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가 심리적 마지노선인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섰다. 미국발 상호관세 충격을 가까스로 넘긴 한국 경제에 또 다른 대외 충격이 덮친 셈이다. 시장에서는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이 장기화되면 유가가 배럴당 150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면서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 전반에 긴장감이 높아지는 모습이다.
우리 시간으로 9일 오전 미국 뉴욕상품거래소에서 거래된 4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 가격은 전장보다 14.85% 오른 배럴당 107.54달러를 기록했다. WTI 가격이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선 것은 2022년 7월 이후 처음이다.
같은 날 런던선물거래소에서 거래된 브렌트유 역시 배럴당 107달러선을 넘어섰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통행을 차단하면서 걸프 지역 원유 공급망이 흔들리고 주요 산유국의 저장시설 포화로 감산이 이어진 영향으로 분석된다.
시장에서는 유가 상승세가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최근 투자자 노트에서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원유 흐름이 정상화되지 않을 경우 이달 말 국제유가가 배럴당 150달러까지 상승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골드만삭스는 “호르무즈 해협의 원유 생산과 수송이 3월 내내 낮은 수준을 유지한다면 정제유 가격을 포함한 에너지 가격이 2008년 금융위기 당시와 2022년 에너지 위기 당시의 최고치를 넘어설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유가 급등이 현실화할 경우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의 충격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원유 대부분을 해외에서 들여오는 구조여서 국제유가 상승이 곧바로 무역수지와 물가, 성장률에 부담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올해 초 ‘경제성장전략’을 통해 평균 국제유가를 배럴당 62달러(두바이유 기준) 수준으로 가정하고 올해 경제성장률을 2.0%로 전망한 바 있다. 그러나 유가가 급등하면서 이 같은 성장 전망의 불확실성도 커지고 있다. 통상 국제유가가 배럴당 10달러 상승하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약 0.2%포인트 낮아지는 것으로 분석된다.
국내 기름값도 빠르게 반응하고 있다. 전쟁 발발 전인 지난달 27일 서울 평균 휘발유 가격은 ℓ당 1753.34원이었지만 불과 열흘 만에 약 11% 오르며 상승폭이 200원에 가까워졌다.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 역시 ℓ당 2000원선에 근접한 상황이다.
실제로 2000원을 넘어설 경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기름값이 급등했던 2022년 3월 이후 약 4년 만에 다시 2000원대를 기록하게 된다.
휘발유 가격을 역전한 경유 가격 상승도 해운·물류 비용 부담을 키울 가능성이 크다. 해운·물류 업계에서는 고유가가 장기화할 경우 운임 인상과 물류비 부담 확대가 불가피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중동 사태 여파로 국제유가가 상승하고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안전자산 선호가 강해지면서 환율도 급등하고 있다. 9일 원·달러 환율은 전일 대비 16.6원 오른 1493.0원에 출발해 장중 1499.2원까지 오르며 1500원대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고유가와 환율 상승이 겹치면서 수입물가가 오르고 다시 소비자물가로 전이되는 ‘이중 물가 압력’에 대한 부담도 커지는 모습이다.
금융시장도 크게 흔들리고 있다. 개전 이전 6000선을 넘어섰던 코스피 지수는 하락을 거듭하며 이날 오전 5100선까지 밀렸다. 이날 코스피가 6% 넘게 급락하면서 프로그램 매매 매도호가 일시효력 정지(매도 사이드카)가 발동되기도 했다.
중동 지정학적 리스크가 장기화할 경우 금융시장 변동성은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이 같은 충격이 발생하면 외국인 투자자뿐 아니라 국내 투자자들의 투자심리도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다”며 “안전자산 선호가 강해지면서 자금 유출 가능성도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아주경제=박기락 기자 kirock@a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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