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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하의 본초여담] 허준은 과거시험이 아닌 천거에 의해서 의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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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본초여담(本草餘談)은 한동하 한의사가 한의서에 기록된 다양한 치험례나 흥미롭고 유익한 기록들을 근거로 이야기 형식으로 재미있게 풀어쓴 글입니다. <편집자주>
파이낸셜뉴스

허준은 유희춘을 치료하게 되면서 과거시험이 아닌 유희춘의 천거에 의해서 내의원 의관이 되었다. 허준은 선조의 신임을 얻어 정3품 당상관인 양평군(陽平君)이라는 벼슬까지 올랐다. 챗GPT에 의한 AI생성 이미지.


조선시대 1569년(선조 2년), 유희춘(柳希春)은 홍문관 관직을 맡고 있었다. 그는 한때 양재역 벽서 사건에 연루되어 제주도와 함경도 종성 등에서 19년 동안 유배를 당했는데, 선조가 즉위하고서 가장 먼저 사면되어 다시 복직되었다.

당시 양천현에는 허준(許浚)이 있었다. 허준은 서얼 출신으로 문과를 통해 중앙 관직에 나아가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처지였다. 그래서 그는 시대적 제약 속에서 의학의 길을 택했고, 이미 지역에서 실력을 인정받고 있었다.

유희춘은 가족들이나 지인들이 병들면 매번 허준을 불렀고, 유희춘이 부르면 허준은 왕진도 마다하지 않았다. 유희춘은 담음(痰飮)이 있어서 간간이 이진탕(二陳湯)을 복용했는데, 그때마다 효과가 좋았다. 이진탕 또한 허준에 의한 처방이었다.

음력 6월 초, 한여름 어느 날 유희춘의 벗 나사선(羅士?)이 병이 났다. 나사선은 뒷간에 갔다가 중풍(中風)이 들었는데, 왼쪽 입이 비뚤어지고 팔을 쓰지 못한 것이다.

유희춘은 점심을 먹고 나서 나사선의 병을 문안하러 갔다. 유희춘은 의원 김언봉과 석수도, 견림을 모두 불러 나사선을 진찰하게 했다. 의원들은 “이 큰 더위에 침이나 뜸은 불가하니, 문풍강활산으로 치료함이 마땅합니다.”라고 했다. 유희춘은 즉시 사인의 관청을 통해서 약재를 구하여 보냈다. 더불어서 청심원 세 알과 소합원 네 알을 구해서 복용하게 했다.

유희춘이 구해준 환약들을 복용한 나사선은 약간의 차도가 보였다. 그러나 유희춘은 걱정된 나머지 허준을 불러 다시 진찰하게 했다. 허준이 진찰하고 나서 돌아와 말하기를 “친구분은 기가 허하여 중풍이 왔으나 치료할 수 있습니다. 이때는 강활산이 가장 묘방입니다.”라고 하였다. 허준 또한 이전 의원들과 동일한 처방을 한 것이다. 유희춘은 그제서야 안심을 하고 나사선에게 탕약을 달여서 복용케 하였다.

음력 6월 23일. 유희춘의 부인이 혀가 부어 인근의 늙은 의녀 사랑비(思郞妃)를 불렀다. 의녀는 “마님의 증상은 설종(舌腫)입니다.”라고 하면서 부인의 백회혈에 침을 놓아 출혈을 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인의 증상이 여전하자 유희춘은 다시 허준을 불러서 진찰하도록 했다. 허준은 “부인의 설종은 어혈(瘀血)과 함께 기가 상기되고 심화(心火)로 인해서 혈기가 막혀서 그런 것입니다. 여기에는 웅담이 좋습니다. 제가 약방에 있는 웅담을 가져다 드리겠습니다.”라고 했다. 저녁 무렵 허준은 웅담을 가져다주었다.

