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2년 5월 서울 홍대 앞 거리에서 한 취객이 친구의 부축을 받으며 걸어가고 있다./조선일보 DB |
2024년 8월 새벽 주점을 운영하던 50대 여성 A씨는 술에 취해 가게 안에서 잠들었다. 그러다 누군가 자신의 가슴 등 신체를 만지는 느낌에 잠에서 깼다. A씨는 곧바로 경찰에 신고하며 “한 남성이 성행위를 했다”고 진술했다. A씨는 재판 과정에서 “당시 술에 취했다. 실제로 성행위는 없었던 것 같다”며 진술을 번복했다. 그럼에도 지난 1월 서울고법은 남성의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징역 10개월을 선고했다. A씨에게서 남성의 DNA가 검출되는 등 다른 증거가 확인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비슷한 사건에서 다른 판단이 나왔다. 2023년 10월 20대 여성 B씨는 초등학교 동창과 술을 마신 뒤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성범죄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B씨는 경찰 조사에서 “입맞춤한 기억이 전혀 없다”고 했다가 이후 “입맞춤했었던 것 같다”고 진술을 바꿨다. 창원지법은 “사실상 유일한 증거인 피해자 진술이 (바뀌어) 증명력을 갖췄다고 보기 어렵다”며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처럼 술이나 약물에 취해 기억이 끊긴 피해자 진술을 어떻게 볼 것인지 재판부마다 판단이 엇갈리자 법원이 새 기준을 마련하기 위해 연구에 나섰다. 대법원 법원행정처는 지난 5일 ‘준강간, 준강제추행죄 피해자의 각성 시 기억의 특성, 진술의 신빙성 판단 요소 및 기준에 관한 연구’ 수행을 위한 공고를 냈다고 6일 밝혔다.
현재 법원은 성범죄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판단할 때 ‘일관성’과 ‘구체성’, ‘객관적 상당성’을 주요 기준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법원행정처는 이 기준이 “정상적인 인지 능력을 유지한 상태에서 범죄를 경험한 피해자를 전제로 한 것”이라며 “술이나 약물에 취한 피해자에게도 이를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했다. 행정처는 법심리학, 법정신학 등을 활용해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판단할 기준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이다.
[오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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