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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력서 대신 난제 던진 일론 머스크, '파격적이지만 정답이 있는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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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동아 남시현 기자] 지난 2월 17일,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가 테슬라 코리아와 테슬라 AI 계정의 채용 공고를 언급했다. 메시지는 ‘만약 당신이 한국에 있고 칩 설계, 제조 또는 AI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일하고 싶다면, 테슬라에 합류하세요’라는 내용이 담겼다. 일론 머스크가 태극기까지 달면서 대한민국을 지칭한 건 대단히 이례적인데, 반도체 엔지니어를 구한다고 메시지를 낸 점 조차도 드문 일이다.

채용 방식 역시 파격적이었다. 일론 머스크는 이력서 대신 공식 접수 이메일로 ‘본인이 해결한 세 가지 문제’를 첨부하라고 한 것이 전부다. 일반적으로 실리콘밸리에서는 채용 담당자와 인터뷰를 진행한 뒤 두 세 차례 기술 인터뷰, 임원 인터뷰, 사실 및 평판 확인 등을 거쳐 채용한다. 이 과정에서 스탠퍼드나 MIT, 혹은 빅테크 기업 출신의 경력이 우선시되며, 최근에는 채용 시스템이 특정 키워드와 학력을 기반으로 이력서를 자동으로 필터링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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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론 머스크가 지난 달 테슬라 코리아의 채용 공고를 언급하며 한국계 반도체 엔지니어를 찾는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이때 이력서는 보지 않고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변만 제출하라고 해 화제가 되었다 / 출처=제미나이 AI 이미지 생성


자동으로 이력서를 판별하면서 학벌과 이력서와 실제 업무 능력의 괴리가 발생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즉 세 가지 문제 해결 방안을 제출하라는 건 알고리즘이나 표준 설계 역량의 수준을 넘어서 실제 개발 과정에서 맞닥뜨린 난제를 어떻게 해결했는지, 어떻게 이를 논리적으로 돌파했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질문이다. 단순히 ‘전문 반도체 회사에서 5년 간 근무했다’ 보다는 ‘설계 공정 중 발생한 특정 노이즈를 어떻게 물리적으로 해결했는지에 대한 진행 과정’ 같은 실전 해결 능력을 보겠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를 정확히 언급한 배경으로는 반도체 업계 전문 인력과 경험자가 많고, 또 워라밸보다 밤샘 업무를 진행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으로 보인다. ‘세 가지 문제’에 어떤 내용을 첨부할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지만 칩 설계와 제조, AI 소프트웨어까지 다 경험한 ‘시프트 레프트’를 경험한 풀스텍 엔지니어를 찾는 게 아니냐는 말이 많다.

애플과 엔비디아는 이미 내재화한 ‘시프트 레프트’ 방법론

글로벌 반도체 산업에서 주목할만한 핵심 트렌드는 네 가지다. 첫째, PC 및 스마트폰, 기업용 엣지 컴퓨팅을 위한 생성형 AI 가속기 칩이다. 두 번째는 점점 더 어려워지는 글로벌 인재 채용 경쟁, 세 번째는 지정학적 긴장에 따른 공급망 구축이다. 그중 반도체 개발의 추세를 더욱 빠르게 바꾸는 칩 설계에 대한 ‘시프트 레프트(Shift left)’ 방법론이 가장 중요한 절차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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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설계 절차를 한 줄로 늘어놓았을 때 가장 마지막에 있는 검증 절차를 앞으로 옮기는 것이 시프트 레프트 방법론이다. 내용은 AI 번역 / 출처=제미나이 AI 이미지 생성


시프트 레프트란 반도체 설계 진행 절차 중 가장 뒷부분(오른쪽)에 위치한 검증, 테스트, 소프트웨어 개발 단계를 설계 초기 단계(왼쪽)로 앞당기는 개발 방법론이다. 시프트 레프트 방법론은 2001년 멘토 그래픽스가 ‘캘리브레’라는 설계 검증 도구를 시작으로 처음 등장했고, 2016년 지멘스가 멘토 그래픽스를 인수하며 방법론 확산의 배경이 갖춰졌다. 이후 퀄컴이 모바일 AP 발열 및 성능 저하 문제, 개발 최종 단계에서 오류로 재설계하는 문제를 막기 위해 시프트 레프트를 시작했고, 애플과 엔비디아도 이를 절차로 도입하며 대세로 자리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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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자산 거래 플랫폼 디자인 앤 리유즈에 업로드 된 반도체 설계의 기본절차, 내용은 AI 번역 / 출처=디자인앤리유즈


전통적인 폭포수 모델(Waterfall) 개발 방식은 기획, 설계, 제조, 시험, 배포 순서로 진행된다. 기획 단계에서는 수정이 간단하지만 절차가 진행될수록 이를 해결하기 위한 비용은 십 수배씩 커진다. 시높시스나 케이던스, 지멘스 모두 설계 단계에서 검증을 완료하지 못하고 제조 단계에서 수정할 경우 초기 단계의 수백 배의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고 말한다. 기획 단계에서는 문서나 도면 상으로 수정하면 되지만 최종 단계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브랜드 신뢰도 하락이나 소비자 보상까지 비용 규모가 늘어난다. 사후 문제가 없도록 하자는 게 핵심이다.

