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재건축 '어포더블 하우징'으로 도전장
"과대옵션 빼고 필요한 가전·가구 '구독'으로"
"커뮤니티도 입주민 맞춰…실내 구조도 가변"
무신사나 다이소에서 물건을 살 때는 품질에 대한 고민을 크게 하지 않는다. 품질이 떨어져 기대감이 아예 없어서 그런 게 아니다. 가격은 괜찮으면서 물건의 질이 어느 정도 보장될 거라는 믿음이 있고 가성비가 우수한 제품이라는 판단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극동건설은 재건축·재개발을 포함한 주택 시장에서 그런 물건을 선보이는 플랫폼 역할을 하고 싶다.
강경민 극동건설 대표는 지난 9일 비즈워치와 만나 이렇게 말했다. 직장 생활 30년 중 대부분을 건설사의 '영업맨'으로 살아왔다는 강 대표가 현재 과열한 재건축·재개발 시장에서 출사표를 던지며 내보인 승부수다. HDC현대산업개발 도시정비사업담당 상무 출신으로 재건축·재개발에 대해서는 '빠삭한' 인물의 통찰이 담긴 경영 전략이다.
강경민 극동건설 대표이사./그래픽=비즈워치 |
"내 집 마련, 고민 덜어 주려면"
강경민 대표와 만나 처음 들은 이야기는 패션 플랫폼 무신사와 생활용품점 브랜드 다이소의 성장 과정이었다. 건설사 대표가 사업 모델을 구상할 때 참고했다기에는 둘 다 뜻밖이다. 하지만 핵심은 세계 주택시장의 한 흐름인 '어포더블 하우징(Affordable Housing, 부담 가능한 주택 공급)'에 닿아 있었다.
강 대표는 "무신사를 찾는 소비자는 가격과 품질에 대해서는 고민을 덜 한다"고 운을 뗐다. 이어 "소비자는 무신사에서 얼마면 옷을 살 수 있다는 정보를 이미 갖고 있고 무신사 제품이 일정 수준은 넘어갈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계속해서 "결국은 소비자가 그 두 가지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색상과 자기 체형에 맞는 것만 생각해 고르면 된다"면서 "아파트도 그렇게 지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덧붙였다.
다이소 역시 마찬가지라는 게 강 대표의 설명이다. 그는 "다이소에서 구매한 물건에 대해 우리는 대단한 걸 바라지 않는다"면서 "신축 아파트 중에도 화려하고 고급스러움을 필요로 하는 건 가격 문제 때문에라도 소수일 수밖에 없고 주거의 질에만 주목한 일반적인 보급형 시장이 주를 이룰 것"이라고 짚었다.
특히 강 대표는 이재명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시장에 미치는 영향과 주거를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에 주목했다. 그는 "이미 지방의 주택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더는 작용하지 않고 있고 남을 초대해 화려하게 꾸민 걸 보여주는 주거 문화도 많이 사라졌다"면서 "화려하고 고급 아파트를 원하는 시장과 주거의 질에만 신경 쓴 일반적인 보급형 시장으로 나뉠 것이고 우리가 주목하는 건 보급형 시장"이라고 강조했다.
강경민 극동건설 대표이사가 사업 구상을 설명하고 있다./사진=비즈워치 |
"요새 아파트, 너무 과하지 않나요?"
강경민 대표는 비교적 저렴한 공사비로 품질이 보장된 아파트를 공급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도 밝혔다. 최근 서울 주요 입지 재건축·재개발 시장의 3.3㎡(평)당 공사비는 1000만원을 넘어섰다. 강 대표는 이 같은 공사비 상승은 불필요한 공동이용시설(커뮤니티)의 확대를 비롯한 과잉 옵션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강 대표는 "어느 단지나 수영장과 골프장 같은 거창한 시설이 필요한 게 아니다. 지금도 입주민이 모든 커뮤니티를 다 이용하지는 않지 않냐"고 되물으며 "역세권에 위치한 단지는 직장인을 위한 커뮤니티가 필요할 것이고 학교 근처 단지는 맘카페와 키즈카페 등 필요한 시설만을 조성하면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강 대표는 재건축·재개발 시장에서 주택을 공급하는 플랫폼으로 거듭나기 위해 직원들이 분양 상담사가 아닌 '라이프 스타일러'로 나설 것이라고도 강조했다.
