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석유 최고가격제를 시행한 13일 오전 서울 중구의 한 주유소 모습. 화물차량과 배달 오토바이 운전자들이 주유하고 있다. 정주원 기자 |
[헤럴드경제=전새날·정주원 기자] 13일 서울 중구 신당동의 한 주유소에서 만난 60대 용달트럭 운전자 정상현 씨. 그는 이번 주에만 지방 장거리 운행을 두 번 했다. 기름값만 15만원을 지출했다고 한다. 한 달 전과 비교하면 같은 양을 주유하고도 5만원쯤 더 들었다고 했다. “5만원이면 우리 같은 용달 기사들한테는 큰돈”이라는 그는 “날도 풀리면서 일감이 많아지는데 나갈 돈이 더 많아져서 일할수록 손해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란 분쟁으로 국제유가 고공행진이 이어지면서 국내서 판매되는 휘발유와 경유 등 운송용 기름값도 덩달아 올랐다. 통상 2~3주가량 시차도 없이 국내 석유가격이 튀는 ‘비정상적 상황’이 벌어지자 정부는 13일부터 ‘석유 최고가격제’를 시행했다. 4개 정유사는 리터(ℓ)당 보통휘발유는 1724원, 경유는 1713원 이하로 주유소에 공급해야 한다. 정부가 석유 시장가격에 개입하는 건 30년 만이다.
헤럴드경제가 만난 운전자들은 대체로 정부의 가격 개입을 반겼다. 하지만 매일 운전대를 잡고 생계를 꾸리는 운송, 배달 기사들은 ‘그래도 기름값 부담이 크다’고 하소연했다. 최고가격제는 공급가격에만 제한을 둔다. 주유소가 마진을 붙인 소비자 판매가는 휘발유든 경유든 ℓ당 평균 1900원(13일 오전 오피넷 기준)을 웃돈다.
비싸다고 운행을 끊을 수 없는 이들은 유가는 생계에 직결되는 문제라고 하소연했다. 1t 트럭을 운행하는 김상민(55) 씨는 “지금처럼 기름값이 비쌀 때는 운행하는 게 손해”라며 “기름값은 오르는데 운임은 오히려 내려갔다. 부담만 커졌는데 누가 일하겠느냐”고 반문했다.
화물차 차주 성모 씨는 “경유가 리터당 1600원대일 때는 하루 기름값이 3만~4만원 정도였다”며 “일주일에 한두 번 장거리가 있어서 보통 300~400㎞는 주행하는데 이번 주는 충북을 다녀오느라 벌써 세 번 주유했다”고 말했다.
오토바이 배달 기사 이모(37) 씨는 하루 10시간 이상 일하면서 매일 기름을 넣는다. 보험료에 수수료를 빼면 남는 돈은 최저 시급 수준이라고 했다. 그는 “저는 (배달이) 부업이 아니라 생업이라 10원만 올라도 부담이 크다”고 호소했다.
박연수 화물연대본부 기획실장은 “택배 차량 등으로 많이 쓰이는 1t 화물차 기준으로 보면 월평균 약 4000㎞를 운행하고 유류 사용량이 약 500ℓ에 가까운데 최근 유가 상승으로 월 유류비 부담이 약 17만원 늘어난 것으로 분석된다”며 “유류비 증가는 단순한 비용 상승이 아니라 화물 노동자의 실제 소득 감소로 이어져 평균적으로 순소득이 약 10% 줄어드는 효과가 나타난다”고 말했다.
화물차 몸집이 커질수록 유류비 부담은 더 불어난다. 25t짜리 대형 화물차는 운전자가 부담하는 유류비가 한 달에 100만원가량 더 늘었다고 한다.
“기름값에 보험료, 수수료 내면 마이너스”
정부가 석유 최고가격제를 검토 중인 12일 서울 노원구 한 주유소에 차량들이 몰려 있다. 12일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해당 주유소는 오후 2시 기준 보통휘발유 가격이 리터당 1769원으로 서울 최저가를 기록했다.<연합뉴스>연합뉴스> |
기름값이 치솟자 이번주 내내 운전자들의 ‘원정 주유’가 이어졌다. 조금이라도 더 싼 주유소로 ‘좌표’가 찍힌 곳들엔 대기줄이 이어졌다. 가격이 상대적으로 높은 주유소에는 손님이 뚝 끊긴 온도차도 목격됐다.
12일 오후 기준 휘발유 가격이 서울에서 가장 낮은 노원구의 한 주유소에는 기름을 넣으려는 차량 10여대가 수십m 이어지는 대기열을 만들었다. 지난 9일 구로구의 한 주유소도 가격이 저렴하다는 소문이 나면서 입구부터 오류나들목 방향 도로까지 차량 수십 대가 줄지어 기다리는 풍경이 연출됐다. 이곳에서 주유하려면 최소 20분은 기다려야 했다. 출차로로 들어가려다 대기 줄에 막혀 멈춘 차들이 엉키면서 작은 언쟁도 벌어졌다.
김포에서 1t 트럭을 끌고 온 이진석(30) 씨는 “인터넷에서 검색해서 싸다는 곳을 찾아왔다”며 “회사 차가 여러 대라 주유비가 많이 들어간다. 회사에서도 요즘 기름값 때문에 다들 걱정”이라고 말했다.
주유비를 한 푼이라도 아끼려는 건 일반 운전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장한근(57) 씨는 일부러 연료를 가득 채웠다. 그는 “평소엔 가득 넣지 않는데 뉴스를 보고 미리 만땅 채웠다”며 “하이브리드 자동차라 5만원만 넣어도 되는데 오늘은 7만3000원 결제했다”고 전했다.
오토바이 운전자 김정환(34) 씨는 오랜만에 오토바이를 꺼냈다고 했다. 그는 “기름값 아끼려고 경유차 샀는데 (오히려 더 올라) 서민들만 죽어 나간다”며 “오토바이도 하루마다 기름을 넣어야 한다. 결국 돈은 계속 들어간다”고 말했다.
기름값 인하 체감하려면 시차 필요
10일 오전 서울 강남구의 한 직영 주유소의 가격 표시판. 현재는 리터당 100원 이상 가격이 더 올랐다. 정주원 기자 |
정부의 최고가격제는 기름 가격이 지금보다 더 크게 오를 여지는 줄였단 평가가 나온다. 다만 운전자들이 체감하는 인하 효과가 나타나려면 역시 시차가 필요하다. 서울 시내 한 주유소 관계자는 “정유사에서 1900원대에 공급받은 재고부터 소진한 뒤에야 판매가격을 조정할 수 있다. 주변 주유소들 눈치를 좀 보면서 뺄 것 같다”고 말했다.
주유소들도 가격 경쟁을 펼치는 형국. 서울 서초구 양재동의 또 다른 주유소 관계자는 “팔수록 손해가 나는 구조”라면서 “공급가는 올랐는데 경쟁 때문에 소비자 가격에 다 반영하지 못한다. 비싸게 사서 상대적으로 싸게 파는 셈”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정부는 2주마다 국제유가를 감안해 석유 공급가를 설정하기로 했기에, 그 사이 국제유가가 뛰면 공급가도 더 오를 수밖에 없는 구조다. 때문에 정부가 유류세까지 손을 대야 기름값 부담을 낮출 수 있단 목소리도 나온다.
한편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이 조기 종식될 가능성이 낮아지면서 12일(현지시간) 국제유가는 급등했다. 5월 인도분 브렌트유 선물 종가는 배럴당 100.46달러로 전장보다 9.2% 올랐다. 4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 종가는 배럴당 95.73달러로 전장보다 9.7% 급등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