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1일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별장을 출발, 워싱턴DC 인근 메릴랜드주 앤드류 공군기지에 도착해 손을 흔들고 있다. 빨간색 모자에 USA라고 크게 쓰인 것이 눈에 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에 대한 공격을 감행하면서 동맹국들에게 지원을 요청하고 있는데, 한국도 그 대상에 포함될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AFP연합뉴스 |
이란 공격 지시를 내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유럽 국가들에 대한 협력 요청에 이어 한국, 일본에도 지원을 요청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는 미국과 이스라엘이 중심이 된 작전이지만, 전쟁이 장기화될 경우 미국이 동맹 네트워크를 활용하기 위해 지원을 요청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겁니다. 우리 정부는 이 사안에 대해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6일 국회 외통위 회의에서 김상욱 의원의 “미국이 군사적 또는 비군사적 지원, 협력을 요청했느냐”는 질문에 “(그런 적) 없다”고 답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번 전쟁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면 트럼프의 ‘지원 청구서’가 언제든 날아올 것이라는 겁니다. 정부에서 이같은 관측을 부인하는 관계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한 관계자는 “한국 입장에서는 어떤 형태로든 전쟁이 조기에 끝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며 한국이 어려운 선택을 하는 상황에 놓이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유럽에 먼저 지원 요구…NATO는 신중
트럼프는 이란 공격 이후 유럽 국가들의 협조를 적극적으로 요구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독일에는 군사·기지 협력에 대한 감사 메시지를 보낸 반면, 스페인이 미군의 기지 사용을 거부하자 무역 단절까지 거론하며 압박하는 등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프랑스·독일·영국 등 주요 유럽 국가는 이번 공격에 직접 참여하지 않았음을 강조, 외교적 해결을 촉구하면서도 조금씩 입장이 변해 가는 모습도 보입니다.
유럽 국가들은 NATO 내부 갈등과 지역 확전을 우려해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나 미국의 요청을 완전히 거부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국제법상 논란이 크다 보니 NATO의 집단 방위 체제보다는 미국 중심의 ‘선별적 동맹 연합’ 형태로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도 나옵니다.
2004년 10월 이라크 아르빌에 주둔중인 한국 자이툰 부대원이 태극기가 새겨진 군복을 입고 경계근무를 하고 있다. 한국은 부시 미 행정부의 요청에 의해 3600명 규모의 자이툰 부대를 파병했다./연합뉴스 |
1980년대 이후 빠짐없이 한국에 지원 요청
미국은 1980년대 이후 중동, 중앙아시아에서 군사 작전을 펼 때마다 한국에 지원 요청을 해 왔습니다. 가장 첫 번째는 1991년 걸프전입니다. 걸프전은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이 쿠웨이트를 침공하자 미국이 중심이 된 다국적군이 이를 격퇴하기 위해 벌인 전쟁입니다. 한국은 전투 병력을 보내지는 않았지만 의료 지원단과 공병 장비를 파견하고, 약 5억달러 규모의 전쟁 비용을 지원했습니다.
2003년 이라크 전쟁에서 한국의 기여도가 더 커졌습니다. 미국이 사담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한 군사 작전을 준비하면서 한국 정부에 파병을 요청했고, 한국은 자이툰 부대를 이라크 북부 아르빌에 파견했습니다. 병력 규모는 약 3600명까지 확대되며 미국 다음으로 큰 규모의 파병국 가운데 하나가 됐습니다. 한국은 이라크에서는 비교적 안전지대라고 할 수 있는 아르빌에 파병, 전투 임무보다는 재건·치안 지원을 중심으로 활동했습니다. 이는 미국의 요청에 따른 대표적인 군사 협력 사례로 꼽힙니다.
세 번째는 아프가니스탄 전쟁입니다. 미국이 2001년 9·11 테러 이후 탈레반 정권을 겨냥해 군사작전에 들어가자 한국은 의료지원단과 공병부대를 파견하며 협력했습니다. 2010년 지방재건팀(PRT)을 중심으로 한 ‘오쉬노(Oshino) 부대’를 파견해 아프가니스탄 파르완주 일대의 치안 지원과 재건 사업을 맡았습니다.
한국은 이후에도 중동 해상 안전 확보를 위한 협력을 계속해 왔습니다. 2009년부터는 청해부대를 파견해 아덴만과 호르무즈 해협 인근에서 해적 대응과 선박 보호 임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오바마 미 행정부의 요청으로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의료지원단과 공병부대 등을 파견했다. 2010년 아프가니스탄 파르완주에 파견된 한국군 뒷편에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다./조선일보 |
이란 전쟁에서도 한국에 지원 요청 가능성 커
이 같은 전례를 고려할 때, 트럼프 행정부가 이란과 군사 충돌이 장기화될 경우 한국에도 일정한 형태의 협력을 요청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입니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요구가 크게 세 가지 형태로 나타날 가능성을 제기합니다.
