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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쟁이와 마이웨이…운전 스타일로 차 번호판 맞히기[나는 마담 부르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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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유럽연합 국가의 자동차는 번호판 맨 앞 알파벳으로 출신 국가를 알 수 있다. ‘B’는 벨기에다.


대지와 하늘의 온기를 머금은 봄바람은 사람 마음만 흔들지 않는다. 인자한 봄의 손길 앞에 진달래도, 벚꽃도, 만물의 생명은 속수무책이다. 따뜻한 봄이면 유럽 사람들도 나들이에 나선다. 한국과의 차이라면 돌아다니는 반경이 조금 더 크다는 정도일까. 유럽은 ‘유럽연합’이라는 이름 아래 묶여 있어 나라 사이의 국경이 예전만큼 큰 의미를 갖지 않는다. ‘벨기에 고속도로를 달리다 재채기 한 번 잘못하면 독일로 빠진다’는 아들의 우스갯소리도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운전 중 휴대폰의 3G가 잠시 끊기고 나서야 ‘아, 국경을 넘었구나’ 깨닫기도 한다.

이렇게 옹기종기 섞여 사는 유럽에서 각자의 출신을 티 없이, 하지만 정확히 드러내는 지표가 하나 있는데, 바로 자동차 번호판이다. 유럽연합 국가들의 번호판은 규격과 전체 디자인이 대체로 비슷하다. 왼쪽에는 파란 바탕에 별이 둘린 유럽연합 표시가 있고, 그 아래 차가 등록된 나라를 나타내는 국가 코드가 적혀 있다. 이 코드는 한 글자일 수도, 두세 글자일 수도 있다. 색깔과 알파벳, 숫자 조합은 제각각이지만, 작은 파란 칸 속 몇자가 차의 ‘출신’을 말해준다.

예를 들어 B라 적혀 있으면 벨기에 Belgium, I면 이탈리아 Italy를 뜻한다. 그렇다면 S는 무엇일까. 스페인? 스위스? 혹은 스웨덴,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S로 시작하는 나라가 많아 머릿속에 스치는 후보도 여럿일 테지만, 정답은 스웨덴이다.

스페인의 국명은 에스파냐 왕국, 즉 Espana로 자동차 번호판 알파벳은 E이다. 스위스도 Switzerland에서 S라 생각하기 쉽지만, 정식 국명은 라틴어로 ‘헬베티아 연방(Confoederatio Helvetica)’이다. 다언어 국가인 점을 고려해 중립적인 라틴어를 공식 명칭으로 택했기 때문에, 우리에겐 어색하게도 CH로 표시된다. 게다가 스위스는 유럽연합 회원국이 아니므로 파란 별무늬 띠 없이, 국기만 그려져 있다. 슬로바키아는 SK이지만, 슬로베니아는 예상과 달리 SV가 아니라 SLO다.

차 번호판을 보며 운전자의 스타일을 예상하는 것도 재미있다. F 번호판 프랑스 차는 남이 뭐라 해도 자기 스타일이 강하다. 속도를 내달라며 깜빡이로 신호를 보내도 묵묵히 제 갈 길, 제 속도, 프렌치 스타일이다. 유난히 느리다면 고령 운전자일 확률까지 높다. 동승자와 열정적으로 이야기하며 지나가는 차를 보면 남부 유럽 차 스페인, 이탈리아, 포르투갈일 가능성이 크고, 3차선에서 캠핑카를 주렁주렁 매달고 세월아 네월아 가는 차는 십중팔구 네덜란드 차량이다. 독일 차는 역시 차선과 법을 잘 지킨다. 제한 속도가 없는 일부 아우토반 구간 때문일까, 때로는 거침없이 질주하기도 한다. 물론 이 모든 이야기는 나의 편견과 경험이 뒤섞인, 다소 주관적인 관찰이다.

한국 친정집 아파트 주차장에서 D 코드 번호판을 단 이웃의 현대차를 보았다. 독일에서도 현대차는 흔히 보이지만, 한국 주차장에서 D가 박힌 유럽식 자동차 번호판을 보니 피식 웃음이 났다. 그분은 과연 그 의미를 알고 달았을까.

벨기에에 와 이러한 사실을 안 뒤로 고속도로에서 번호판을 보는 것이 습관이 됐다. 여전히 알파벳과 나라가 잘 매칭이 되는지 스스로 퀴즈를 내보고, 앞을 지나는 차가 무슨 연유로 이곳에 왔을까, 속사정도 궁금해한다. 철저히 대리만족일 뿐이지만, 괜히 내가 여행하는 기분마저 느낀다.

곧 만개할 봄, 나는 B 번호판을 달고 유럽 어딘가로 거침없이 달려갈 어느 주말 나들이를 기대한다. 봄으로 들어가는 사인이라면 혹은, 국경을 넘는 신호라면 3G가 잠시 끊겨도 좋다. 속도 제한이 있든 없든 이번 봄, 마음만은 풀가속일 테니.

봄이여, 오라!

▶최윤정

경향신문
‘부르주아’라는 성을 물려준 셰프 출신 시어머니의 자취를 좇으며 현재 벨기에에서 여행과 요리를 엮어내는 팝업 레스토랑 ‘tour-tour’를 기획·운영 중이다. 인스타그램 @choirigine


최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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