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병역거부 선언 기자회견에서 ‘두부’(활동명·김민형씨)가 “병역거부는 전쟁을 멈춘다”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발언하고 있다. 전쟁없는세상 제공 |
[주간경향] 미국과 이스라엘이 지난 2월 28일 이란 도시들을 공습하면서 전 세계가 또다시 전쟁의 위기에 부닥쳤다. 2022년 촉발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도 끝나지 않은 가운데 미국·이란 전쟁이 벌어지면서 불안과 공포는 더 확산하고 있다. 폭격으로 건물이 무너지고, 민간인 200여명을 포함해 1500명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아직 강한 공격은 시작도 안 했다. 곧 더 큰 것이 다가올 것”이라며 엄포를 놓았다.
이런 일촉즉발의 상황 속에서 ‘평화’를 외치며 군 복무와 대체복무를 거부한 청년이 있다. 한베평화재단 활동가인 ‘두부’(활동명·김민형씨·28)가 지난 2월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군 복무와 대체복무 거부를 공개적으로 선언했다.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이 2018년 양심적 병역거부를 보호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리고 대체복무제가 마련됐지만, 여전히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보호받지 못하고 감옥에 가고 있다. 지난 3월 3일 두부를 만나 병역거부를 결심하게 된 배경을 자세히 들어봤다. 그는 “군사주의를 거부한다는 것도 있지만, 그 마음의 시작은 전쟁으로 죽는 사람이 없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며 “결국 ‘사람을 지키고 싶어서’ 한 결정”이라고 했다.
특전사 희망에서 병역거부자로
양심적 병역거부는 종교적·윤리적·도덕적·철학적 또는 이와 유사한 동기에서 형성된 양심상 결정을 이유로 집총이나 군사훈련을 수반하는 병역의무의 이행을 거부하는 행위를 말한다. 그동안 한국에선 주로 여호와의증인 신도와 같이 종교적 신념에 의한 병역거부가 주목받았지만 종교가 아닌, 다양한 개인적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도 있다. 두부는 평화주의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자다.
두부는 어린 시절 군대를 접할 기회가 많이 있었다고 한다. 그의 표현으로 “서울보다 개성에 가까운 지역”인 경기 파주시에 살면서 주변의 군 훈련시설, 군인들을 자주 접하게 됐다. 그의 할아버지는 해병대 출신의 6·25 참전 용사로 생전에 군인정신, 남자다움 같은 가치를 강조했다. 두부는 “처음부터 군대를 거부하겠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며 “이왕 군대를 갈 거면 잘 다녀오자는 생각으로 특전사에 갈 생각까지 했다”고 했다.
그런 그의 생각은 점점 바뀌었다. 두부는 ‘세월호 세대’다. 2014년 세월호 침몰 당시 선내 방송에서 흘러나온 ‘가만히 있으라’는 말은 한국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 당시 참사 희생자들과 또래이자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이던 두부는 그때부터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 두부는 “배가 침몰하는데 사람들이 제대로 구출되지 않는 장면을 실시간으로 목격하고 이후 진상조사가 제대로 되지 않는 것을 보면서 사회에 뭔가 문제가 있다고 느끼게 됐다”고 했다. 대학의 사회복지학부에 진학하면서는 ‘연대’를 고민했다. 사회구성원들이 서로의 어려움을 공유하고 의존하는 연대는 사회복지에서 중요한 개념이다. 사회가 사람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고,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깊어진 시기다.
지난 2월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병역거부 선언 기자회견에서 ‘두부’(활동명·김민형씨)가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징벌적 대체복무제도 개선 요구안’을 들고 있다. 전쟁없는세상 제공 |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처음으로 전쟁의 참상을 제대로 인식한 사건이었다. 두부는 “전쟁이 과거의 일이라거나, 영화와 소설에서만 등장하는 게 아니라 지금도 벌어지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라며 “전쟁 속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들이 죽고, 보금자리를 잃고 있는지 그 참혹함을 알게 되면서 전쟁이 벌어지지 않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까를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지난해 초엔 베트남에 방문해 1960년대 베트남전쟁 때 한국군이 베트남 민간인들을 학살했던 지역의 상흔을 보고 왔다. 그러면서 병역거부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아무도 군대에 가지 않는다면 전쟁은 이뤄질 수 없다, 전쟁을 멈추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나부터 가담하지 않는 실천적 행동을 함으로써 전쟁을 막는 데 일조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게 두부의 생각이었다.
