에는 장애를 이유로 공격받을 일도 없었다.

하지만 장 씨는 해당 영상을 기점으로 자신의 장애, 고도 척추측만증(척추변형장애)을 미디어에 가감 없이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는 최근 척추측만증 장애인이 받는 오해, 장애로 인해 발생하는 고통, 척추측만증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패션 등 당사자의 공감을 사면서도 대중의 궁금증을 해소하는 영상을 연달아 올리고 있다.

지난 6일 서울 마포구 자신의 사무실에서 <프레시안>과 만난 장 씨는 모델 활동을 하다 척추측만증을 고백하게 된 이유를 묻자 예상치 못한 답변을 내놨다. 애초부터 척추측만증과 관련한 정보를 공유하는 콘텐츠를 제작하고 싶었으며, 모델과 인플루언서 일은 활동 기반을 다지기 위한 사전 작업이었다는 것이다.

또한 장 씨는 자신의 장애를 드러낸 영상으로 받은 비난에 대해 아무렇지 않아 했다. 도리어 "폭발적인 조회수와 수많은 댓글을 보면서 '내 뜻대로 됐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많은 사람들에게 닿고자 비난을 감수할 각오로 제작한 영상들이었기 때문이다. 즉, 지금까지의 일들 모두 장 씨의 계획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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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도 넘는 만곡도를 보이는 장보람 씨의 척추. ⓒ장보람 제공



장 씨는 현재 만곡도가 50도 넘는 고도 척추측만증을 갖고 있다. 이는 지체장애인 판정을 받을 수 있을 정도로 심각한 장애다. 남성의 경우 병역판정검사에서 5급 판정을 받아 현역에서 제외될 수 있다. 장 씨는 유년 시절 특발성 척추측만증(원인을 알 수 없이 발생한 척추측만증) 진단을 받은 뒤 정기검진과 교정기, 운동을 장기간 병행했음에도 증세 악화를 막을 수 없었다.

장 씨는 20대까지도 자신이 장애인이라는 인식을 하지 못했다. 종종 찾아오는 통증으로 오래 걷거나 서 있기 어렵지만, 주기가 긴 편이라 조금만 조심하면 일상생활이 가능해서였다. 하지만 2021년 대학병원에서 척추측만증으로 인한 장애 진단을 받은 뒤부터는 자신의 장애를 조금씩 인지하기 시작했다. 해가 갈수록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

장애 진단과 함께 병원으로부터 수술을 고려하라는 조언을 들은 장 씨는 관련 정보를 찾기 위해 척추측만증 커뮤니티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인터넷 카페와 단체채팅방 등 곳곳을 찾아다녔지만 척추측만증 수술과 관련한 정보는 많지 않았다. 별 도움이 되지 않아 커뮤니티를 나가려는 찰나, 장 씨의 눈에 10대 여성들의 고민이 보였다.

"척추가 20~30도 기울어진 10대 친구들이 옷을 자유롭게 입지 못하는 것 때문에 죽고 싶다는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하는 거예요. 지금 생각해도 소름이 끼칠 정도인데, 한편으로는 왜 그렇게까지 화가 나는지 잘 알아요. 저도 중학생 때부터 측만증으로 원하는 옷을 입지 못할 때면 고민이 많았거든요."

과거의 자신을 보는 듯한 생각에 장 씨는 10대 여성들의 고민을 적극적으로 해결해 주기 시작했다. 척추측만증으로 인해 상체가 틀어진 모습을 보완할 수 있는 옷들을 소개하고, 필요하면 직접 착용한 사진을 보여줬다. 10대 여성들은 '익명의 척추측만증 선배'에게 개인 메시지로 자신의 사진을 보낼 정도로 절실했고, 조언 하나하나에 큰 희망을 얻었다.

