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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어야했고 숨겨야했기에…낯선 ‘처음’은 서툴지만 더 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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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욕망을 향한 ‘직진’
장애인들 소개팅 다룬 SBS <내 마음이 몽글몽글 - 몽글상담소>
경향신문

SBS <몽글상담소> 예고편의 한 장면. SBS 제공.


2013년부터 우리 사회의 연애 담론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독립 잡지 <계간홀로>를 만들고 있다. 잡지를 발간한 지 5년째 되던 해, 지인에게 자유 주제로 청탁했던 원고가 들어왔다. “왜 나한테는 고나리 안 해주는데요?”라는 제목의 글은, 여동생이 결혼 적령기에 들어서자 이런저런 연애 잔소리를 하는 친척들이 자신에게는 왜 아무 말도 하지 않냐고 물었다. 필자는 그 질문을 몰라서 한 게 아니다. 그는 여성에게 가해지는 온갖 규범과 족쇄가,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자신을 비켜나가는 것을 평생 지켜보며 자랐다. 연애와 결혼, 출산 역시 사회가 ‘그렇게 해도 된다’라고 판별한 사람들에게만 의무이자 강요로 작동한다. 연애‧결혼‧출산 3종 세트를 평범하고 행복한 삶의 전형으로 취급하는 사회에서 그것은 자유가 아니라 다른 형태의 차별과 배제다. 3월 8일 처음 방송된 <내 마음이 몽글몽글-몽글 상담소>(SBS, 이하 <몽글상담소>)는 지금껏 세상이 필사적으로 외면했던 장애인의 사랑과 욕망이라는 주제로 직진한다. 이효리‧이상순이 멘토로 출연하여 발달장애 출연자들이 소개팅하는 과정을 이끈다. 20대 발달장애 청년의 가족이기도 한 고혜린 PD는 그 자신 역시 동생의 연애를 ‘존재하지 않는 일’처럼 여겼다며 기획 의도를 밝힌다. “생각해 보지 않는 영역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취급된다.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겨지면 당사자 역시 스스로 포기하게 되는 지점이 생긴다.”

3부작인 <몽글상담소> 1화의 제목은 <나의 처음이 되어줄래요?>. 이효리와 이상순이 출연자 지현‧지훈‧지원을 따로따로 만나 인사를 나누고 이상형과 특성을 조사한다. 출연자 섭외를 위해 제작진은 500여 명이 넘는 지원자들과 미팅을 진행했다고 하는데, 장애청년들의 연애를 향한 관심이 뜨겁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예술적 재능이 풍부한 지현은 오페라 가수나 모델을 포함한 N잡러다. 본인의 키가 크기 때문에 키 큰 남자가 소개팅에 나왔으면 좋겠다고 웃는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지훈은 말 타는 것을 좋아하는 바리스타다. 낯선 곳에 가면 긴장되고 두려워하지만, 소개팅이라는 새로운 사건을 기대하기도 한다. 다운증후군의 지원은 배우로서 활동 반경을 넓혀가는 중이며 와인을 좋아한다. 로맨틱한 만남을 꿈꾸며, 이효리와의 만남에서 ‘화통한 스타일’을 좋아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몽글상담소>는 장애 청년을 이름과 얼굴, 직업과 개성을 지닌 개인으로 호출하며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은 마음에 주목한다. 지훈은 ‘자기 세계에 갇힌다’라고 하는 자폐지만, 사람들과 연결되고 싶은 욕구가 있다. “자폐가 없으면 사람들과 이야기가 잘 통하고 이상해 보이지 않을 수 있어서 좋을 것 같다.” 지원은 학창 시절 장애로 따돌림당했던 경험 때문에 누군가에게 먼저 친구가 되자고 전화번호를 묻는 행동을 하지 못한다. 연애가 없어도 삶은 완전할 수 있지만, 선택권 없이 친밀감의 기회를 박탈당하면 외로움을 느끼는 것이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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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몽글상담소> 방송의 한 장면. 유튜브 ‘우와한 채널’ 갈무리


세 사람은 소개팅 장소까지 가는 길을 사전답사하고, 어떤 대화를 나눌지 연습하며 소개팅을 기다린다. 이 과정은 독립을 의미한다. 본질적으로 연애는 독립이 필요한 행위다. 소속된 집단과 ‘같이’ 할 수 없고, 뿌리 내린 곳에서 벗어나서 낯선 사람과 새로운 관계를 맺어야 한다. 친밀하고 독점적인 관계에서 친구, 아들, 딸, 누나, 동생일 때와는 다른 자아가 등장한다. 그 사회에서 통용되는 관습이나 역할놀이가 요구되기도 한다. 그래서 연애가 성장과 성숙의 지표이기도 한 것이다. 장애인, 그중에서도 특히 발달장애는 실제 나이 여부와 무관하게 ‘어리고 미성숙한’ 존재로 인식된다. 장애인에게 친절하지 않은 세상의 설정값은 보호라는 명목의 통제 외의 방식을 허용하지 않는다. 출연자들 역시 항상 가족과 함께였다. 바깥세상은 위험하니까. 하지만 소개팅을 계기로 출연자들은 지금껏 허용되지 않았던 처음의 영역에 도전한다. 지현은 가족 없이 혼자 길을 찾아가는 것은 처음이라며, 소개팅보다 더 떨린다고 말한다. 지훈은 혼자서 운전해서 가는 동안 어머니가 다른 차를 타고 현장에 동행하는 줄 알았다가, 어머니는 집에 있다는 말을 듣자 불안해한다. 지현의 소개팅 상대로 나온 국가대표 수영선수 인국은 평생 집과 수영장만 오갔는데, 낯선 장소에서 누군가와 대화를 나눈 것 자체가 처음이다. 출연자들은 길을 헤매기도 하고, 너무 긴장한 나머지 소개팅을 빨리 끝내기도 하면서 처음을 치러낸다.

