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바이오산업 발전을 위한 약가제도 개편 비상대책위원회는 10일 한국제약바이오협회 회관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신대현 기자 |
정부가 오는 11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 소위원회에서 약가인하율을 공개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제약업계가 “약가 인하는 신약 개발 등 혁신 생태계 조성에 역행하는 처사”라며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제약바이오산업 발전을 위한 약가제도 개편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는 10일 한국제약바이오협회 회관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불확실성이 극대화되는 국제 정세 속에서 급격하고도 대규모의 약가 인하마저 강행된다면 산업계로서는 더 이상 버티기 힘든 상황으로 내몰릴 것”이라고 밝혔다. 비대위는 지난해 11월 말 정부의 약가제도 개편안 발표 이후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 관련 5개 단체(한국제약바이오협회, 한국바이오의약품협회, 한국의약품수출입협회, 한국신약개발연구조합, 한국제약협동조합)가 모여 구성됐다.
이번 약가제도 개편안은 올해 하반기부터 신약의 53.55%인 제네릭(복제약) 약가를 40%로 낮추는 것이 핵심이다. 정부는 국내 복제약 가격이 다른 국가보다 비싸기 때문에 약가 인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또 현재 대부분 국내 제약사들이 신약 개발 보다 복제약 생산에 집중하고 있어 제약업계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는 취지도 담겨있다. 실제 대부분 국내 제약사들은 비교적 투자 부담이 적고 개발이 쉬운 복제약에 의존하고 있다. 복제약이 국내 급여의약품의 약 90%를 차지할 정도다.
개편안에는 ‘시장연동형 실거래가’를 재도입하는 내용도 담겼다. 시장연동형 실거래가제는 불법 리베이트 근절과 환자 부담 경감 등을 명분으로 지난 2010년 도입됐다. 병원과 약국 등 요양기관이 의약품을 정부가 정한 상한액보다 싸게 구매하면 그 차액의 70%를 요양기관에 인센티브로 제공하는 제도다.
그러나 대형병원 쏠림과 비정상적 거래 증가, 리베이트 합법화 논란 등으로 2014년 폐지되면서 이 제도가 ‘처방·조제 약품비 절감 장려금 제도’로 대체됐다. 이번 개편에 따라 정부는 내년부터 시장연동형 실거래가제를 다시 도입해 인센티브 지급률을 현행 장려금 제도의 10~30%에서 50%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보건복지부는 오는 11일 건정심 전체회의에 앞서 소위원회를 열고 약가제도 개선방안을 단독 안건으로 상정해 논의할 예정이다. 복지부는 앞서 약가인하율 40%대를 언급한 이후 정확한 %를 공개한 적이 없는 상태로, 이번 건정심 소위원회 논의 이후 제약업계와의 본격적인 협상 국면이 전개될 전망이다. 정부는 이달 건정심 본회의에서 약가 개편안을 상정·통과시킬 방침이다.
하지만 제네릭 제품의 수익률이 20% 이상 내려간다는 점에서 제약사들이 체감하는 손실은 매우 클 수밖에 없다. 업계는 급격한 약가 인하가 제약 생태계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며 개편안이 정부안대로 시행되더라도 약가 인하가 국민 건강과 산업 구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입체적이고 실질적으로 분석할 것을 요청했다.
비대위는 “산업 육성과 약가 제도를 실질적으로 논의하는 정부와 산업계 간 의사결정 체계 구축 등을 촉구해왔지만, 지금까지 합리적 대안은 마련되지 않고 있다”며 “제약 산업은 국민 건강과 직결되는 국가 전략산업으로, 산업이 살아야 국민 건강도 지킬 수 있다. 한번 무너진 산업 생태계는 복원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의 폭격을 당한 이란 샤흐런 석유저장소. EPA연합 |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으로 중동 지역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도 부담이다. 중동 전쟁으로 국제 유가와 환율이 급등하면서 산업의 원가 부담이 폭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원료의약품의 해외 의존도가 높은 국내 상황을 감안하면 이번 사태로 인한 제약업계의 부담은 가중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2023년 기준 국내 원료의약품 자급률은 25.6%에 그쳤다. 2024년 자급률은 집계되지 않았으나, 31% 정도로 추정된다.
약가 인하가 산업 생태계를 훼손할 것이라는 우려는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비대위는 정부의 약가제도 발표 이후 기업들이 연구개발(R&D)과 설비 투자 계획을 축소하고, 채산성이 낮은 의약품의 품목 허가를 자진 취소하거나 생산라인 축소를 검토하는 기업들이 잇따르고 있다고 전했다. 비대위는 “산업의 성장 동력이 급속도로 위축되고 있다”며 “기업들은 현 상황을 영업이익률 하락 등 단순한 경영 위기가 아닌 생존의 문제로 여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국노총 전국화학노동조합연맹 의약·화장품분과 자료에 따르면 약가제도 개편이 현실화될 경우 제약바이오 기업의 연간 매출 손실 규모는 총 1조2144억원, 기업당 평균 233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영업이익은 평균 52% 급감할 것으로 예측됐다.
비대위는 불확실성이 커지는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일방적 정책 시행이 아닌 제대로 된 제도 설계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약가 인하 영향 분석 △유통질서 확립 △제약 산업 선진화 방안 등 3대 사항의 공동연구 착수를 정부에 제안했다. 비대위는 “의약품판촉영업자(CSO)의 급증과 수수료 지급 등에 따른 산업계의 유통질서의 현주소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건전한 유통질서 확립을 위한 제도 개선 방안도 공동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비대위는 산업 현장의 목소리를 국민과 정부에 전달하기 위해 비대위 참여 단체 회원 기업과 약업계 관계자들이 참여하는 서명운동을 전개할 계획이다. 노연홍 비대위원장은 “한국 제약 산업은 중대 기록에 서 있다. 산업이 무너지면 경제 성장의 동력은 사라지고, 국민 건강을 지탱할 기반도 함께 흔들린다”면서 “지금의 정책 결정이 한국 제약바이오 산업의 미래를 좌우한다. 산업계의 약가 인하 영향 분석 등 공동연구 요구에 대한 정부의 대승적인 수용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