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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과 너무 가까우면 제대로 볼수 없어… 거리는 사유를 위한 조건" [아트&컬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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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작가 케이 이마즈
타테우스 로팍 서울 ‘거리의 윤리’전 참여
‘日제국주의와 여성상’ 주제 작품 전시


파이낸셜뉴스

케이 이마즈 '보랏빛 거래' 타데우스 로팍 서울 제공


"거리란 분리가 아니라, 사유를 위한 조건입니다."

일본에서 태어나 인도네시아 반둥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여성 작가 케이 이마즈(Kei Imazu·작은 사진)의 작업은 서로 다른 시대와 장소의 이미지들이 한 화면 안에서 충돌하는 지점에서 출발한다. 전쟁의 잔해와 신화적 인물, 식민지의 기억과 일상의 몸짓이 한 장면 안에 겹쳐지며 단선적인 역사 서사를 허락하지 않는다.

케이 이마즈는 12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타데우스 로팍 서울 기획전 '거리의 윤리(Distancing)'에 참여한 계기에 대해 "작업을 한국적 맥락 안에 놓아볼 수 있는 기회라는 점에 마음이 이끌렸다"고 말했다.

현재 타데우스 로팍 서울은 올해 첫 전시인 '거리의 윤리'를 선보이고 있다. 케이 이마즈를 비롯해, 김주리와 임노식, 마리아 타니구치(필리핀)가 참여해 신작 회화 19점과 조각 1점을 공개했다. 오는 5월 2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는 이미지와 물질, 신체와 시간의 관계가 관람자의 감각 속에서 어떻게 재구성되고 경험되는지를 탐색한다.

케이 이마즈는 "최근 몇 년 동안 작업의 중심에 놓여 있는 질문은 기억의 역사와 이주, 그리고 식민주의의 잔재가 아시아라는 공간 속에서 어떻게 다시 구성되는가에 관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러한 문제 의식을 한국 관람객들과 공유하는 데 의미를 느낀다는 그는 전시에 출품한 신작 총 3점을 두고, "서로 다른 도상을 취하고 있지만 모두 '제국주의와 여성상'이라는 공통된 주제에 닿아 있다"고 말했다.

이마즈는 제국주의의 역사가 단지 국가나 전쟁, 무역의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고 봤다. 여성의 신체와 재현, 노동, 그리고 일상에 깊숙이 침투해 있다는 것이다.

화면에 등장하는 여성 형상은 신화 속 여신이기도 하고, 이름 없는 일상의 인물이기도 하다. 욕망의 대상이거나 통제의 대상으로 재현된 여성 이미지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역사 구조를 드러낸다.

일본에서 태어나 인도네시아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삶 역시 시선에 변화를 가져왔다. 그는 "특정 장소의 역사나 도상에 접근하는 일이 얼마나 복잡하고 다층적인지 실감하게 됐다"며 "대상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오히려 그것을 정확히 포착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고 말했다.

이러한 인식은 '거리(distancing)'라는 개념으로 이어진다. 이마즈에게 거리는 단순히 떨어져 있는 상태가 아니라 사유를 위한 조건이다.

그는 "대상이 너무 가까우면 제대로 볼 수 없고, 너무 멀면 그 사이를 상상으로 채워버리게 된다"고 설명했다.

동아시아에서 동남아시아로 삶의 무게 중심을 옮기며 역사와 기억이 위치에 따라 전혀 다른 방식으로 드러난다는 사실도 체감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때 '거리두기'는 무관심이 아닌, 자신이 서 있는 위치를 계속 되묻는 태도에 가깝다.

작업은 광범위한 자료 수집에서 시작된다. 서적과 사료, 아카이브 자료, 온라인 이미지, 지도, 영화, 현장에서 촬영한 사진, 박물관 유물 등이 그 출발점이다.

이마즈는 "처음부터 고정된 결론을 가지고 시작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 대신 예상치 못한 연결고리나 이해되지 않지만 계속 남는 이미지들에 주목한다"고 말했다.

수집된 자료들은 디지털 공간에서 콜라주처럼 겹쳐지고 배열되며 서로의 관계를 탐색하는 과정을 거친 뒤 회화로 옮겨진다. 회화는 정보를 정리하는 매체라기보다 서로 다른 시간과 기억을 하나의 장소에 머물게 하는 방식에 가깝다.

최근 작업에서 특히 의식하고 있는 문제 역시 역사와 연결된다. 이마즈는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제국주의적 폭력"이라면서 "세계사를 관통해 온 지배와 수탈, 침략의 구조는 형태만 달라졌을 뿐 여전히 현재 속에서 반복되고 있다"고 부연했다.

작업은 회화 뿐만 아닌, 설치, 조각, 디지털 매체를 넘나든다. 매체를 먼저 정해놓고 시작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특정 이미지나 주제를 담기에 가장 적절한 형식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과정에서 매체가 자연스럽게 선택된다는 것이다.

이마즈는 앞으로 식민주의 역사와 해양 산업, 신화적 도상에 관한 질문을 더욱 확장해 나갈 계획이다. 식물과 동물, 해류와 같은 '비인간 존재'들이 역사 서사의 화자가 될 수 있는 가능성에도 관심을 두고 있다.

"명확한 답을 얻기보다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가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기를 바란다"고 관람객들에게 메시지를 전한 그는 빠르게 소비되는 이미지의 시대 속에서 작업은 오히려 보이지 않는 것들 곁에 머무르는 시간을 요청한다.

그렇게 '거리의 윤리'는 작품을 읽어내기보다 세계를 다시 바라보는 감각의 간격을 만들어 내는 전시로 남는다.

유선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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