밤이 되자 부인은 온몸에 번열이 있었다. 밤늦게 딸이 허준이 가져다 준 웅담을 복용하게 하자 열이 제법 내렸다. 그러나 부인은 혀가 부어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이때 갑자기 딸이 “어머니, 혹시 귀신의 소행이 아닐지 모르니 무당에게 굿을 해 보는 것은 어떻겠습니까?”하는 것이다. 그러자 부인은 어눌한 말투로 “벌써 허준 의원이 다녀갔고 그 원인이 어혈과 심화라고 하지 않느냐? 목구멍의 병이 어찌 무당의 제사와 관련이 있겠느냐?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거라.”라고 하였다. 다음날이 되자 부인의 증상은 현저하게 줄었고, 며칠 동안 웅담을 지속적으로 복용하자 증상은 모두 사라졌다.

며칠 후 이제는 유희춘의 왼쪽 뺨에 종기가 생겼다. 전날부터 느낌이 이상하더니 아침에 보니 제법 부어올랐다. 아직 농은 찬 것 같지는 않았다. 유희춘은 급하게 허준을 불렀다.

허준이 진찰해 보더니 “대감의 종기는 지금 막 생기는 단계로 청열해독시켜야 하는데, 이 때는 지렁이의 즙이 특효합니다. 지렁이는 성질이 차갑고 열을 내리는 효능이 있습니다. 지렁이 즙을 내어 바르면 열을 식히고 붓기를 가라앉히는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라고 했다.

유희춘은 하인들에게 지렁이를 잡아 오게 해서 바로 즙을 내어 발랐다. 그랬더니 정말 종기의 붓기와 열감이 줄어드는 느낌이 들었다. 유희춘은 저녁이 되자 지난번 부인이 먹다 남은 웅담도 복용했다. 증상은 한결 가벼워졌다.

다음 날이 되자 얼굴에 난 종기가 사그라들었다. 유희춘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하인을 통해 허준에게 굴비 한 꾸러미를 보내서 치하했다.

유희춘은 허준의 의술을 자신이나 지인들만을 위한 것으로 두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허준 정도의 의술이라면 왕의 건강을 챙기고 보필하는데, 활용되어야 한다고 여겼다. 그래서 이조판서에게 편지를 썼다.

<이조판서 대감 전상서. 저는 일찍이 뛰어난 의술과 인품을 갖춘 인재를 발견하였습니다. 바로 의원 허준이옵니다. 그의 신묘한 의술은 마땅히 전하의 옥체를 보필하고 종묘사직의 안녕을 지키는 데 쓰여야 할 것입니다. 이에 의원 허준을 내의원 의관으로 간곡히 천거하오니, 대감께서는 부디 아량을 베풀어 주시기 바랍니다.>

유희춘의 천거는 받아들여졌다. 이후 30대 초반 나이에 내의첨정(內醫僉正)으로 승진을 하였다. 내의첨정은 종6품으로 왕실 진료를 담당하는 관직이었다.

보통 내의원 의관이 되려면 과거시험으로 의과(醫科)를 합격하거나 취재(取材)라는 실무시험을 통해서 채용되었다. 그밖에도 허준처럼 실력을 인정받아 천거 형식으로 내의원에 입성하는 경우도 있었다. 특히 왕의 몸을 직접 만지고 약을 처방하고 침을 놓는 특별한 위치에 있는 의관들의 경우는 대신과 고관들의 보증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천거에 의해서 내의원에 입성한 허준은 선조의 신임을 얻었다. 그러나 직급과 벼슬이 높아지면서 서얼출신이라는 이유로 주변 관료들의 시기와 질투심이 대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준은 결국 정3품 당상관인 양평군(陽平君)이라는 벼슬까지 올랐다.

