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5일 일본 야마구치현 시모노세키시 인근 해상에서 열린 곤론마루 침몰 희생자를 위한 추모 행사에 참여한 유족들이 선박 갑판에서 바다를 향해 헌화하고 있다. 시모노세키 공습의 전모(下関空襲の全貌) 서적 캡처 |
일제강점기 한국과 일본을 오가던 연락선 ‘곤론마루(崑崙丸)’ 침몰과 관련한 국내 연구는 사실상 전무하다. 12일 일제강점기 희생자와 관련한 연구 조사를 추진하는 공익법인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관계자는 “곤론마루와 같은 연락선 침몰 자료를 찾았으나 확인할 수 없었고 해당 사안을 연구한 연구원도 없었다”고 말했다.
한국교육학술정보원의 학술연구정보서비스(RISS)에서도 관련 연구 논문이 검색되지 않았다. 한글로 된 서적은 김문길 한일문화연구소장(81·부산외국어대 명예교수)이 광복 70주년을 맞은 2015년 7월 펴낸 52쪽 분량의 소책자 ‘곤론마루 격침 사건’이 유일했다. 김승 한국해양대 교수(국제해양문제연구소)는 “일제 말기에는 강력한 언론 통제로 신문사조차 강제 폐간돼 역사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며 “곤론마루 침몰은 독립운동도 아닌 군 관련 사건이기에 일제가 정보를 더욱 극비로 관리해 사료 찾기가 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침몰선에서 빠져나와 13시간의 표류 끝에 생존한 기관사의 인터뷰 등을 담은 일본어 서적 ‘관문해협도선사(関門海峡渡船史)’(2004년 발행), ‘시모노세키 공습의 전모(下関空襲の全貌)’(2019년), ‘곤론마루 침몰 비화와 후타오이지마섬(崑崙丸沈没秘話と蓋井島)’(2012년) 등에서 당시 상황을 확인할 수 있었다. 책은 지난 달 23일 일본 시모노세키 곤론마루 위령비 방문 때 만난 향토사학자 오하마 히로유키 씨(79)가 제공했고, 번역 작업은 1975년부터 1988년까지 일본 교토대와 고베대에서 학위를 취득한 김 소장이 도왔다.
곤론마루 침몰 당시 상황을 증언한 기관사 마쓰바야시 마사오 씨 모습. 관문해협도선사(関門海峡渡船史) 서적 캡처 |
책에는 침몰 전후 상황이 생생하게 담겼다. 기관사 마쓰바야시 마사오(松林 正夫)가 1987년 7월 증언한 내용이 핵심이다. 철도청 소속이던 마사오는 18세부터 곤론마루에서 근무했다. 10월 5일 오전 2시 근무 교대를 앞두고 청소와 점검을 위해 갑판에 올랐다가 ‘쿵’ 하는 충격으로 바닥에 뒹굴었다. 옆에 있던 동료가 “화약 냄새가 난다. 어뢰다”라고 소리쳤다. 배의 선미부터 바다로 잠기기 시작했으며 선체는 오른쪽으로 기울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바다 위에 떠 있었고, 배의 3분의 2가 잠긴 상태였다. 배가 침몰하며 생기는 소용돌이에 빨려 들어갈 것을 우려해 최대한 멀리 헤엄쳤지만 결국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곤론마루 침몰 당시 기관사 마쓰바야시 마사오가 표류하며 겪은 상황이 기록돼 있다. 관문해협도선사(関門海峡渡船史) 서적 캡처 |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코르크로 된 사각형 뗏목을 발견해 그 위에 몸을 의지했다. 다른 생존자 7명이 함께 표류하던 중 검은 배 한 척이 모습을 드러냈다. 구조선이 맞는지 숨을 죽이고 지켜보던 순간 갑자기 불꽃을 튀기며 사격이 시작됐다. 그는 “생존자를 확인하고 사살하려는 것처럼 보였다”고 회상했다. 바닷속에 몸을 던져 목숨을 건질 수 있었고, 다시 뗏목으로 올라온 이들은 서로 말을 걸며 버텼고 13시간 후 한 선박이 나타나 구조될 수 있었다. 구조선에는 다른 생존자 10명이 먼저 구조돼 있었다. 인근 항구로 옮겨져 진료를 받은 이들은 6일 부산으로 이송돼 신체검사와 조사를 받았다. 이어 7일 오전 시모노세키로 돌아와 다시 조사받고 귀가했다.
가족들은 깜짝 놀랐다. 그의 생존 사실이 통보되지 않아 집에서 이미 장례 준비가 진행 중이었던 것. 이후 한 달 넘게 통원 치료를 받았고, 생존자들에게 위로금 50엔이 지급됐다. 당시 관부연락선 여객 운임은 일등석이 20엔, 이등석이 10엔이었다고 한다. 곤론마루 침몰 후 관부연락선에서 구명조끼 상시 착용이 의무화됐다고 그가 설명했다.
책에는 바닷속 소리를 탐지해 적 잠수함을 찾는 음탐병의 회상도 담겨 있다. 10월 4일 밤 시모노세키 인근에서 당직 근무 중이었던 야지마 가쓰미는 “어뢰로 추정되는 음향을 감지해 즉시 보고했으나 당직 하사관이 졸고 있었고, 정확한 위치를 확인하는 절차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자체적으로 계산한 결과 음향 발생 지점이 70㎞ 떨어진 오키노시마 인근 해역으로 추정했는데 그 정도로 먼 곳에서 어뢰 음향이 도달할 리 없을 것으로 여겼다고 회상했다.
김 소장은 “일본 서적들은 정부와 학계 차원의 공신력 있는 연구가 아닌 시모노세키의 향토사학자들의 조사 및 연구 결과를 엮은 것”이라며 “현재 고령으로 이런 연구자마저 거의 숨진 상황인 만큼 더 늦기 전에 생존자와 유족을 찾아 제대로 된 사료를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화영 기자 run@donga.com
Copyright Ⓒ 동아일보.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