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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팔면 가게 망할 수도”…횟집서 ‘국내 미기록종’ 발견한 해양생물 덕후 [덕후 계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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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시작된 ‘가오리 사랑’…해양생물 덕질로 이어져
덕질 범위, 국내 미기록종 보고·멸종위기종 구조까지
알바비·용돈 모아 500만원 투자…“목표는 신종 발견”
서울경제

바다와 거리가 있는 전남 여수 산동네 소년의 마음을 흔든 건 수산시장의 ‘가오리’였다. 그로부터 20년 뒤, 소년은 전국 위판장을 누비며 국내 미기록종을 기록하는 ‘해양생물 덕후’로 성장했다.

제주도에 거주하는 대학생 채유민(25) 씨 이야기다.

채 씨는 아르바이트비와 용돈을 쪼개 만든 ‘덕질 자금’ 500만 원을 지난 3년간 해양생물 덕질에 쏟아부었다. 남들에게는 시장 바닥에서 버려지던 이름 없는 물고기일지 모르지만, 그에게는 아직 기록되지 않은 우리 바다의 생물이다.

여수 산동네 소년, 가오리에 눈을 뜨다
채 씨가 해양생물에 관심을 갖게 된 건 7~8살 무렵. 수산시장과 아쿠아리움은 어렸던 그에게 특별한 놀이터였다.

그는 “시내에 나가면 자연스럽게 바닷가 근처 수산시장을 돌아다니며 물고기를 구경했다. 그때부터 해양생물에 관심갖기 시작했다”며 “특히 여수는 노랑가오리가 유명한데, 아쿠아리움에서 본 가오리들이 너무 귀여워 마음을 완전히 뺏겼다”고 말했다.

채 씨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 역시 가오리였다. 그중에서도 몸 너비가 최대 9m에 달하고 체중도 2톤(t)까지 나가는 ‘대왕쥐가오리’를 가장 좋아한다. 입 양쪽에 뿔처럼 생긴 독특한 지느러미를 가진 모습으로 채 씨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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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왕쥐가오리는 조선시대 해양생물학서 ‘자산어보’에도 기록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정식으로 보고되지 않은 종이었다. 이 점에 의구심을 품은 채 씨는 관련 자료를 조사하던 중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에 1998년 제주에서 잡힌 대왕쥐가오리 박제 표본이 있는 걸 발견했다.

채 씨는 “표본을 확인하고 2년 뒤인 2025년 12월, 국내 미기록종으로 정식 보고해 마침내 ‘대왕쥐가오리’라는 국명을 정식으로 얻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의 끈질긴 추적과 학술적 노력이 결실을 본 것일까. 해양수산부는 올해 1월 대왕쥐가오리를 ‘이달의 해양생물’로 선정했다.

“그거 먹으면 가게 문 닫을 수도 있습니다”
채 씨의 미기록종 발견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지난해 가을에는 제주 애월의 한 일식집 사장으로부터 “이상한 물고기가 잡혔는데 먹어도 되느냐”는 사진을 받았다.

사진 속 물고기는 해외에서 식중독 사례가 보고된 꼬치고기과 어종이었다. 지난해 기준으로 국내에 보고된 꼬치고기과 물고기들은 몸길이 30cm 안팎의 소형종이었다. 그러나 사진 속 개체는 얼핏 봐도 1m가 넘었다. 채 씨는 단번에 미기록종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사진을 보자마자 그거 먹으면 식중독 걸려서 가게 문 닫을 수도 있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겨우 먹는 걸 막았죠.”

채 씨는 곧장 현장으로 달려가 개체를 확보했다. 이후 전문가들과 논의해 입이 짧고 몸집이 큰 특징을 살려 ‘짧은입큰꼬치고기’라는 국명을 지어줬다. 국내에 꼬치고기과 어종이 새롭게 보고된 건 약 70년 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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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찬 사러 갔다가 ‘멸종위기종’을 만나기도
해양생물을 기록하는 채 씨의 활동은 때로 보호 활동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2023년 여름, 저녁 반찬거리를 사러 수산시장에 들렀던 채 씨는 소라들 사이에 섞여 팔리고 있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으로 지정된 국가보호종 ‘나팔고둥’이었다. 허가 없이 포획·채취·훼손할 경우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5000만 원 벌금에 처해질 수 있는 법적 보호종이다.

