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에 반도체 제조 기술을 전수한 일본인 하마다 시게타카(濱田成高) 박사가 지난 6일 오전 1시께 별세했다. 향년 101세.
7일 양향자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하마다 시게타카 박사가 6일 오전 1시께 도쿄의 한 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전했다. 양 최고위원은 고인의 부인 하마다 요시에(濱田芳枝) 여사도 지난 1일 작고했다고 덧붙였다. 향년 99세다.
1925년 4월 일본 도쿄에서 태어난 하마다 박사는 도쿄제국대학(현 도쿄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했다. 1948년 제출한 학부 졸업 논문의 제목은 ‘자전관(磁電管)의 이상 잡음’이었다.
이후 일본 통신회사 NTT의 전신인 일본전신전화공사 전기통신연구소 전자관연구실에서 반도체 연구를 진행했고, 이후 일본전신전화공사 관계사인 긴키플랜트레코드㈜(현 NTEC)에서 근무했다.
고인은 1980년대 초 삼성전자에서 신기술 관련 강연을 하면서 삼성과 인연을 맺었다. 당시 최신 기술 흐름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려 했던 고(故) 이병철(1910~1987) 삼성전자 회장의 기술 자문 역할을 맡으며 삼성 반도체 사업의 초기 발전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회장은 하마다 박사가 공장을 방문할 때 불편함이 없도록 전용 헬리콥터를 제공했을 정도로 그를 각별히 예우했다. 삼성전자 반도체 1세대 원로들 사이에서 그는 ‘한·일 반도체 산업의 가교’, ‘한국 반도체 산업의 숨은 조력자’로 불렸다.
하마다 박사는 2022년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역할에 대해 “제가 기술을 물려준 건 아니다”라며 “다른 엔지니어분들이 다 한 거다. 당시 회사에서 기술 이전을 하는 일이 제 본업이었다. 저는 그저 제 직분을 다 했을 뿐”이라고 회고했다.
이병철 회장은 1983년 2월 반도체 사업 구상을 발표했다. 양 최고위원은 “고인은 기술적으로 이병철 회장의 가장 친한 벗이었고, 1983년 반도체 사업 구상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같은 해 12월 삼성전자는 세계에서 세 번째로 64K D램 반도체 개발에 성공했다.
양 최고위원은 1988년 삼성전자가 하마다 부부를 한국으로 초청했을 당시 일본어 통역을 맡으며 고인과 인연을 맺었다. 광주여상과 회사 입사 후 익힌 기초 일본어 실력으로 닷새간 통역을 맡은 걸 계기로 1989년부터 도쿄를 오가며 교류를 이어갔다. 이후 양 최고위원은 삼성전자에서 선임연구원과 책임연구원, 수석연구원을 거쳐 임원까지 지냈다.
양 최고위원은 오는 12일 일본 도쿄에서 하마다 시게타카 박사의 고별식이 열릴 예정이라고 전했다.
“TSMC 버리고 삼성으로?” 반도체 판도가 뒤집힙니다 [반도체백과]
김도연 AX콘텐츠랩 기자 dorem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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