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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톱 든 90세 거장, 나무에 생명 불어넣다... 김윤신 대규모 회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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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김윤신 작가. 호암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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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암미술관이 한국 여성 조각 1세대를 대표하는 김윤신의 70여 년에 걸친 삶과 예술세계를 조명하는 첫 대규모 회고전 '김윤신: 합이합일 분이분일'을 열고 작가의 주요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뉴시스



【용인=유선준 기자】 "나는 나무예요. 나무는 내 영원한 친구입니다."

김윤신 작가(90)의 말처럼 전시장은 온통 나무조각으로 가득 찼다. 거친 나무조각과 세심히 깎아낸 나무조각, 뼈대만 앙상한 조각들은 각기 자신만의 생명력을 내뿜었다. 작가의 작업이 매 순간 혼연일체가 돼서인지 조각된 나무들은 또 다른 생명을 얻은 듯 자연을 펼쳐 보였다.

한국 현대조각의 기틀을 마련하고 현대조각의 전개에 중요한 역할을 해온 1세대 여성 조각가 김윤신의 대규모 회고전이 경기도 용인에서 열린다. 호암미술관은 오는 6월 28일까지 '김윤신: 합이합일 분이분일(合二合一 分二分一)'전을 개최한다고 12일 밝혔다.

이번 전시는 70여년간 자연과 생명을 노래해 온 작가의 예술 세계를 총망라하며, 평면과 입체를 넘나드는 작품 170여점을 선보인다.

전날 호암미술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김 작가는 구순이 넘는 나이에도 아직도 전기톱을 들고 나무를 깎는 작업을 하고 있는 원동력에 대해 "작업은 내 정신과 몸이 하나가 되는 과정"이라며 "나무는 나의 영원한 친구"라고 식지 않는 열정을 드러냈다.

그는 아르헨티나와 멕시코 등 이국적인 자연환경 속에서 얻은 영감을 작품에 투영해 왔다. 특히 나무를 주된 매체로 삼은 이유에 대해 "어린 시절부터 나무는 소통하는 친구였다"며 "재료의 물성을 거스르지 않고 자연스럽게 자신의 움직임을 담아내는 것이 작업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1935년 강원도 원산에서 태어난 김 작가는 해방과 전쟁의 격동기를 거치며 한국 조각계에 독창적인 발자취를 남겼다. 1970년대 추상조각을 선보이며 주목받은 그는 1980년대 중반 아르헨티나로 이주해 남미의 거대한 나무를 재료로 현대성과 원시성이 공존하는 독보적 스타일을 정립했다.

전시의 핵심 이념인 '합이합일 분이분일'은 작가와 재료가 만나 하나가 되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작품이 탄생한다는 철학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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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현선 호암미술관 수석 큐레이터가 지난 11일 경기도 용인시 호암미술관에서 열리는 회고전 '김윤신: 합이합일 분이분일'에서 김윤신 작가의 대표작 '2013-16(2013)'을 소개하고 있다. 뉴시스


1층 전시실에서는 1970년대 '기원쌓기' 시리즈와 파리 유학 시절의 판화, 드로잉을 통해 작가의 초기 조형적 관심을 조망한다. 이어지는 섹션에서는 전기톱을 사용해 나무의 원초적 생명력을 극대화한 아르헨티나 시기의 역동적인 작업들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1983년 아르헨티나로 이주한 이후 전기톱을 활용해 남미의 육중한 나무를 조각한 작품들도 선보인다. 이 작품들은 자연의 원초적 생명력을 역동적으로 드러내며 그의 예술 세계의 절정을 보여준다.

대표작 '2013-16(2013)'은 그가 아르헨티나 안데스산맥의 장대한 풍광에서 받은 깊은 감동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T자형 구조를 기본으로 두 개의 판재를 다른 각도로 배치해 대자연의 웅장함을 담아냈다. 단순한 자연의 묘사를 넘어 그 숭고함과 경이로움을 표현하고자 한 자신의 의도를 충실히 구현하기 위해 이 작품을 여러 해에 걸쳐 완성했다.

2013년 처음 제작됐지만, '완성이란 없다'는 김 작가의 지론처럼 이후 조금씩 형태를 수정하고 구성에 변화를 주며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시간을 두고 작품을 다시 살피고 다듬는 그의 특유의 방식은 창작이 완성이라는 닫힌 결말이 아닌, 매 순간 임하는 열린 과정임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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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신 작가 '합이합일 분이분일 2020-45'(왼쪽)와 '노래하는 나무 2013-16V1'. 호암미술관 제공


2층에서는 돌조각과 함께 2000년대 이후 아르헨티나 원주민 마푸체 부족의 색채를 수용한 조각들이 전시된다. 작가가 ‘회화-조각’이라 명명한 최신작 '노래하는 나무 2013-16V1(2025)'은 알루미늄 캐스팅에 아크릴 채색을 더해 장르 간 경계를 유연하게 확장하는 구순 작가의 현재진행형 에너지를 여실히 보여 준다.

이밖에 코로나19 대유행 시기에 고안한 새로운 유형의 작업도 선보인다. 외부 활동 제한으로 재료를 구하는 것이 어려워 집 주변 건축 폐자재 등을 활용한 '2020-45'가 대표적이다. 이 시기 작품은 추상화를 입체적으로 구성한 듯한 조각적 회화, 혹은 회화적 조각의 형태를 이룬다.

이에 대해 김 작가는 "어린시절 나무에 그림을 그리고 장난을 많이 쳤다"며 "그 마음으로 나무에 그리기 시작했는데, 일종의 '회화 조각'"이라고 부연했다.

전시를 기획한 태현선 리움미술관 수석 큐레이터는 "김 작가는 숨 쉬듯 작업하며 예술과 삶을 일치시켜온 작가"라며 "톱질과 망치질 자국이 선명한 그의 작업은 동시대 미술에서 보기 드문 '작가'라는 존재의 무게를 경험하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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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암미술관이 한국 여성 조각 1세대를 대표하는 김윤신의 70여 년에 걸친 삶과 예술세계를 조명하는 첫 대규모 회고전 '김윤신: 합이합일 분이분일'을 열고 작가의 주요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뉴시스


최근 김 작가는 조각에 채색을 결합하는 등 새로운 시도를 멈추지 않고 있다. 후배 여성 작가들에게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해나가는 것이 사회의 밑거름이 된다"는 조언을 남겼다.

이번 전시는 한국 현대 조각의 기틀을 마련한 그의 60년 예술 인생을 망라하는 자리다. 끊임없이 회춘하는 예술적 생명력을 증명하는 시간을 선사한다.

한편, 전시 기간 중에는 작가와의 대화(27일), 대중강연, 국제 학술 심포지엄 등 풍성한 연계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모든 프로그램은 리움미술관 홈페이지를 통해 사전 예약 후 참여할 수 있다.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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