채 씨는 “나팔고둥은 일반 소라보다 2~3배는 크고 껍질 모양도 독특하지만, 일반인들이나 상인들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 “횟집 수조에 섞여 있는 걸 보고 곧바로 구조해 바다로 돌려보냈다”고 말했다.

나팔고둥은 내장과 점액에 복어의 독으로 알려진 테트로도톡신이 있어 잘못 섭취할 경우 최대 사망에 이를 수 있는 위험도 있다. 이 때문에 채 씨는 상인들에게 보호종이라는 사실과 위험 생물이라는 점을 알리고 방류를 권고한다. 지금까지 그가 구조한 나팔고둥은 총 12마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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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씨는 겨울마다 동해안에서 반복되는 바다쇠오리 익사 문제에도 관심을 가졌다. 어민들의 그물에 걸려 집단 폐사하는 사례가 이어지기 때문이다. 지난해 포항에서만 200여 마리의 사체를 목격한 채 씨는 이후 구조 활동과 함께 문제를 알리기 시작했다.

그 결과 지난달 9일 김성범 해양수산부 장관 직무대행은 SNS를 통해 “바다쇠오리 혼획 문제를 담은 영상과 언론 보도를 접했다”며 “단기적인 조치는 물론 근본적인 제도 개선과 국제 협력까지 체계적으로 대응하겠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세계자연기금(WWF)은 전 세계 바다의 총 생산가치를 24조 달러(약 3경 원) 이상으로 추산한다. 탄소 흡수와 생물 다양성 등 비시장적 가치까지 포함한 규모다.

채 씨의 활동은 거창한 연구 프로젝트는 아니지만, 우리 바다 생물의 기록과 보호라는 측면에서 의미가 작지 않다.

“수입은 알바비, 지출은 500만 원”...알뜰살뜰 아껴 하는 덕질
채 씨는 지금까지 해양생물 덕질에 약 500만 원을 사용했다. 대부분 아르바이트로 번 돈과 부모님이 주시는 용돈을 아껴 마련했다. 대학생 채 씨에게는 결코 적지 않은 금액이다.

그는 “차가 없어서 주로 걸어 다니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며 “제주에 살다 보니 비행기로 육지를 오가야 해, 가장 큰 지출은 교통비”라고 말했다. 이어 “채집 도구·관찰 수조·촬영용 조명 등도 사야 한다”고 덧붙였다.

표본도 직접 제작한다. 전문 약품값이 만만치 않아 걱정이지만, 아직은 소위 ‘야매’ 방식으로 비용을 아끼며 독학 중이다. 그의 마인드는 단순하다. “즐거우니까 됐다”는 것. 하지만 돈 때문에 가끔은 속이 쓰리기도 하다.

“유독 가격이 비싼 물고기가 있어요. 다금바리 같은 건 1kg당 가격이 10만원을 훌쩍 넘거든요. 실제로 미기록종 바리과 어종이 경매에 나왔는데, 비싸고 돈이 없어서 경매에서 밀렸어요. 그날은 너무 아쉬워서 잠도 못 잤습니다.”

덕질은 계속된다…“신종 발견이 최종 목표”
주변에서는 종종 채 씨를 돌연변이 또는 독특한 사람으로 부른다. 물고기를 좋아한다고 말하면 “회로 먹으면 맛있겠다”는 반응이 먼저 돌아오는 환경에서, 채 씨는 해양생물의 이름을 짓고 보호 활동에 몰두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채 씨는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간다. 그는 “현직 연구원분들에 비하면 제 작업은 애들 장난 수준일지 모르지만, 언젠가 그분들과 동등한 실력을 갖추는 게 꿈”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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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씨의 목표는 ‘신종 발견’이다. 해외에는 이미 기록돼 있지만 국내에는 보고되지 않은 미기록종을 넘어 전 세계에서 처음 발견되는 신종을 직접 기록하고 싶다는 것.

지난 3년간 그가 바다에 투자한 500만 원은 단순한 취미 비용이 아니다. 전국 위판장과 바다를 누비며 우리 바다 생태계의 빈칸을 하나씩 채워온 25살 청년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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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연 AX콘텐츠랩 기자 dorem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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