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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에서 과학으로… ‘마음의 지도’를 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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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트 세계 최초 심리학 실험실 열어
보이지 않는 ‘생각’, 숫자로 환산 시도
의식 ‘구조’ 보다 ‘기능’ 주목한 제임스
관찰 가능한 행동에 초점 맞춘 왓슨
인간 무의식 이론 제시한 프로이트
2차 세계대전 당시 활용된 심리학
시기별 심리학의 연구·성취 되짚어
심리학의 역사/ 니키 헤이즈/ 최호영 옮김/ 소소의책/ 2만5000원

심리학은 인간의 마음과 행동의 작동방식을 탐구하는 학문이다. 고대의 철학적 사유에서 출발해 오늘날 과학적 실험으로 발전하기까지, 심리학의 여정은 곧 인간을 제대로 이해하려는 문명의 역사이기도 하다. 영국의 저명한 심리학자 니키 헤이즈의 ‘심리학의 역사’는 이 긴 과정을 촘촘히 되짚으며, 주요 학파의 형성과 대표적 실험 사례를 통해 심리학이 어떻게 인간 이해의 지도를 그려왔는지 보여준다.

책에 따르면 심리학의 출발은 실험실이 아니라 철학자의 사유였다. 고대 그리스의 플라톤은 인간 이성의 우위를 강조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경험과 감각을 중시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성향이 정해져 있는가, 아니면 환경이 만드는가”라는 질문은 이미 이 시기에 제기됐다. 그러나 당시 학자들에게 마음은 오랫동안 측정할 수 없는 영역으로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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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점은 19세기 후반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찾아왔다. 빌헬름 분트가 세계 최초의 심리학 실험실을 열면서다. 그는 종소리를 들려준 뒤 참가자가 버튼을 누르기까지 걸리는 시간을 측정했다. 보이지 않는 ‘생각’을 숫자로 환산하려는 시도였다. 단순해 보이는 이 실험은 철학의 대상이던 마음을 과학적 측정의 대상으로 전환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라이프치히 실험실은 이후 심리학이 독립 학문으로 자리 잡는 출발점으로 평가된다.

분트와 그의 제자 에드워드 티치너는 인간의 의식을 감각·이미지·감정이라는 기본 요소로 나누어 분석하고, 내성법(introspection)을 통해 마음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려 했다. 이른바 구조주의(Structuralism)다. 반면 미국의 윌리엄 제임스는 의식의 ‘구조’보다 ‘기능’에 주목했다. 그는 인간의 사고와 행동이 환경에 어떻게 적응하는지를 탐구하며 기능주의(Functionalism)를 발전시켰다. 이는 심리학을 실용적이고 응용적인 학문으로 확장하는 계기가 되었고, 이후 교육심리학과 산업심리학 등 다양한 분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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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키 헤이즈/최호영 옮김/소소의책/2만5000원

20세기 초 존 브로더스 왓슨은 심리학이 내면의 의식이나 감정보다는 관찰 가능한 행동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행동주의(Behaviorism)의 창시자인 그는 인간의 행동이 환경에 의해 결정된다고 보았으며, 학습을 통해 누구든 원하는 방식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인간을 ‘자극-반응’ 체계로 이해하며 학습이 행동을 형성한다는 점을 부각했다. “아이를 백지상태로 주면, 내가 원한다면 변호사도, 도둑도 만들 수 있다”는 그의 발언은 행동주의의 급진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행동주의는 B F 스키너의 ‘스키너 상자(Skinner Box)’ 실험을 통해 더욱 체계화됐다. 쥐가 레버를 누르면 먹이가 나오도록 설계된 장치로, 보상과 처벌이 행동을 강화하거나 약화하는 과정을 규명했다. 특히 ‘불규칙한 보상’이 일정한 보상보다 행동을 더 오래 지속시킨다는 사실은 중요한 발견이었다. 이러한 연구는 교육·치료·조직 관리 등 다양한 영역에 응용되며 심리학의 실용성을 크게 높였다.

행동주의가 인간을 자극과 반응의 기계로 설명했다면, 오스트리아의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전혀 다른 관점을 제시했다. 그는 인간 행동의 이면에 억압된 무의식이 존재한다고 보았다. 환자의 꿈을 분석하고 말실수를 해석하며, 그는 마음을 빙산에 비유했다. 우리가 인식하는 의식은 수면 위의 일부일 뿐, 그 아래에는 거대한 무의식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책은 이같이 시기별 심리학의 주요 연구와 심리학자들의 주요 성취를 살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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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헬름 분트. 1879년 라이프치히에서 세계 최초의 심리학 실험실을 열었다. 새로운 심리학 시대를 연 학자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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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그문트 프로이트. 유대인 오스트리아인 의사이자 신경학자다. 그의 무의식의 이론은 심리학의 주요한 업적이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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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F 스키너. 미국의 행동주의 심리학자. ‘스키너의 상자’ 실험을 통해 보상과 처벌이 행동을 강화하거나 약화하는 과정을 규명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최근 미국의 이란 공습으로 중동 지역의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책 속 ‘심리학과 전쟁’ 대목도 눈길을 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 공군은 심리학 연구 부대를 운영하며 전쟁 수행에 심리학을 적극 활용했다. “알폰스 차피니스와 폴 피치는 B-17 폭격기의 잦은 추락 사고 원인을 분석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조사 결과, 사고의 원인은 조종사의 실수라기보다 조종석 설계의 문제였다. 조정 장치들의 모양과 촉감이 지나치게 비슷해 착륙 과정에서 잘못된 레버를 잡아당기기 쉬웠던 것이다. 이들은 착륙장치의 촉감을 다른 장치와 명확히 구분되도록 재설계해 사고를 크게 줄였다.”(154쪽)

인간의 인지 특성을 고려한 설계가 생명을 구한 사례다. 이처럼 심리학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군인 선발, 군사훈련, 선전 활동, 암호 해독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됐다.

저자는 각 시대의 사회적·문화적 맥락 속에서 심리학이 어떻게 발전했는지를 균형 있게 설명한다. 이를 통해 심리학이 단순한 이론의 집합이 아니라, 인간 이해와 사회 문제 해결에 깊이 관여해온 살아 있는 지적 전통임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박태해 선임기자 pth122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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