시프트 레프트 방법론에 정해진 절차가 있는 건 아니지만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동시에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대표적인 개발 절차 중 하나는 프로그래밍이 가능한 반도체(FPGA)를 활용해 제작 중인 반도체를 가상으로 만드는 것이다. 디지털 트윈과 에뮬레이터를 활용해 제품을 개발 중에도 검증하고, EDA 툴 상에서도 시뮬레이션 가속이나 전력 검증 등을 시스템 상으로 지원한다. 칩 설계자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는 공동 설계를 추진하고, 설계가 바뀔 때마다 지속적으로 통합 검증하며 전체 시스템의 완성도를 계속 확인한다.

시프트 레프트, 속도전에 발맞추기 위한 업계의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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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비디아 역시 시프트 레프트 방법론을 바탕으로 AI 반도체(GPU)를 설계한다 / 출처=엔비디아


엔비디아는 옴니버스를 활용해 칩 설계부터 데이터 센터 배치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가상으로 구현하고, 애플 역시 수직 계열화를 통해 iOS나 맥OS등의 기능을 정의하며 이에 대응하는 하드웨어 칩을 만든다. 인텔과 삼성전자 등 파운드리 기업 역시 공정 미세화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가상 팹에서 수율과 성능을 검증하거나, 반도체 설계 초기 단계에서의 검증을 지원한다. 이를 통해 칩의 생산 기간은 단축하고, 시장에서 필요로 하는 제품은 더 빠르고 저렴하게 출시하는 것이다.

시프트 레프트 방법론은 매력적이지만 일반 기업이 시도하기엔 매우 어려운 방안이다. 검증 과정에서도 가상 칩이 너무 단순하면 소프트웨어 검증이 어렵고, 너무 복잡하면 시뮬레이션이 느리다. 또한 막대한 EDA 라이선스 비용과 천문학적인 장비 가격, 가상화 환경 비용도 문제다.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모두 경험한 엔지니어를 필요로 하는 점도 시프트 레프트 구축 장벽 중 하나다. 시프트 레프트가 시장의 속도를 따라가기 위한 혁신적인 방식임에도 빅테크 기업만 도입할 수 있는 이유는 결국 비용 때문이다.

설계 방식 넘어 인재 채용에 대한 시점 전환 시작될까

지난 1월,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는 AI6와 AI7을 비롯한 차세대 반도체의 출시 주기를 9개월로 당기겠다고 말했다. 그간 3~4년에 걸리던 자율주행 칩을 2년에 두 개 이상 내겠다는 게 목표다. 엔비디아만 해도 과거 2년 마다 제품을 출시했지만 이제 1년마다 새 아키텍처를 소개하고 있고, 애플 역시 이미 예전부터 매년 새 애플실리콘을 내고 있다. 테슬라 역시 이들에 가까운 속도를 내겠다는 것이 일론 머스크의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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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7일 당시 테슬라 코리아에 올라온 채용 공고와 이를 리트윗한 일론 머스크의 게시글 / 출처=X


일론 머스크가 무조건 시프트 레프트 경험 엔지니어를 찾는 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스페이스X 채용에도 ‘당신이 직면했던 가장 어려운 문제는 무엇이고 어떻게 해결했나?’를 물었고 단순한 실력자를 찾기 보다는 ‘모델 기반 시스템 엔지니어링(MBSE)을 통한 시스템의 설계와 인과 관계를 모델 수준에서 이해하고 변수가 바뀌었을 때 시스템이 미치는 영향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지’를 솎아내기 위한 질문이었던 것으로 평가된다.

이력서는 필요 없고 세 가지 해결 과제만 제출하는 것이 파격적으로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EDA를 활용해 반도체를 설계하면서 직접 소프트웨어까지 실행하며 개발할 수 있는 풀스택 엔지니어’임을 증명하라는 메시지가 숨어있다. 괴짜, 파격적인 것 같은 그의 행보는 사실 굉장히 계산적인 행보인 셈이다. 이정도 경험이 있는 업계 종사자라면 사실 경력과 이력을 볼 필요가 없는 수준이다. 누가 일론 머스크와 일하게 될지는 모르겠으나 누구가 되었건 찾기 어려운 건 확실해보인다.

IT동아 남시현 기자 (sh@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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