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주 소각으로 인한 주주환원 제고 등 긍정적 효과. |
자사주 의무 소각의 핵심은 단순히 유통주식 수를 줄여 주당 가치를 높이는 데 그치지 않는다. 기업이 주식을 창고에 쌓아두지 않고 실제로 없애는 순간, 말뿐인 주주환원 정책이 아닌 실행으로 다가온다는 점이다.
1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이번 개정 상법 시행은 자사주 활용 관행 전반에 변화를 예고했다. 금융위원회는 기관투자자의 자사주 소각 요구를 ‘경영권 영향 목적’이 아닌 주주가치 제고 활동으로 해석해 주주행동의 범위를 넓혔다.
자사주 소각이 주가에 긍정적으로 읽히는 이유는 지표 개선 효과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국내 증시는 시가총액을 산정할 때 자사주를 포함한다. 자사주를 소각하게 되면 시가총액은 줄겠지만, 여러 주당 지표가 상승하게 된다.
순이익 규모가 같더라도 발행주식 수가 줄면 주당순이익(EPS), 주당순자산가치(BPS)는 높아지고, 시장은 이를 밸류에이션 재평가의 출발점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주주환원 정책이 정례화되면 주가순자산비율(PBR)이나 자기자본이익률(ROE) 개선 기대도 함께 반영된다.
2018년 11월 자사주를 전량 소각한 삼성전자는 보통주 주식 수가 약 7% 감소하면서 EPS는 7.7%, BPS는 7.5% 개선됐다. 주가수익비율(PER)과 PBR은 약 14% 낮아졌다. 유건호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자사주 소각이 멀티플에 미치는 방향을 보여주는 사례”라며 “최근 주가 상승으로 밸류에이션 부담이 확대된 상황에서 자사주 소각은 일부 종목의 멀티플 부담을 완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시장 신뢰 측면에서도 자사주를 왜 샀는지보다 어떻게 활용할지가 분명해졌다. 그동안 자사주는 취득 이후 장기간 보유되며 필요할 때 처분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고, 때문에 주주환원 수단인지 경영권 방어용 탄약인지에 대한 의문이 따라붙었다.
오랜 기간 자사주가 대주주의 편법적 지배력 확대 수단으로 남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 이번 개정안 시행으로 기존에 갖고 있던 자사주를 계속 보유하려면 이사회가 보유 목적·기간·처분 방안을 담은 자기주식 보유·처분계획을 마련해 정기 주주총회 승인을 받도록 해 처분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질 전망이다.
지배력 왜곡 완화 효과도 빼놓을 수 없다. 자사주는 보유 중일 때 의결권이 없지만, 제3자에게 처분되면 사실상 의결권이 부활해 우호지분 확보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금융당국이 자사주 맞교환, 인적분할 과정의 자사주 마법 등을 문제로 삼아 제도 손질에 나선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번 개정 상법이 자기주식의 권리 제한과 소각 원칙을 명문화한 것은 자사주를 지배구조 설계 도구가 아니라 주주가치 제고 수단으로 되돌리겠다는 신호에 가깝다. 제도 취지가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한다면, 대주주에게 유리하고 일반 주주에게 불리했던 구조적 왜곡은 일정 부분 완화될 가능성이 크다.
기업들이 이미 보유하고 있던 자사주를 매각하면서 잠재적인 오버행 가능성도 영구적으로 사라질 것으로 기대된다.
관건은 공시와 설명의 구체성이다. 기업은 자사주를 계속 보유하려는 경우 그 목적과 예외 사유를 더 명확히 제시해야 하고, 시장은 소각 규모와 시점, 잔여 물량의 활용 계획까지 따져 묻게 된다. 특히 3월 정기주총 시즌에는 기업들이 ‘주주가치 제고’라는 추상적 표현을 넘어, 언제 얼마를 소각하고 어떤 물량은 왜 남겨두는지를 얼마나 구체적으로 설명하느냐가 진짜 환원 여부를 가르는 기준이 될 전망이다.
김용진 서강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자사주 소각이 주가에 미치는 영향은 일시적으로 보지 않는다”라며 “한국 기업들은 다른 글로벌 기업들과 비교했을 때 밸류에이션이 워낙 낮은 상태로, 주가를 높이고 주주환원을 강화한다는 의미로 볼 때 자사주 소각은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강조했다.
[이투데이/정수천 기자 ( int1000@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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