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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최대 비축유 방출에도 ‘역부족’···국제 유가, 다시 장중 100달러 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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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이란 소행 태국 화물선 ‘마유리 나리’호가 11일(현지시간) 호르무즈 해협 인근에서 공격을 받은 후 선체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11일(현지시간) 전략 비축유 중 1억7200만 배럴을 방출하기로 했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으로 인한 유가 급등을 완화하기 위해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사상 최대 규모의 전략 비축유를 방출키로 한 조치의 일환이지만, 국제 유가는 사흘 만에 다시 장중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섰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이어지는 한 이같은 고육책이 공급난을 상쇄하기에는 역부족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AP통신에 따르면 크리스 라이트 미 에너지부 장관은 이날 트럼프 대통령 인가에 따라 다음 주부터 약 120일에 걸쳐 전략 비축유 1억7200만 배럴을 방출한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오하이오주 신시내티를 방문해 지역방송과 인터뷰하면서 “전략 비축유를 조금 줄여 가격을 낮추겠다”며 “그리고 나서 (다시) 가득 채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앞서 IEA 32개 회원국이 유가 안정을 위해 각국 전략 비축유 중 총 4억 배럴을 시장에 공급하기로 합의한 데 따른 조치다. 4억 배럴은 IEA 역사상 최대 규모 방출량으로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 당시 총 방출량(1억8270만 배럴)의 두 배가 넘는 수준이다. 영국(1350만 배럴), 프랑스(1450만 배럴), 독일(1950만 배럴) 등 각국이 동참했고 한국도 비축유 2246만 배럴을 방출키로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켄터키주 히브런을 찾은 자리에서 이번 조치가 “미국과 세계에 대한 위협을 종식하면서 유가를 상당히 낮출 것”이라고 밝혔다. 대외적으로는 시장 우려를 달래는 데 주력하는 모습이지만, IEA의 대규모 전략 비축유 방출 협의 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오락가락하는 행태를 보였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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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1일(현지시간) 켄터키주 헤브론에서 열린 베르스트 로지스틱스 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WSJ에 따르면 라이트 장관은 전날 주요 7개국(G7) 장관 협의 때만 해도 ‘유가가 배럴당 90달러 아래로 떨어진 만큼 대규모 시장 개입은 시기상조’라는 미국 측 의견을 전달했다가 불과 2시간 만에 비축유 공동 방출을 촉구했다. 입장이 180도 달라진 배경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의중 변화가 있었다고 WSJ은 전했다. 비축유 방출에 부정적이던 트럼프 대통령이 요동치는 유가를 진정시키려면 해당 조처가 필요하다는 참모진의 조언을 뒤늦게 수용했다는 것이다.

WSJ은 손바닥 뒤집기에 가까운 입장 급변을 두고 이란과의 전쟁을 둘러싼 트럼프 정부의 의사 결정 과정이 얼마나 불안정하고 변덕스러운지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스는 대이란 군사작전 이후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 등으로 경제적 파장이 커지자, 이란의 반발을 과소평가했던 트럼프 정부가 급하게 대책 마련에 나서는 등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였다고 평가했다.

과거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이 국제 유가 안정을 위해 비축유를 방출할 때마다 이를 비판해온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의사결정 과정에서 여론의 역풍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2기 취임 연설에서 전략 비축유를 100% 채워놓겠다고 공언하기도 했으나, 이번 조치로 비축률이 절반 이하로 떨어지면 2008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할 상황이 됐다.

미국 입김이 작용한 4억 배럴의 비축유 방출이 국제 유가를 진정시키기엔 역부족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4억 배럴은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조달되는 원유 수송량의 20일 치에 불과하다. 영국의 시장분석기관 캐피털 이코노믹스의 경제학자 하마드 후세인은 “IEA 회원국이 시장에 긴급 비축유를 공급하는 속도로는 설령 교전 상태가 조만간 끝난다고 하더라도 중동 지역의 공급 차질분을 메우기에 역부족”이라고 WSJ에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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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과 호르무즈 해협을 보여주는 지도 위에 송유관의 모습이 합성돼 있다. 연합뉴스 자료 사진


실제로 국제 유가는 이날 대규모 전략 비축유 방출 결정에도 사흘 만에 다시 장중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섰다. ICE 선물거래소에서 5월 인도분 브렌트유 선물은 이날 장중 한때 101.53달러까지 기록하는 등 하루 만에 약 9% 상승했다. 지난 9일 장중 한때 119달러까지 치솟은 후 진정세를 보이다 사흘 만에 다시 뛴 것이다. 뉴욕상품거래소에서 4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 선물도 배럴당 94.04달러로 전날 종가보다 7% 이상 급등했다.

호르무즈 해협 통행이 정상화되지 않는 한 모든 조치는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우려도 유가 상승세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이날 호르무즈 해협 일대에선 태국, 일본 등 외국 선박 4척이 잇따라 피격돼 긴장감이 커졌다. 이란의 공세 강화에 미군의 유조선 호위도 녹록지 않은 상황이 되면서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장기화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WSJ은 전했다.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 운항을 저지하는 것을 넘어 이날 이라크 영해에 정박 중인 외국 유조선 2척을 공격하는 등 페르시아만 전역으로 해상 타격 범위를 넓히고 있다. 이란군을 통합지휘하는 중앙군사본부 카탐 알안비야는 이날 “석유와 에너지 가격을 인공호흡기로 낮추진 못한다”며 “유가는 당신들이 불안케 한 역내 안보에 달린 만큼 배럴당 200달러를 각오하라”고 경고했다.

김희진 기자 h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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