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으로 호르무즈해협 운항이 사실상 차단되면서 걸프 지역 국가들의 원유 감산이 장기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들 국가들은 기름을 생산해도 수출길이 막히면 저장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생산 밸브를 잠근 것으로 분석된다. 일단 감산이 시작되면 국제유가가 급등하고 물류가 재개되더라도 다시 생산량을 늘리는 데는 상당 시일이 소요될 것으로 보여 스태그플레이션 공포가 한 발짝 더 다가온 것으로 볼 수 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통화정책부터 성장률 전망까지 경제정책 전반이 한 치 앞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당장 국내 유가가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8일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서비스 오피넷에 따르면 이날 오후 3시 기준 전국 주유소 평균 휘발유 가격은 ℓ당 1894.86원으로 전날보다 5.46원 올랐다. 휘발유 가격보다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경유는 1917.34원으로 6.79원 상승했다.
시장에서는 ‘기름값 2000원대’ 진입이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김재경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국제유가의 상방 압력은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국내 기름값을 안정세로 단정하기는 이르다”며 “특히 국제유가 반영 시점이 예상보다 앞당겨질 가능성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 브렌트유 가격은 전쟁 전인 지난달 27일 배럴당 72.48달러에서 6일 기준 92.69달러까지 올랐다. 같은 기간 서부텍사스산원유(WTI)도 67.02달러에서 90.90달러로 급등했다. 지난주 WTI의 상승률은 35.63%로 집계가 시작된 1983년 이후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국제금융센터가 발표한 ‘중동 사태 전개 시나리오와 유가 향방 점검’ 보고서에 따르면 전쟁이 단기에 종료될 경우 국제유가는 65달러로 복귀할 것으로 봤다. 하지만 전쟁을 지속하되 에너지 시설이 건재하면 70~90달러 수준으로 상승하는데 이미 상단에 근접한 상태인 것으로 평가된다.
여기에 호르무즈해협 봉쇄 지속과 에너지 인프라 폭격 등으로 실제 에너지 공급까지 차질이 빚어지면 국제유가는 100달러 이상 치솟을 것으로 내다봤다. 글로벌 투자은행 씨티는 분쟁 장기화로 하루 약 500만 배럴 규모의 공급 차질이 발생하면 국제유가가 120달러에 진입할 수 있다고 밝혔다. 사드 알카비 카타르 에너지장관은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중동전쟁으로 모든 걸프 해역 에너지 수출 업체가 몇 주 안으로 생산을 중단하고 배럴당 150달러 수준으로 유가가 뛸 수 있다”고 경고했다.
고유가는 물가 인상→소비 위축→생산 감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발전 시장에서 액화천연가스(LNG) 비중이 높은 우리나라의 특성상 전기요금 등 공공요금부터 상당한 인상 압박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소비 시장 전반에서 가계가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는 의미다. 생산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 시장조사기관 번스타인은 유가 상승에 따른 자동차 수요 감소 등 여파로 현대차와 일본 도요타 등 아시아 완성차 업체가 가장 큰 피해를 받을 것이라는 보고서를 내놓기도 했다.
정부도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특히 통화정책의 고민이 깊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통상 물가가 뛰면 금리를 높이면서 대응에 나서야 하지만 동시에 저성장에도 경고등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실제 6일 기준 국고채 3년물 금리는 3.2%로 10년물(3.6%)과 근접해 수익률 곡선이 평탄화된 상태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기준금리를 동결해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시장에서는 동결을 넘어 한국은행이 연내 금리를 올릴 것이라는 전망까지 등장하고 있다. 최지욱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보고서에서 “유가가 120달러까지 오르면 올해 4분기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 중후반까지 오르고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1~2회 인상할 가능성이 열린다”고 분석했다.
성장률 전망에도 하방 압력이 커지고 있다. 앞서 재정경제부와 한국은행은 올해 한국 경제가 반도체 수출 호조와 내수 회복에 힘입어 2.0%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지만 국제유가 급등이 최대 변수로 등장했다. 정부는 올해 경제성장 전망을 두바이유 기준 배럴당 62달러로 잡았으나 6일 기준 99달러로 100달러를 목전에 두고 있어서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연평균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일 경우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은 0.3%포인트 하락하고 150달러일 경우 0.8%포인트까지 떨어질 것으로 봤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올해 각각 1.1%포인트와 2.9%포인트 더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앞서 한국은행은 2.2%로 전망한 바 있다.
김병훈 기자 co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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