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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사남’ 오랜만의 천만 영화…‘극장 문화’ 되살아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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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계 2년 만에 훈풍…“아이들과 함께 보면 좋을 역사 영화”
경향신문

영화 <왕과 사는 남자>에서 단종(왼쪽, 박지훈 분)과 엄흥도(유해진 분). 쇼박스 제공


[주간경향] 광주에 사는 A씨(41) 부부는 지난 3월 7일 초등학생 자녀 2명과 함께 극장에서 <왕과 사는 남자>를 관람했다. A씨는 “영화관에 자주 가지는 않고 평소 <인사이드 아웃 2>나 <주토피아 2>처럼 관심 있는 영화의 속편 정도만 보는데, <왕과 사는 남자>는 아이들이 보면 좋을 역사 영화이기도 하고 ‘천만 영화’라고 해서 가족이 함께 보게 됐다”고 말했다. A씨는 “단종과 마을 사람들의 교류가 유쾌하면서도 감동적이었고, 유해진 배우의 감정 연기에 몰입이 됐다”며 “아들은 ‘역사 공부할 때 너무 어둡고 슬픈 내용을 조금 재밌게, 웃으면서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고 했고, 딸은 ‘단종이 잘 생겼다’는 관람평을 남겼다”고 전했다.

장항준 감독이 연출한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개봉 31일 만인 지난 3월 6일 관객 1000만명을 동원했다. <파묘>(2024년·1191만명), <범죄도시 4>(2024년·1150만명) 이후 약 2년 만에 ‘천만 영화’가 나왔다. 한국 영화계에 오랜만에 불어온 훈풍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극장을 찾는 관객 발길이 줄어들고,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로 영화를 보는 이들이 늘면서 한국 극장가는 한동안 침체기를 겪었다. 올 초 <만약에 우리>가 기대 이상으로 흥행한 데다, <왕과 사는 남자>가 연이어 1200만명이 넘는 대규모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모으면서, 이를 계기로 ‘극장 문화’가 살아날지 기대를 모으고 있다.

<왕과 사는 남자>는 계유정난 이후 왕위에서 쫓겨난 단종(박지훈 분)이 유배지인 강원 영월 산골에서 촌장 엄흥도(유해진 분), 마을 주민들과 교감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단종의 생애 마지막 시간을 영화적 상상을 더해 만들어내면서 관객들의 호응을 얻어냈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관객에게 익숙한 사극 형식의 드라마 영화이면서, 한국인이 좋아하는 이야기인 계유정난을 소재로 삼되 새로운 관점에서, 수양대군이 아닌 단종을 중심으로 그렸다는 점이 흥행의 주요한 이유였던 것 같다”며 “한국인은 웃음도 주면서 감동도 주는 ‘휴먼 드라마’를 좋아한다는 것이 다시 확인됐다”고 말했다.

‘천만 관객’의 의미

배급사 쇼박스의 조수빈 홍보팀장은 “단종과 엄흥도의 이야기가 감독의 따뜻한 시선으로 연출이 잘 됐고, 설 명절 직전에 개봉해 가족들이 같이 볼 만한 영화로 자리 잡아서 다양한 연령층이 보다 보니 폭발력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로 B씨(44)는 “평소 영화관을 자주 가는 편은 아닌데 설 연휴에 아이와 함께 볼 만한 영화를 검색하다가 마침 초등학교 5학년 아들이 최근 한국사 공부를 하면서 역사에 관심이 많아져 <왕과 사는 남자>를 같이 보게 됐다”고 말했다. 조 팀장은 “영화를 본 사람들이 영월에 가본다든지, 단종 관련 책을 본다든지 극장 밖에서도 이야깃거리가 되고, 2차 소비로 이어진 측면도 관심이 길게 이어진 동력이 되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작품에서 파생된 외부 효과가 작용한 것이다. 한 제작사 관계자 C씨는 “‘천만 영화’가 되려면 300만~500만 관객 동원 다음에 어떤 사회현상이 나타나야 한다. 일단 뉴스에 나오면 화제에서 소외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생기면서 관객이 몰린다”고 말했다. 하재근 평론가는 “요즘은 뭔가 뜬다 싶으면 다 그쪽으로 달려가는, 유행에 반응하는 강도가 굉장히 강하게 일어나는 경향이 있다”며 “‘두쫀쿠’(두바이 쫀득 쿠키) 열풍과 마찬가지로 이 영화도 대중에게 유행이라고 인지가 된 측면이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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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과 사는 남자>는 한국 극장가에서 역대 34번째, 한국 영화로는 25번째 ‘천만 영화’다. 이재명 대통령은 엑스(X)에 “영화인들의 뛰어난 상상력과 이야기의 힘 그리고 이를 아낌없이 응원해주신 국민 여러분께서 함께 만든 값진 결실”이라고 남겼고,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인스타그램에 “<왕과 사는 남자>는 겨울처럼 꽁꽁 얼어붙었던 우리 영화의 실낱같은 ‘희망’이자 따사로운 ‘축복’”이라고 썼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은 각각 “영화 산업 도약”을 언급하며 제도·정책 지원에 나서겠다는 논평을 내놨다. 이 정도면 국가적 차원에서 ‘천만 영화’를 기다려왔다는 인상마저 준다.