그는 "소비자에게 집을 투기의 공간이 아닌 본인의 생활상에 맞춰서 내 삶에 어떤 게 필요한 것인지를 선택하도록 할 것"이라면서 "집안에도 필요한 옵션만 집어넣도록 할 것이다. 조명을 예로 들면 일정 수준의 품질을 유지하는 제품을 넣고 조명색이나 밝기와 같은 세부적인 부분만 소비자가 고르게 한다면 또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부분이 생길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는 대부분 아파트를 분양 시점에서 옵션을 고르게 하는데 입주 시점에는 오히려 구형 모델이 된 가구나 가전을 수급하기 어려워 웃돈을 줘야 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면서 "차라리 특정 회사와 몇 년 치 구독 방식으로 계약해 입주 시점에서 가장 좋은 걸 가져다 놓으면 옵션 비용을 절반 이하로 낮출 수 있다"고 덧붙였다.
집을 새로 짓고 나서도 개별주택 내부의 구조를 바꿀 수 있도록 설계를 표준화하는 것도 강 대표의 구상이다. 10년 넘게 산 집을 떠나지 않고도 내부 구조를 바꾸기만 한다면 가족 구성 변화가 있더라도 새집에서 생활하는 느낌을 들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는 "자식이 머물던 방이 비게 된다면 그곳을 거실하고도 연결해 넓은 서재로 쓴다거나 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며 "지금은 습식 공사(물을 섞어 배합하는 콘크리트 등 시공)가 많지만 조립식과 유사한 건식 공사가 늘어나고 이를 표준화하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말했다.
강경민 극동건설 대표./사진=비즈워치 |
저비용이지만 '괜찮은' 품질이라면?
극동건설은 앞선 사업 전략을 바탕으로 주택사업 수주 확대를 위해 남광토건과 함께 공동주택 브랜드 통합에 나섰다. 1947년 같은 해 창립한 양 사는 세운건설을 모기업으로 두고 있다.
극동건설이 보유한 주택 브랜드 '스타클래스'는 오피스텔 및 빌딩 등에 사용하고 남광토건의 '하우스토리'를 중심으로 브랜드 재단장에 나선다. 연내 브랜드 정체성(BI)도 새롭게 가다듬어 발표할 예정이다. 새 브랜드를 구축하기보다 역사 있는 브랜드를 융합하고 활용해 합리적으로 재탄생시키겠다는 것이다.
양 사는 지난해 말부터 주택마케팅팀과 AM(자산관리)팀을 신설해 주택사업을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체계를 구축했다. 강경민 대표의 극동건설 합류도 이 시기와 맞물린 것이다.
극동건설의 이 같은 사업 전략 변화는 오너가의 철학과도 맞닿아있다. 강 대표는 이날 퇴임한 조기붕 부회장이 연령대나 자라온 환경이 비슷한 '횡적인 인간 관계'에서 벗어나 '종적인 관계'의 중요성을 언급했다고 전했다. 서로 다른 시대를 경험한 구성원 간 상호작용이 유연한 변화를 이끌 수 있다는 것. 80년 역사의 남광토건과 극동건설이 세대를 아우르는 트렌디(trendy, 유행적인)한 사업 모델 구축에 나설 수 있던 배경이기도 하다.
극동건설은 올해 서울 정비시장에 출사표를 던지면서 주요 입지의 재건축 시공권 확보에도 적극적이다. 우선 동작구 본동 148-2 일대 13층 높이의 1개동, 123가구로 이뤄진 극동강변 아파트를 재건축하는 사업을 따냈다. ▷관련기사: '80살' 극동건설·남광토건, 서울 정비사업 출사표(2월12일)
아울러 강 대표는 우리나라 최초 아파트로 알려진 충정아파트를 포함한 서대문구 '마포로5구역 제2지구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 수주전도 지휘한다. 극동건설과 주택사업 체계를 공유하는 남광토건이 나서 두산건설과 수주 경쟁을 벌일 전망이다.
서울 재건축·재개발 수주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다수 건설사가 고급화를 강조하고 있다. 이와 달리 꼭 필요한 것 외에는 덜겠다고 나선 극동건설이다. 강 대표는 "세상의 모든 사람이 그렇게 한다고 하더라도 '과연 그게 맞는 길인가'를 고민해야 한다"면서 스스로 구상한 사업에 '전심전력'으로 나설 것을 각오했다.
마포로5구역 제2지구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에 포함된 충정아파트 전경. /사진=비즈워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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