말만 대체복무, 사실상 징벌인 ‘3년 합숙’
과거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징역 1년 6개월의 ‘정찰제 판결’을 받고 감옥에 갔다. 그러다 2018년 기념비적인 판결이 연이어 나왔다. 그해 6월 헌법재판소가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위한 대체복무제를 규정하지 않은 병역법이 헌법에 위배된다고 결정했다. 11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형사 처벌해선 안 된다고 판결했다. 국가안보 못지않게 헌법상 양심의 자유 보장, 소수자의 목소리와 다양성 존중이 중요하다는 판단이었다. 다만 대법원은 ‘진정한 양심’일 때 병역거부가 정당하다고 했다. 진정한 양심이란 ‘그렇게 행동하지 않고서는 자신의 인격적 존재가치가 파멸되고 말 것이라는 강력하고 진지한 마음의 소리’를 말한다. 대체복무제가 마련된 뒤 병역거부자들은 둘로 나뉘었다. 진정한 양심을 갖고 있는지를 정부 산하기구인 대체역 심사위원회에서 심사받고 대체복무를 수행하거나, 대체복무까지 거부해 또 수사, 재판을 받는 경우다.
대체복무 거부자가 발생한 이유는 현행 대체복무제가 ‘징벌적’이기 때문이다. 복무 기간은 36개월로 현역 육군의 2배이고, 복무 기관은 교정시설, 복무 형태는 합숙복무만 허용된다. 국제기구들은 양심적 병역거부가 ‘권리’로 보장돼야 한다는 점에서 대체복무제가 징벌적 성격을 가지면 안 된다고 권고한다. 징벌적일 경우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대체복무제를 선택할 수 없어 권리가 박탈되는 셈이기 때문이다. 두부는 “군사주의에 거부하기 위해서 대체복무를 선택하는 것인데 군사주의의 시선으로 양심과 평화주의 신념을 심사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 큰 문제라고 생각해 대체복무를 선택할 수 없었다”며 “대체복무제 시행 6년이 되기까지 시민사회에서 제도개선을 계속 요구했지만 (정부와 국회 등은) 묵묵부답”이라고 했다.
2021년 6월 24일 시민사회단체들이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평화주의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자를 인정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
특히 개인적 신념에 의한 병역거부는 인정이 더 까다로운 분위기다. 앞서 병역거부자 나단씨의 경우 군대는 국가의 폭력기구이며 자신은 자본가와 자본을 지키는 일에 동원되거나 국가 폭력의 일부분이 되지 않겠다는 사회주의에 기반한 평화주의 신념을 갖고 대체복무를 신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양심을 보호하기 위해 대체복무제가 도입됐음에도 국가가 여전히 ‘양심의 내용’으로 병역거부의 정당성을 평가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결국 나단씨는 형사재판 2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지난 1월 20일 구치소에 수감됐다. 현재 수감 중인 상태지만 수감되기 직전 입영 통지를 받고 입영하지 않은 혐의로 또 추가 수사를 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병역거부를 결정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두부가 기자회견을 연 지난 2월 23일은 병무청으로부터 통지받은 입영 당일이었다. 앞으로 수사와 재판을 받으며 얼마나 긴 시간 동안 진정한 양심을 증명해야 할지 알 수 없다. 두부는 “인생의 불확실성이 이어진다는 것, 내가 내 삶을 확정적으로 설계할 수 없다는 것이 압박과 부담감으로 다가온다”고 했다.
“군인 되고 싶은지 물을 수 있는 사회돼야”
평화냐 전쟁이냐의 갈림길에서 정부는 정치적·경제적 이익에 따라 오락가락한 태도를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3월 1일 기념사에서 “평화로운 한반도를 만드는 것이야말로 3·1혁명의 정신을 온전히 계승하는 일”이라며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해나갈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취임 후 남북관계에 있어 지속적으로 평화와 대화를 강조하고 있다. 반면 이 대통령은 전쟁에 쓰이는 첨단무기와 방위산업 기술 수출을 새 성장동력으로 삼겠다며 이른바 ‘K방산’ 육성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또 이 대통령은 2030남성이 군 복무 때문에 차별을 받는다고 말하면서도 그 해결 방안으로 군 체제 개선을 내놓지는 않고 있다. 국가안보, 현역병과의 형평성, 관리의 어려움 등의 국가 중심적 논리가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공간을 좁힌다.