그도 그럴 것이 최근 한국 영화산업이 위축되면서 위기감이 팽배했기 때문이다. 장항준 감독은 지난해 12월 제작보고회에서 “요즘 한국 영화계가 그렇게 좋지 못하다. 우리끼리도 ‘우리가 책임감을 가지자’, ‘좋은 기회로 작품에 들어가게 됐는데 우리가 다시 한번 붐업을 할 수 있는 영화가 돼보자’ 이렇게 얘기를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지난 2월 27일 발행한 ‘2025년 한국 영화산업 결산’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극장 전체 매출액은 1조470억원으로 전년 대비 12.4% 감소했다. 전체 관객 수는 1억609만명으로 전년 대비 13.8% 줄었다. 매출액과 관객 수는 2년 연속 하락했고,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인 2017~2019년 평균과 비교하면 매출액은 57.3% 수준, 관객 수는 48.0%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천만 영화’가 나오지 않은 것은 코로나19 유행 기간(2020~2021)을 제외하면 2012년 이후 처음이다. 외국 영화에 비해 한국 영화 성적이 더 안 좋았고, 코로나19 유행기를 지나 가장 안 좋은 성적표를 받아든 게 바로 지난해(한국 영화 수익률 -33.1%)였다.

올해 들어선 분위기가 사뭇 달라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31일 개봉한 정통 멜로 영화인 <만약에 우리>(손익분기점 약 110만명)가 260만명을 동원했다. 같은 날 개봉한 <신의 악단>(손익분기점 약 70만명)은 저예산 영화로 종교적 색채가 강하다는 평가에도 현재 142만명 넘는 관객이 극장을 찾았다. 이런 가운데 ‘천만 영화’가 나와 영화계는 반기는 분위기다. 조수빈 팀장은 “영화를 보러 나올 준비가 돼 있는 관객들이 있다는 확인을 했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극장 가는 문화 살아날까

영화계가 다시 활력을 찾을 수 있을까. 서지명 CJ CGV 커뮤니케이션팀장은 “코로나19 유행 이후 사람들이 ‘OTT용 영화’와 ‘극장용 영화’를 구분하는 시선이 있었는데 감정을 움직이는 작품들은 극장에 와서 같이 웃고 울고 감정을 나누는 게 중요하다라는, 극장의 역할을 다시 한번 관객들한테 인식시켜준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이어 “극장 공간에서의 이런 경험이 중요한데, 이게 앞으로 극장을 다시 찾을 수 있는 촉매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좋은 신호로 보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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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개봉해 기대 이상의 흥행 성적을 거둔 영화 <왕과 사는 남자>, <만약에 우리>, <신의 악단> 포스터(왼쪽부터). 쇼박스·CJ CGV 제공


윤하 영화진흥위원회 정책본부장은 “지난해 상반기 개봉작들의 성적이 저조하면서 영화계가 전반적으로 위축됐다면 올해는 상반기에 흥행작이 나온 게 고무적이다. 개봉 예정작들에도 기대작이 꽤 있는 데다 극장 관객이 있다는 걸 확인한 상황에서 투자배급사들도 홍보나 마케팅에 더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영화산업이 조금은 좋아지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말했다.

다만 영화산업을 코로나19 유행 이전과 비슷한 수준으로 다시 살릴 수 있을지에 대해선 여러 우려가 존재한다. <왕과 사는 남자>의 흥행을 계기로 “볼 만한 영화, 재밌는 영화가 나오면 관객이 극장에 온다”는 말이 입증됐다고도 하지만, 코로나19 및 OTT의 영향으로 최근 영화 산업의 구조적 어려움도 노출됐다. 투자배급사들은 개봉한 영화에서 회수한 자금을 새로운 영화에 다시 투자하는 방식으로 운영해왔는데, 영화 관객이 줄자 신규 작품 투자를 급격히 줄였다. 제작 편수가 줄었고, 고예산 영화 제작도 어려워졌다. 제작비 규모가 곧 흥행과 직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큰 규모의 예산이 소요되는 액션, 사극, 판타지 등의 장르 영화가 나오기 어렵게 된 것이다.

