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서울의 한 주유소에 유류 가격이 표시돼 있다. 2026.3.8 ⓒ 뉴스1 |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하고 원-달러 환율이 1500원 선에 육박하는 ‘퍼펙트스톰’이 한국 산업계를 강타하고 있다. 장기화된 내수침체 속에 반도체 슈퍼사이클로 살아나던 한국 경제에 찬물을 끼얹은 셈이다.
고유가와 고환율이 물류비와 원자재 상승으로 이어져 글로벌 소비 위축으로 이어진다면 반도체 슈퍼사이클마저 주춤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전쟁이 장기화 된다면 1970년대 오일 쇼크 이후 최악의 에너지 쇼크로 이어질 수 있다는 공포도 확산되는 분위기다.
●유가·환율 동반 급등에 ‘이중고 확산’
8일 외신 등에 따르면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서부텍사스산원유(WTI) 4월 인도분 가격은 배럴당 110달러를 넘어 120달러 선에 육박했다. 국제 유가가 100달러를 넘어선 것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에너지 시장이 요동쳤던 2022년 7월 이후 처음이다.
환율 역시 폭등세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19.1원 급등한 1495.5원에 마감하며 심리적 마지노선인 1500원 선을 턱밑까지 위협했다.
한국 기업들은 수출 의존도가 높을 뿐 아니라 수출을 위해 원자재를 수입해야하는 구조라 대외 변수에 유독 취약한 구조를 안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 초기 정유·석유화학에 국한됐던 위기감이 사태가 장기화 조짐에 자동차, 가전, 반도체 등 전체 산업으로 번지는 이유다.
기업들은 업종을 불문하고 비상 대응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연일 대책 회의를 하고 있다. 정유업계는 단기적으로 유가가 오르면 정제마진이 커져 이익을 얻지만, 공급 자체가 말라버린다면 공장을 돌리기 어려운 상태다. 철강, 석화 등 후방산업 역시 원자재 상승이라는 비용 부담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산업계는 글로벌 소비시장 침체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특히 우려한다. 미국 투자은행 번스타인은 최근 발간한 보고서에서 “에너지 가격 급등이 휘발유 가격을 끌어올려 신차 구매 수요를 꺾을 수 있다”며 현대자동차 등의 판매 하락을 경고하는 등 위기가 턱 밑까지 차오른 상태다.
국내 대기업의 한 임원은 “고환율·고유가로 인한 원가 압박도 문제지만, 글로벌 시장 침체로 자동차나 스마트폰 등 완제품이 팔리지 않는 상황이 가장 치명적”이라며 “전방 수요가 꺾이면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핵심 부품 생태계까지 도미노처럼 무너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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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맷집 약한 中企 “납품가 반영 못 해”… 연쇄 차질 우려
대기업보다 ‘맷집’이 약한 중소기업의 시름은 한층 더 깊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해 말 조사한 중소기업들의 목표 영업이익 달성을 위한 적정 환율은 달러당 1362.6원이었다. 환율 급등 피해로 ‘수입 원부자재 가격 상승(81.6%)’이 1위를 차지했고, ‘외화결제 비용 증가(41.8%)’, ‘해상·항공 운임 상승(36.2%)’이 뒤를 이었다.
경남의 공기압축기 생산 중소기업 관계자는 “수입 핵심 부품인 ‘블레이드’ 가격이 크게 올라 생산 원가 부담이 극심하다”고 토로했다. 석유화학 중소업체 관계자는 “고환율 때문에 수입 원자재 가격이 인상된 것과 마찬가지라서 원가 부담이 늘고 있지만, 납품단가에 그 인상분을 반영할 수 없어 우리가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중소기업계에서는 중동 정세 불안이 장기화될 경우 원자재 확보와 생산, 납품까지 영향을 미치는 ‘도미노식 산업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김희중 중소기업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은 “원가 상승 압력을 중소기업이 자체적으로 감당해야 하는 구조가 지속되면 결국 버티는 기간의 문제가 된다”며 “이번 고환율과 고유가 상황이 장기화될 경우 중소기업의 유동성 문제로까지 확산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김영한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고환율, 고유가는 기업들의 비용 부담을 키울뿐만 아니라 경영 불확실성을 키우는 요소”라며 “구조적인 체질 개선으로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라 말했다.
이동훈 기자 dhlee@donga.com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남혜정 기자 namduck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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