두부는 “한반도 내에서만 전쟁이 안 일어나면 끝이 아니고 전 세계적인 전쟁의 분위기, 논리가 한반도의 전쟁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며 “이 대통령이 K방산에 대한 홍보와 발전만을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전 세계적으로 평화와 대화로 (갈등을) 해결하는 분위기를 만들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또 이 대통령이 국민에게 전쟁의 공포를 주지 않고 싶은 마음이라면 이제는 청년 남성들에게 ‘너희는 정말 군인이 되고 싶니’, ‘정말 싸우고 싶니’라는 질문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대통령이 그 질문을 하고 제도를 개선하는 게 민주사회로 가는 길”이라고 했다.
중앙대 여성주의학회 여백 성명서. 여백 제공 |
군 복무 의무와 그에 따른 불이익 문제는 흔히 2030남성의 의제로 꼽힌다. 군대 때문에 청년 남성들이 보수화된다는 시각도 있다. 그에 비해 군 내의 인권침해를 개선하고 평화와 다양성에 초점을 맞춘 군 체제의 변화에 대해선 논의가 없거나, 느리게 진행된다. 한국은 사회 전반에 군사주의 문화가 남아 있고, 군대를 통해 힘을 길러 전쟁에 대비하는 체제가 익숙하다. 두부의 기자회견 후 온라인 남초 커뮤니티에도 병역거부를 인정하기보다는 ‘군대에 가고 싶어서 가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 ‘전쟁이 나면 어떻게 하느냐’ 등의 댓글이 주를 이뤘다.
그런 점에서 두부는 자신의 병역거부가 사람들이 군대에 대해 질문을 던져보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고 했다. 두부는 “군대에 문제가 많다는 것은 대부분 남성이 공감하겠지만 군대에 안 가면 처벌을 받다 보니 문제점을 지적할 수 없고, 군대가 성역화되면서 비판도 할 수 없는 분위기가 있다”며 “‘남자라면 당연히’라는 말속에서 남성들이 받아온 피해가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군대라는 압박감은 계속해서 청년 남성들을 짓누르고, 비판적 시각이나 분노는 군대로 향하지 못하고 그 외의 것들로 향하게 되는 것 같다”며 “‘군인이 되고 싶은지’를 묻지 않는 사회에 대해 분명히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군대는 청년 남성들만의 문제도 아니다. 중앙대 여성주의학회 여백은 “한국의 군사제도는 단지 제도만의 문제이거나 병역의 의무를 지는 남성만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지난 2월 26일 두부에 연대하는 성명을 냈다. 이 학회는 성명에서 “군대는 군인으로 차출돼 복무할 수 있는 정상적인 몸을 선별하고 군사주의와 가부장제, 이성애 중심주의, 민족주의를 일상의 문화로 재생산하는 가장 강력한 제도적 장치”라며 “여성주의가 단순히 주류사회의 기존 질서로의 진입에 머무르기보다 군사주의가 만드는 기존의 젠더 위계와 폭력의 구조를 해체하고 맞서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들은 국회와 정부에는 “안보를 국가적 폭력이 아니라 평화를 통해, 평화를 위해 운영하라”고 요구했다.
두부는 “병역거부는 단순히 우리는 아무것도 안 하겠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평화로 대화를 하자는 실천”이라며 “어떻게 하면 전쟁이 벌어지지 않을까를 고민하고, 군사적 대립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의 노력을 계속하려는 행동”이라고 했다. 그는 “그런 의미에서 병역거부는 꼭 군대와 군사주의를 거부한 사람들만의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도 충분히 고민해볼 수 있다”며 “(전쟁이 아니라) 평화를 이야기하는 사람도 분명 있어야 하고, 함께 고민하면 좋겠다”고 했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 매일 라이브 경향티비, 재밌고 효과빠른 시사 소화제!
▶ 더보기|이 뉴스,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 점선면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