‘문화가 있는 날’ 매주 수요일로 확대

극장 관람 문화 자체도 변화가 있었다. 제작사에서 일하는 C씨는 “과거에는 관객이 영화관에 가서 선호하는 작품을 골라 보는 문화가 있었다면 요즘은 ‘극장에서 인기가 있다’라는 평가가 있어야 관객이 영화관을 찾는다”며 “1등 영화만 보는, 쏠림 문화가 점점 심해져서 다양한 영화가 고루 관객의 선택을 받기 어렵다”고 했다. 영화계에서는 류승완 감독의 <휴민트>(손익분기점 약 400만명, 12일 현재 누적 관객 수 194만명)의 성적이 예상보다 좋지 않은 점이 쏠림 현상을 반영한다고 보기도 한다.

쏠림 현상은 극장이 특정 영화만 집중 상영하는 ‘스크림 독과점’의 영향이라는 지적이 있다. 또 극장 가는 전체 관객 모수가 줄어든 영향이 크다. 연간 관객 1인당 영화 관람 횟수는 2019년 4.2회에서 2025년 2.08회로 절반으로 줄었다. 과거보다 극장에서 영화를 덜 보게 된 이유로 볼 만한 영화의 감소, 영화 이의외 다양한 문화생활 확대, 그리고 비싼 영화관람료 등이 꼽힌다. 코로나19 유행 당시 멀티플렉스 극장들이 일제히 영화표 가격을 인상(주말 성인 관객 기준, 2019년 1만2000원→2022년 1만5000원)하면서 “영화 보기 비싸다”는 인식이 생겨버렸다는 지적이 있다. 영화관람료와 관객 수의 상관관계도 확인된다. 정부는 지난해 7월 영화 관람 활성화를 위해 정상가보다 6000원 저렴하게 볼 수 있는 할인권을 배포했다. 영진위에 따르면 지난해 매출액 기준 흥행 2~4위 영화가 할인권 배포 시기에 상영됐던 영화들이었다. 한 극장 관계자는 당시 경영상의 어려움으로 인상을 결정했지만, 인상 속도가 빨랐다는 점은 인정했다. 다만 마지막 인상한 때로부터 3년 넘게 관람료 변동이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영화계는 영화 산업의 부흥을 위해서는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고 본다. 윤 본부장은 “영화 제작부터 개봉까지 최소 2년은 걸린다. 작년에 성과가 안 좋아서 신규 투자가 부족했기 때문에 올해 영화 산업 성적이 좋더라도 내년에는 또 그렇지 않을 수 있다”며 “‘천만 영화’ 2편보다 200만~300만 영화 10편이 낫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둘은 영화를 보는 관객층이 다르다. 영화의 다양성을 보장하는 지원은 그것대로, 또 흥행이 크게 될 영화 제작에 산업적인 측면에서 어려움이 있다면 그 또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제작비 등 여러 지원을 통해 씨앗을 뿌려놓고 지속해나갈 수 있게끔 해야 한다”고 했다. 정부는 매달 마지막 주 수요일에 진행했던 할인 제도인 ‘문화가 있는 날’을 4월부터 매주 수요일로 확대 시행한다. 국회를 중심으로 ‘홀드백’(영화가 극장에서 개봉한 후 OTT 등에 공개될 때까지의 유예기간) 제도화를 두고 논의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제작자와 창작자들이 중심이 돼 발족한 ‘영화산업 위기극복 영화인연대’ 측은 “멀티플렉스 3사(CJ CGV·롯데시네마·메가박스)가 영화 관람료를 올려놓은 뒤, 통신사 제휴 할인 등으로 ‘객단가’(관객 1명이 실제 영화관에서 낸 돈)는 떨어뜨려 제작사나 투자배급사가 가져갈 몫이 줄어들었다”며 멀티플렉스가 영화관 수익을 투자·배급사·제작사에 분배할 때의 정산 내역을 공개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제작사 하하필름스의 이하영 대표는 “영화 관람은 문화 향유권을 보장하는 공공재 성격이 있다”며 “OTT 산업이 커지는 동안 제도적으로 무방비 상태였고, 상영은 물론 투자배급도 하는 멀티플렉스들은 투자를 줄여버렸다”고 했다. 이 대표는 “정부 지원은 무한히 해달라는 게 아니라 바닥을 친 상황이기 때문에 마중물 정도의 지원을 해달라는 것”이라며 “멀티플렉스의 수익 분배 정산 내역 공개 등 제반 환경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또 일자리를 잃은 현장 노동자들이 영화판을 많이 떠났는데, 인재 유입이 있어야 영화계가 살아날 만한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김향미 기자 sokh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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