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사태로 인한 고유가 여파로 물류업계 부담이 커진 11일 부산 남구의 한 주차장에 대형 화물차들이 줄지어 멈춰서 있다. 사진=뉴시스화상 |
[파이낸셜뉴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여파로 국제유가와 나프타 가격이 급등하면서 국내 석유화학업계가 초유의 위기에 직면했다. 원료 가격이 제품 가격을 넘어서는 ‘역전 현상’이 발생하면서 생산할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여천NCC에 이어 롯데케미칼마저 공급 불가항력 가능성을 선언하는 등 전쟁이 장기화될 경우 업계 전반이 공장 셧다운(가동 중단) 위기에 몰릴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 “이런 수치는 처음”…에틸렌 스프레드 마이너스
11일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석유화학업계의 핵심 수익성 지표인 에틸렌 스프레드는 t당 -149달러를 기록했다. 에틸렌 스프레드는 ‘석유화학의 쌀’로 불리는 기초유분 에틸렌 가격에서 원재료인 나프타 가격을 뺀 값이다.
나프타 가격은 t당 1009달러로 전주 대비 66.78% 급등했다. 에틸렌 가격도 t당 860달러로 전주보다 31.3% 올랐지만 나프타 상승 폭이 두 배 이상 커지면서 스프레드는 결국 마이너스로 떨어졌다.
업계에서는 에틸렌 스프레드의 손익분기점을 통상 t당 250달러 수준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올해 1·4분기 스프레드는 이미 t당 50~80달러 수준에 머물며 수익성이 크게 악화된 상태였다. 여기에 전쟁 여파로 원료 가격이 급등하면서 결국 스프레드가 마이너스로 전환됐다.
업계 관계자는 “에틸렌 스프레드는 나프타 가격이나 에틸렌 구매 가격 등 어떤 기준을 적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이런 수준의 수치는 처음 본다”며 “시장 불안이 커지면서 나프타와 에틸렌 가격이 매일 요동치는 등 사실상 초유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원료 공급망 불안도 위기를 키우고 있다. 국내에 공급되는 나프타는 절반가량을 수입에 의존하고 나머지는 국내 정유 공정에서 생산된다.
한국의 중동산 원유 수입 비중은 약 70%에 달하며 이 가운데 상당수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다. 수입 나프타의 54% 역시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들어온다. 최근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봉쇄에 나선 가운데 기뢰 설치 움직임까지 포착되면서 공급 차질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다.
■ 나프타 대란에 “최악의 상황”…정부 대응 준비
국내 석유화학 업체들은 이미 나프타 조달 차질로 공장 가동률을 낮추기 시작했다. 여천NCC에 이어 롯데케미칼도 주요 고객사들에 제품 공급 이행 지연 및 조정을 통보하며 공급 불가항력 가능성을 선언했다. 롯데케미칼, LG화학, 대한유화 등 주요 업체들도 공장 가동률을 낮추거나 정기보수 일정을 앞당기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ICIS는 국내 나프타분해설비(NCC) 가동률이 지난달 80%에서 이달 69%까지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나프타 가격까지 급등하면서 가동률은 더 떨어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업계와 전문가들은 이번 상황이 단순한 업황 악화를 넘어 산업 전반의 구조적 위기로 번질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명예교수는 “정부가 기름값 안정에만 집중하고 나프타 수급에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부족해 보인다”며 “석유화학 업계는 지금 위기를 넘어 사실상 최악의 상황에 놓여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나프타 수급 안정 대책 마련에 나섰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나프타는 대체 수입원 확보와 대체 원료 수급 등을 통해 공급 차질에 대응하겠다”며 “재정·금융 지원 등 정부 지원 방안도 신속히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정부 관계자는 지원 방안 발표 시점에 대해 “기업 및 관계 부처와 논의가 진행 중인 만큼 경과를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업계에서는 중동 정세가 장기화될 경우 국내 석유화학 산업 전반에 생산 차질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solidkjy@fnnews.com 구자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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