* 유희춘(柳希春, 1513~1577), 허준(許浚, 1539~1615)

오늘의 본초여담 이야기 출처

<미암일기 3책> ○ 宣祖 2年. 六月 初六日. 食後 往問羅兄 [주:士?] 之疾 蓋如厠而中風 左邊口?臂不仁 醫員金彦鳳·石守道·堅霖 皆爲余所招而來 以爲當此大暑 不可針炙 宜以門風羌活散治之 余卽覓于舍人司以送之 余以淸心元三丸·蘇合元四丸救之. 招許浚 往見羅兄之疾 而來告曰 因氣虛中風 尙有可治 羌活散最妙. (1569년 선조 2년. 6월 6일. 식후에 나형의 병을 문안하러 갔다. 대개 뒷간에 갔다가 중풍이 들었는데, 왼쪽 입이 비뚤어지고 팔을 쓰지 못했다. 의원 김언봉, 석수도, 견림은 모두 내가 불러서 온 자들인데, 그들이 이처럼 크게 더운 때에는 침을 놓거나 뜸을 떠서는 안 되고 마땅히 '문풍강활산'으로 치료해야 한다고 하였다. 내가 즉시 사인사에서 구하여 보냈다. 내가 청심원 세 알과 소합원 네 알로 구제하였다. 허준을 불러 나형의 병을 가서 보게 하니, 돌아와 보고하기를 "기가 허하여 중풍이 왔으나 오히려 치료할 수 있으며, 강활산이 가장 묘방입니다"라고 하였다.)

○ 宣祖 2年. 六月 二十三. 夫人患舌腫 招醫女. 老醫女思郞妃 來針夫人百會出血. 許浚 被招來 議舌腫病而去. 夫人 以舌腫 滿身煩熱 夜二更 女子進熊膽 夫人服之 頗退熱. 夕 慶連伴宿我於內房 以夫人率醫女等 宿於第二房故也. 女子爲夫人 欲請巫女 夫人不許曰 咽喉明病 豈關於巫祀 斷不可請 其明斷如此. (선조 2년 6월 23일. 부인이 혀가 붓는 병을 앓아 의녀를 불렀다. 노련한 의녀 사랑비가 와서 부인의 백회혈에 침을 놓아 피를 뽑았다. 허준도 불려 와서 혀가 붓는 병에 대해 의논하고 갔다. 부인이 혀가 부은 데다 온몸에 번열이 나서, 밤 이경에 딸이 웅담을 가져오자 부인이 그것을 복용하였더니 열이 상당히 내렸다. 저녁에 아들 경련이 내방에서 나와 함께 잤는데, 이는 부인이 의녀들을 거느리고 둘째 방에서 잤기 때문이다. 딸이 부인을 위해 무당을 부르고자 했으나, 부인이 허락하지 않으며 말하기를 "인후의 명백한 병이 어찌 무당의 제사와 관련이 있겠느냐? 결단코 부를 수 없다"라고 하였다. 그 판단이 이처럼 명석하고 단호했다.)

○ 宣祖 2年. 六月 二十九日. 余自昨日 覺面左邊有腫 今日聞許浚之言 以地龍汁塗之. 余服熊膽和水. (선조 2년 6월 29일. 나는 어제부터 왼쪽 얼굴에 부기가 있음을 느꼈다. 오늘 허준의 말을 듣고 지렁이 즙을 발랐다. 나는 웅담을 물에 타서 복용하였다.)

○ 宣祖 2年. 閏六月 初三日. 爲許浚通簡于吏判 乃薦于內醫院也. (선조 2년 윤6월 3일. 허준을 위하여 이조판서에게 편지를 보내 그를 내의원에 천거하였다.)

<동의보감> ○ ?蚓. 性寒, 味?, 無毒一云小毒. 性寒, 大解熱毒. (지렁이. 성질이 차고 맛은 짜며 독이 없다. 독이 조금 있다고도 한다. 성질이 차서 열독을 잘 푼다.)

<의휘> 四肢臀項腫. 生礬 眞末 等分, ?蚓汁和付, 止痛自消. (팔다리와 둔부 및 목의 종기에는 생백반과 밀가루 같은 양을 지렁이즙에 개어 붙이면 통증이 멎고 저절로 사그라진다.)

/ 한동하 한동하한의원 원장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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