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산업단지 여천NCC 전경. 여천NCC 제공 |
국내 최대 에틸린 생산시설인 여천NCC가 고객사들에 공급 ‘불가항력(Force Majeure)’을 선언한 가운데 안 그래도 힘든 다른 석유화학 업체들도 이런 상황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불가항력 선언이란 전쟁 등 통제할 수 없는 외부 요인으로 제품 계약 이행이 어려울 때 책임을 면제받기 위한 조치다.
8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의 이란 공습으로 인한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장기화될 경우 이달부터 주요 업체들의 불가항력 선언이 연쇄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석유화학 업체는 고객사에 필요한 물량을 제때 공급할 수 없다고 판단하는 즉시 이를 통보해야하는 의무가 있다. 연간 에틸린 229만톤을 생산하는 여천NCC가 가장 먼저 두 손을 들었다. 이 회사는 지난 4일 고객사에 보낸 서한에서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긴장이 갑작스럽고 급격하게 고조됨에 따라 원자재 조달에 심각한 차질을 빚고 있다”며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인해 3월 인도 예정이었던 원료 나프타의 도착이 크게 지연됐다”고 설명했다.
보통 업체들은 1∼2개월 분량의 나프타원료를 비축하는 편이지만 여천NCC는 전쟁 발발 5일만에 불가항력을 선언했다. 지난해 말 연간 47만톤 규모의 3공장 가동을 중단하고 1·2공장만 운영 중인 여천NCC는 이처럼 낮은 가동률로 인해 나프타 원료 재고량이 많지 않았고 결국 중동 사태로 인한 영향을 가장 먼저 받은 것으로 풀이된다.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이 같은 일이 도미노처럼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국내에 공급되는 나프타는 절반이 수입되고 나머지 절반은 국내에서 원유를 정제해 직접 생산한다. 한국의 중동산 원유 수입 비중은 약 70%로 이 중 상당수가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고 수입되는 나프타 비중 54%도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다.
업계 관계자는 “여천NCC뿐 아니라 모든 NCC 시설의 원료 수급 차질이 불가피한 상황”이라며 “그동안 생산량 감축을 이어왔기 때문에 각 NCC의 재고량이 넉넉하지는 않다”고 말했다.
나프타 원료 가격 급등도 부담이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인 지난달 27일 톤당 590달러였던 가격이 이달 3일 737달러로 약 25% 높아졌다. 일반적으로 원가가 오르면 이를 제품 가격에 반영해야 하지만, 공급 과잉과 수요 침체로 이마저도 쉽지 않다.
원료 수급 차질이 장기화하면 현재 70∼80% 정도인 NCC 평균 가동률이 더욱 낮아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박재림 기자 jami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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