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경기 성남 대한송유관공사로 대형 탱크로리가 줄지어 오가고 있다. 문재원 기자 |
정부가 보통 휘발유·경유·등유를 대상으로 정유사 출고가 최고가격을 지정하는 석유 최고가격제를 13일 0시부터 시행한다. 오는 26일까지 적용되는 1차 최고가격은 ℓ당 보통 휘발유 1724원, 경유 1713원, 등유 1320원으로 설정됐다. 이는 지난 11일 정유사가 제출한 평균 출고가보다 각각 109원, 218원, 408원 싼 것으로 주유소 판매가도 내려갈 것으로 전망된다. 고급 휘발유는 적용 품목에 포함되지 않았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1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민생물가 특별관리 관계장관 태스크포스 회의에서 “정부는 석유 가격을 안정화하고, 불합리한 가격 인상 등 시장 왜곡에 대응하며 정부·기업·국민들이 석유 가격 인상 부담을 함께 분담하기 위해 석유 제품 최고가격제를 도입하겠다”며 “정유사가 주유소, 대리점 등에 공급하는 실제 가격에 대해 국제 석유 제품 가격의 변동 범위에서 가격 상승을 허용해 글로벌 가격 추이를 벗어난 불합리한 변동을 예방하겠다”고 밝혔다.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 사업법’(석유사업법) 23조에 따른 석유 최고가격제는 석유의 수입·판매 가격이 현저하게 오르거나 오를 우려가 있는 경우 산업부 장관이 석유 제품의 국제 가격·국내외 경제 사정을 고려해 석유정제업자, 석유수출입업자, 석유판매업자의 석유 판매가격의 최고액을 정하는 것을 말한다.
이번 제도가 적용되는 대상은 정유사가 주유소나 대리점 등에 공급하는 가격이다. 일반 소비자에게 적용되는 주유소 판매가는 대상에서 제외했다. 양기욱 산업부 산업자원안보실장은 “주유소 판매가는 지역뿐 아니라 지역 내에서도 비싸게 적은 양을 파는 주유소의 경영 전략, 셀프와 같은 주유 방식, 임대료에 따라 가격 차이가 커서 일률적으로 규제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최고가격은 정유사의 ‘주간 단위 세전 공급가’(기준가)에 싱가포르 거래소의 석유 제품 가격의 변동 비율을 곱한 뒤 교통·에너지·환경세, 개별소비세, 부가세 등 각종 세금을 더해 2주마다 조정하기로 했다. 양 실장은 “매주 조정할 경우 가격 안정 효과가 떨어지고, 매달 조정하면 조정 시점에 지나치게 변동 폭이 클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다만 가격 안정화가 필요할 때는 조정 주기를 변경할 수 있고, 해상 운송으로 별도의 운송비가 가격에 포함되는 섬과 같은 특수 지역은 5% 이내의 범위에서 별도의 최고가격을 산정할 수 있게 했다. 26일까지 적용되는 도서 지역 1차 최고가격은 ℓ당 보통 휘발유 1743원, 경유 1732원, 등유 1339원으로 책정됐다.
정부는 최고가격 지정에 따라 국내외 가격 차이가 발생할 경우, 정유사들이 국내 공급 물량을 수출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수출도 제한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정유사는 지난해 같은 기간 수출 물량을 초과해서는 수출할 수 없다.
석유사업법에 따르면 석유 최고가격 지정으로 사업자가 손실을 봤을 경우 정부가 재정 지원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정부는 정유사에 손실이 발생했을 경우 분기별로 사후 정산한다는 방침이다. 정유사별로 손실액을 자체 산정하고 손실에 대한 증명 책임을 둔 뒤, 회계·법률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정부 ‘최고액 정산위원회’를 통해 손실액을 검증한 뒤 지급하는 방식이다.
정부는 또 최고가격제가 적용되지는 않지만, 주유소 판매가가 과도하게 오르는 것을 막기 위해 시민단체 등 중립적 기관을 활용해 매입·판매·수출 등 물량 흐름을 지속해서 모니터링하기로 했다. 양 실장은 “공급가와 비교해 판매가 상승률이 높은 주유소를 대외적으로 공표하고, 2차례 공표 대상에 포함될 경우 조사를 진행해 과태료·영업정지 등 강력하게 대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번 석유 최고가격제는 한시적으로 운영되는 것이지만, 해제 시점은 특정하지 않았다. 양 실장은 “유가 상황이 좋아져 최대한 빨리 해제하고 싶지만 중동 정세 불안이 존재해 해제 시점은 말하기 어렵다”며 “국제 유가, 수급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해제할 시기가 됐다고 판단되면 해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유업계는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대한석유협회는 “SK에너지, GS칼텍스, 에쓰오일, HD현대오일뱅크 등 국내 정유사들이 정부가 제시한 최고가격을 즉각 준수해 공급할 것”이라며 “중동 정세 불안 장기화에 대비해 국가 경제, 국민 체감 물가 부담 완화를 위해 최고가격제 등 정부의 유가 안정 대책에 충실히 동참하며 국내 석유 제품 안정 공급에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김경학 기자 gomgo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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