첫째는 해상 작전 참여나 후방 지원입니다. 한국은 이미 청해부대를 중동 지역에서 운용하고 있어 호르무즈 해협 보호나 해상 수송로 안정화 임무에 참여 요청을 받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둘째는 무기 및 군수품 지원입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포탄 등의 무기 생산 능력을 갖추고 있어 미국이 군수 지원을 요청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셋째는 외교적 지지와 제재 참여입니다. 미국이 추진하는 대이란 제재나 국제 여론전에 한국의 참여를 요구할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의 선택지는 ‘제한적 기여’
트럼프로부터 군사적 지원 요청을 받더라도 한국은 제한적으로 응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국익에는 최선이라고 판단됩니다. 한국은 중동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가 높고, 이란과도 외교 관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사일이 이란 수도 테헤란에 내려꽂히는 지금도 한국은 김준표 대사가 이끄는 한국 대사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한국 외교관들은 극도로 위험한 상황에서도 일절 철수하지 않으며 현장을 지키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한국이 만약 지원에 나선다면 직접 전투 참여보다는 해상 안전, 군수 지원, 외교적 협력 같은 ‘제한적 기여’ 방식을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실제로 이라크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 당시에도 한국은 전투 임무 대신 재건과 안정화 지원 중심의 작전을 맡았습니다. 한미동맹을 고려하면서도 중동 지역 외교 관계를 함께 감안한 절충적 선택이었습니다.
문제는 이기적이고, 비전통적인 스타일의 미국 지도자 트럼프가 얼마나 한국의 입장을 이해해 주는가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한국은 미국과의 관세 갈등이 해결되지 않고 있는데, 미국의 이란 공격 지원에 소극적 태도를 보일 경우 한미 관계에 새로운 긴장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트럼프가 동맹국의 협력을 강조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이 거리를 둘 경우 그의 불만이 커질 것이 분명합니다. 서울의 외교가에서는 통상 갈등과 동맹 협력 문제가 맞물리면서 한미 관계가 복합적인 시험대에 오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옵니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지난해 10월 요코스카 미 해군 기지에 정박중인 미 해군 USS 조지 워싱턴 항공모함에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함께 올라 미군을 격려하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19일 워싱턴 DC를 방문, 트럼프 대통령과 두번째 정상회담을 갖는데, 이때 일본 자위대 파병이 언급될 지 주목된다./연합뉴스 |
다카이치 총리, 자위대 파병 결정 내리나
한국이 ‘트럼프의 전쟁’을 지원할 때 변수는 뜻밖에도 일본이 될 수 있습니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는 오는 19일 워싱턴DC를 방문해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질 예정입니다. 이를 계기로 미국이 일본에 자위대 파견을 요구할 가능성도 거론되는데, 일본이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우리 정부의 전략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일본 도쿄신문은 5일 미국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유조선 호위를 검토하면서 일본 정부도 자위대 파견 여부를 놓고 고심에 들어갔다고 전했습니다. 이 보도에 따르면 미국이 협력을 요청할 경우 해상자위대 함정이나 초계기를 활용한 경계·감시 활동이 선택지로 거론되고 있습니다.
다만 일본이 자위대를 파견하려면 ‘존립 위기사태’나 ‘중요 영향 사태’에 해당하는 법적 근거가 필요합니다. 일본 정부는 현재 상황이 이 요건에 해당하는지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도쿄신문은 “결국 자위대 파견 여부는 총리의 정치적 결단에 달려 있다”며 “다카이치 정권이 그 부담을 떠안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습니다.
아사히신문도 6일 일본 정부가 미국의 지원 요청 가능성에 대비해 대응 방안을 물밑에서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 보도에 따르면 자위대 초계기나 공중급유기 파견 등이 선택지로 거론되고 있지만 가장 큰 문제는 역시 법적 근거입니다.
2015년 안보법제 심의 당시 아베 신조 총리는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될 경우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는 ‘존립 위기사태’ 사례가 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일본은 수입 원유의 약 90%를 중동에 의존하고 있고 그 대부분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일본도 신중한 분위기입니다. 사토 게이 관방부장관은 5일 기자회견에서 일본의 입장에 대해 “현재로서는 관계 부처와 협력하며 구체적인 동향에 대한 정보 수집 등에 힘쓰는 단계”라고만 언급했습니다.
만약 일본이 ‘존립 위기사태’라는 판단하에 자위대 파견을 결정하거나 군사적 기여 수위를 높일 경우 한국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습니다. 트럼프가 “왜 한국은 일본처럼 우리를 돕지 않느냐”고 압박할 수 있습니다.
외교가에서는 미국이 한국과 일본에 동시에 협력을 요청할 경우 한·일 양국이 사전에 입장을 조율하거나 일정 부분 공동 대응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와 우리 정부의 대응이 주목됩니다.
[이하원 외교안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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