"그때 결심했어요. '이건 사람을 살리는 일이다. 척추측만증이 있어도 남과 똑같이 행동하고 예쁜 옷을 입을 수 있다는 걸 보여줘야겠다'고요. 의사만 사람을 살리는 게 아니잖아요? 제가 10대일 때 그런 어른이 필요했거든요, 같은 시기를 겪어낸 어른으로서 선택사항이 아니라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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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보람 씨가 인스타그램에 게시한 척추측만증 패션 콘텐츠들ⓒ장보람 제공



장 씨의 결심에 행운이 따랐다. 가죽공예 사업을 하느라 자신의 모습을 외부에 알릴 기회가 적었던 그에게 2023년 우연히 모델 제의가 들어온 것이다. 장 씨는 모델 활동을 통해 멋진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준 뒤 척추측만증 콘텐츠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반전 효과를 주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겠다는 판단이었다. 같은 시기 인스타그램 활동을 활발히 해 팔로워 수를 만 명 단위로 늘렸다. 이 또한 장애 콘텐츠를 제작했을 때 파급력을 키우기 위한 전략이었다.

2년 넘게 준비한 끝에 장 씨는 지난달 말 자신의 척추측만증을 담은 영상을 공개하기 시작했다. 예상대로 장 씨의 영상에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반응을 보냈다. 첫 공개 후 일주일 동안은 매일 수백~수천 개의 메시지가 와서 휴대폰을 사용하기 어려웠다. 대부분은 비슷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응원과 고민 상담이었다. 비난도 여럿 있었다. 이는 장애에 대한 편견 때문이었다.

"당시 모델 촬영을 끝내고 허리가 너무 아파서 교통약자석에 잠시 앉았었어요. 이 장면을 보고 비난할 사람들이 많다는 걸 있었지만, 그렇게 해야 사람들에게 빠르게 닿을 수 있다고 생각해 인스타그램에 영상을 올렸어요. 그래서 악플은 상관없었는데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많아 답답하더라고요. 등산을 할 수 있는 사람이 교통약자석에 앉는 게 말이 되냐는 댓글이 있었는데, 등산할 수 있다고 해서 장애가 없는 건 아니잖아요? 제가 등산할 때 의족을 차고 있던 분도 계셨어요. 그분이 교통약자석에 앉는다고 누가 욕하겠어요. 비장애인보다 훨씬 더 재밌게 산다는 댓글도 있었어요. 장애인은 춤추고 술 마시며 즐겁게 살면 안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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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추측만증과 관련한 오해와 편견을 푸는 목적의 장보람 씨 영상ⓒ인스타그램 갈무리



척추측만증 장애인을 향한 오해와 편견은 장 씨에게 책임감과 사명감을 느끼게 했다. 이에 척추측만증 장애인의 패션과 일상을 소개하는 콘텐츠에 더해 대중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영상까지 제작하기로 했다. 척추측만증은 자세를 똑바로 하지 않아서 생기는 게 아니라는 것, 가장 친한 친구의 결혼식에 가지 못했을 정도로 통증이 심할 때가 있다는 것, 수술을 강요하는 건 당사자에게 무례한 행동이라는 것 등이다.

장 씨는 여전히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말하기 조심스러워한다. 우리나라에서 척추측만증을 소개하는 당사자가 극히 드물어 자신의 발언이 과대 대표될까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혹여라도 잘못된 정보를 제공할까 그는 영상 제작 전 해외 논문을 찾아보곤 한다.

그럼에도 장 씨는 자신의 장애를 밝히고 대중과 소통하는 데 큰 보람을 느낀다. 더욱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유튜브와 틱톡 계정도 개설해 둔 상태다. "장애 팔이"라는 비난을 들어도 상관없다. 자신에게 고민을 털어 놓던 10대 소녀들을 비롯해 많은 당사자들이 장애를 스스럼없이 공유하는 영상을 보고 희망을 갖길 바라기 때문이다.

"척추측만증을 다루는 모델 겸 인플루언서가 된 게 참 좋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제가 '통로'가 되어서 많은 사람들이 정보를 주고 받을 수 있게 하는 일이니까요. 솔직한 나를 보여줌으로써 10대 친구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가능성을 주고 싶어요. 당사자가 아닌 사람들에게는 편식하는 친구가 있으면 그 음식을 피해주고, 잘 걷지 못하는 친구가 있으면 같이 쉬어주듯 척추측만증을 대해 달라는 말을 하고 싶어요.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그 병이 가지고 있는 무게만큼만 이해해주고 당사자를 대해주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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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서울 마포구 자신의 사무실에서 <프레시안>과 만난 장보람 씨. ⓒ프레시안(박상혁)



[박상혁 기자(mijeong@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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