지현과 지원의 경우 첫 소개팅은 다음의 만남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그러나 누군가를 만나보고, 소통하고, 상대의 마음을 예측하고, 거절하거나 거절당하는 과정이 모두 삶에 꼭 필요한 경험이다. 지현은 긴장한 인국을 상대로 눈높이를 맞춰서 대화를 이끌고 “자꾸 하다 보면 익숙해져요. 사실 저도 인간관계가 그렇거든요.”라며 다독인다. 가족에게는 언제나 걱정스러운 막내인 지현이 강인함과 다정함을 발휘하는 순간이다. 지현 역시 혼자서 소개팅 장소를 찾아오는 일은 어려웠지만, 이렇게 낯선 사람과 능숙하게 대화하기까지 많은 시행착오와 경험을 겪었을 것이다. 소개팅의 로망이 앞서는 지원에게 이효리와 이상순은 “다음에는 이걸(거리감 조절하는 법을) 얘기해줘야겠다.”라고 말한다. 서툰 처음을 경험해야 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상대와 어떻게 맞추어 나갈지 알 수 있다. 예고편에서 세 사람은 각자 마음이 통하는 상대를 만나 조금 더 내밀한 관계 맺기를 시도한다. 그 과정은 설레고도 괴로우며, 이전과는 다른 차원의 문을 연다. 3화가 끝난 후 세 사람이 지속적인 만남을 이어갈 상대를 찾지 못한다고 해도 이 탐색과 모험의 서사가 모두 무의미하다고 할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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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몽글상담소> 방송의 한 장면. 유튜브 ‘우와한 채널’ 갈무리


<몽글상담소>를 우려하는 시선도 일리는 있다. 장애청년들의 신원이 노출되면 위험해질 수 있다는 의견과, 지적장애 아동을 집단으로 강간하고도 가해자가 떡볶이를 사줬으니 성매매라고 판결하는 세상에서 장애인의 연애는 너무 안일한 발상이라는 비판이 그것이다. 실제로 장애여성은 이중적인 착취와 폭력의 위험에 노출되고, 장애 가족 혹은 당사자로서 <몽글상담소>가 불편할 수 있다. 그러나 장애인 대상 범죄를 예방하고 엄격하게 대처하는 정의와, 장애 당사자의 사랑과 성적 자기 결정권을 존중하는 인식은 서로 충돌하거나 공존할 수 없는 개념이 아니다. 2022년 방영한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ENA)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여성 변호사 우영우(박은빈 분)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우영우와 이준호(강태오)의 러브 라인과, 10화 ‘손잡기는 다음에’는 장애여성의 성적 자기 결정권에 대한 다양한 논의를 동반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 여성은 연애할 수 있을까? 우영우는 주인공이고, 이준호는 다정하고 올곧은 인물이기에 두 사람의 러브 라인은 조심스럽고 섬세하다. 시청자는 마음 졸이면서도 우영우의 사랑을 응원할 수 있다. 한편, 10화의 문제의식은 훨씬 까다롭다. 지적장애인 여성 신혜영(오혜수)을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비장애인 남성 양정일(이원정 분)은 연애 관계였다고 주장한다. 시청자는 드라마라는 가상의 영역에서나마 ‘정의 구현’을 기대하게 된다. 그런데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더 논쟁적인 지점을 파고든다. 신혜영이 양정일에게 품은 복잡한 마음을 읽어낸 우영우는 양정일의 가해 가능성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신혜영의 경험을 사법부나 보호자가 대신 결정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장애인한테도 나쁜 남자와 사랑에 빠질 자유”가 있다는 대사는 현실의 폭력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주체로 대우받지 못하는 자의 욕망과 선택을 수면으로 끌어 올렸다.

변호사 김원영은 자신의 저서 <희망 대신 욕망>(푸른 숲, 2019)에서 지금껏 은폐되었던 장애인의 다양한 ‘욕망’을 말한다. “나는 이제 ‘야한’ 장애인, 뜨거운 인간이 되고자 한다. 내 피는 지금 이 순간도 세상과 죽을 힘을 다해 싸우고, 사랑하고, 그 속에서 함께 살라고 부추긴다. 절대 ‘싸가지 없이’ 굴지 못했던 미약한 존재들, 세상에서 영원히 찾아주지 않을까 봐 자신을 숨겨야 했던 존재들, 식당에서 밥을 먹고 영화를 보고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것조차 쉽게 할 수 없었던 존재가 이제 감히 ‘매력’에 대해 이야기 하려 한다.” 폭력을 예방하고 약자를 보호하는 체계를 만들기는 힘드니 방치하고, 장애인은 통제하기 쉬우니 격리한 세상에서 오랫동안 장애인은 무성의 존재였다. <몽글상담소>의 지현은 상순과의 소개팅 연습에서 초면에 팔짱 끼자는 제안을 받자 “많이 친해졌을 때, 내가 요청했을 때” 끼면 좋겠다고 거절한다. 지현은 사랑하고 싶고, 근사한 남성을 좋아하며, 거절하고 요구할 수 있다. 보호라는 명목으로 그 권리를 앞서 박탈하기 전에, 존중하는 법을 배워야 취약한 구성원도 소외되지 않으며 관계에 참여할 것이다. 그 용감한 첫술로서 <몽글상담소>는 15일과 22일 2, 3회 방영을 앞두었으며 넷플릭스에서도 제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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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송 계간 홀로 발행인

<이진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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