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약품그룹 창업자 일가 모녀가 지지해 온 전문경영인 박재현 대표이사의 연임이 좌초됐다. 한미약품 직원들 사이에선 대주주 간 갈등으로 인해 전문경영인 박 대표가 사실상 ‘희생양’이 된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는 가운데, 대주주인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에 대한 책임론도 나오고 있다. 특히 예정된 주주총회에선 박 대표의 뒤를 이어, 새로 내정된 황상연 HB인베스트먼트 프라이빗에쿼티(PE) 부문 대표가 신임대표로 선출될 것으로 보인다. 주총 전후로 파열음이 커질 수도 있다.
◆대주주에 반기들었다 교체된 전문경영인
13일 한미약품 안팎에 따르면 황 대표가 선임될 경우 한미약품 53년 역사상 ‘한미맨’이 아닌 외부 인사가 한미약품 수장을 맡는 첫 사례가 된다. 그동안 한미약품 수장을 맡은 전·현직 대표는 창업주 고(故) 임성기 회장의 경영 철학을 공유하며 수십 년간 한미약품의 성장을 이끈 내부 승진 전문경영인이었다.
지주사 한미사이언스는 전날 오후 이사회를 열고 핵심 사업 회사인 한미약품의 이사 선임 안건을 논의했고, 31일 열리는 한미약품 정기 주주총회에 상정할 계획이다.
현재 한미약품 이사회 구성원 10명 중 박 대표와 박명희 이사, 김태윤 감사위원장, 윤영각 감사위원, 윤도흠 사외이사의 임기가 이달 만료 예정이다.
한미사이언스 이사회는 김 감사위원장의 연임 안건과 함께 황 대표, 김나영 한미약품 신제품개발본부장, 채이배 전 국회의원, 한태준 겐트대 글로벌캠퍼스 총장 등을 이사 후보로 신규 선임하는 안건을 논의할 예정이다.
지주사 이사회가 한미약품 이사회에서 박 대표를 빼고 대표 교체로 가닥을 잡은 것이다. 박 대표는 2023년 3월 한미약품 사내이사로 선임된 이후 한미약품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다.
◆신동국, 구원투수에서 오너 논란까지
이번 인사 논의 배경에는 한미약품그룹의 대주주 간 갈등이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임성기 한미약품 창업주의 별세 이후 가족 간 분쟁을 정리하며 ‘구원투수’로 등장했던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이 사실상의 오너로 나서면서 기업 경쟁력이 훼손되고 있다는 내부 반발로 갈등은 최고조에 달했다.
창업자 일가 모녀와 형제가 둘로 나뉘어 경영권 분쟁을 하던 당시 송영숙 한미그룹 회장과 임주현 부회장 등 모녀는 조직 안정과 경영 정상화를 맡아온 전문경영인 체제를 유지해야 한다며 박 대표를 지지해 왔다.
이후 신 회장은 모녀에 힘을 실어줘 경영권 분쟁이 일단락됐다. 신 회장은 당시 모녀 측과 주주간 계약을 맺었다. 지분 매각 시 사전 협의와 우선매수권을 보장하고, 위반 시 600억원의 위약벌금을 물기로 한 내용이다. 당시 업계는 신 회장을 구원투수로 묘사했다.
하지만 박 대표와 신 회장의 갈등이 폭발한 계기는 지난해 말 발생한 사내 성추행 처리 문제였다. 가해자로 지목된 임원에 대해 박 대표가 중징계를 추진하자, 신 회장이 이를 막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박 대표 측은 인사 문제 외에도 경영 전반에 대한 개입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신 회장은 박 대표 연임을 강하게 반대했다.
한미약품 사내 직원들 사이에선 대주주 간 갈등으로 인해 전문경영인 박재현 대표가 사실상 ‘희생양’이 된 것 아니냐는 해석도 있어, 주주총회 전후로 파열음이 커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신 회장 vs 모녀간 갈등이 도화선
일각에선 한미약품 이사회 재편 배경에는 신 회장과 창업자 일가 모녀간의 갈등이 깔렸다고 본다. 특히 한미약품 창업자 일가의 경영권 분쟁 당시 모녀와 신 회장, 라데팡스는 ‘4자 연합’을 이뤄 형제와 대결에서 이겼다. 4자 연합은 경영권 방어를 위해 의결권 공동 행사 등을 약정하는 주주 간 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신 회장이 작년 한미약품 지분을 담보로 교환사채(EB)를 발행하면서 계약 위반 여부를 둘러싼 다툼이 이어졌다. 모녀 측은 사실상 지분 처분과 다름없다며 소송을 제기하고 신 회장 자택과 지분 일부를 가압류한 상태다.
이날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선 모녀 측이 신 회장을 상대로 청구한 소송의 첫 변론도 열렸다. 앞서 신 회장은 지난 2월 한미사이언스 지분 6.45%를 2173억원에 추가 매입하며 개인과 한양정밀 지분을 합쳐 약 30%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이 과정에서 약 2000억원 규모의 외부 자금도 차입했다.
이런 상황에서 등장한 황 대표 카드를 두고 업계에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황 대표는 미래에셋증권 리서치센터장, 알리안츠글로벌인베스터스 최고투자책임자(CIO), 종근당홀딩스 대표 등을 지낸 금융·투자 전문가다. 현재는 HB인베스트먼트에서 사모펀드 투자 업무를 맡고 있다.
즉 신 회장 측이 황 대표를 통해 모녀에게 등을 돌리고 장기적으로 전략적 투자자 유치나 지분 거래 같은 엑시트 시나리오를 염두에 둔 새 판을 짜고 있다고 분석한다.
김건호 기자 scoop3126@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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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약품 전문 경영인 박재현 연임 좌초
구원투수에서 오너 논란 겪으며 신 vs 박 갈등
투자 전문가 황상연 등장에 신동국 엑시트 전망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