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진 기자(hjkim@pressian.com)]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계속되며 원유 뿐 아니라 비료 및 식량 생산으로 공급망 혼란이 확장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다. 전쟁이 장기화할 경우 유가가 오르고 원유 수송이 차질을 빚으며 러시아산 원유 수요가 늘어 러시아에 이득이 되고 중국 또한 동아시아에 대한 미국의 관심이 줄면서 반사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5일(이하 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에서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전날보다 8.5%(6.35달러) 급등한 배럴당 81.01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이날 런던 ICE 선물거래소에서 브렌트유 가격도 전날보다 4.93%(4.01달러) 오른 배럴당 85.41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이는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해 원유 운송길이 막히고 걸프국들의 에너지 시설을 공격해 각국에서 석유 및 가스 생산 중단이 이어지고 있음에 따른 것이다. <로이터> 통신을 보면 어게인캐피털의 파트너 존 킬더프는 "호르무즈 해협에 아무 움직임이 없기 때문에 가격은 계속 오를 거고 각국은 생산을 중단해야 하는 상황이며 즉시 정상 수준으로 재개할 수도 없어 회복이 더 지연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문제가 한동안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가 불안이 인플레이션을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5일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기름값이 "오르면 오르는 것"이라며 짐짓 태연한 태도를 취했다. 그는 기름값에 대해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며 "이 사태가 끝나면 (유가가) 매우 빠른 속도로 떨어질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어 "현 상황은 휘발유값이 조금 오르는 것보다 훨신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국제유가는 앞서 트럼프 대통령이 호르무즈 해협에서 미군 호위를 제공하겠다고 밝혔음에도 상승세를 이어왔다.
다만 미 정부는 유가 대응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은 4일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인도 정유업체의 러시아산 원유 구매 제한을 30일간 면제한다고 밝혔다. 미국은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제재 성격으로 인도에 러시아산 원유를 구매하지 말 것을 계속해서 압박해 왔다.
<로이터>에 따르면 4일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이 수지 와일스 백악관 비서실장과 크리스 라이트 에너지부 장관이 석유업계 최고경영자(CEO)들과 접촉해 에너지 가격 상승에 대응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했다고 밝혔다.
<로이터>는 백악관 고위 관계자를 인용해 미 재무부가 이르면 5일 유가 급등 대응을 위한 원유 선물 시장 개입 조치를 발표할 수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러한 소식 뒤 유가는 6일 다소 하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로이터>를 보면 브렌트유 선물은 이날 GMT 오전 4시40분(한국시각 오후 1시40분) 기준 전날보다 1.1% 하락한 배럴당 84.46달러, WTI는 1.3% 하락한 배럴당 79.93달러에 거래됐다.
호르무즈 해협은 연료 뿐 아니라 비료의 주요 운송 통로이기도 해 전세계 식량 공급에 대한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5일 <파이낸셜타임스>(FT)는 전세계 요소 수출의 35%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다고 지적했다. 요소는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질소 비료다. 인산 비료 생산의 핵심 원료인 황의 전세계 수출량 45%, 질소 비료 핵심 원료인 암모니아의 상당량도 이 해협을 통해 운송된다.
유럽 최대 비료 회사 노르웨이 야라인터내셔널의 최고경영자 스베인 토레 홀세테르는 호르무즈 해협 폐쇄가 "세계 식량 생산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을 과소평가해선 안 된다"며 비료 부족으로 수확량의 절반이 감소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 텍사스대 린든 B 존슨 공공정책대학원 식품시스템 전문가 라지 파텔 교수는 공급망 혼란이 계속될 경우 6~10주 안에 빵 가격이, 몇 달 안에 계란 가격이, 6달 안에 돼지고기 및 닭고기 가격이 오를 수 있다고 내다봤다.
유가 상승으로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을 벌이고 있는 러시아가 이득을 볼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5일 킴벌리 도노반 미 애틀랜틱카운슬 경제·국가전략 이니셔티브 국장은 지난 1월 유럽연합(EU)과 영국이 러시아 원유 가격상한선을 배럴당 44.1달러로 낮춘 가운데 이번주 배럴당 80달러를 넘어선 유가는 상한선이 씌워진 러 원유를 "매력적"으로 만들어 러시아에 원유 판매 "기회"를 제공한다고 지적했다.
도노반 국장은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중동 원유 확보가 어려워짐에 따라 중국, 인도 등의 러시아산 원유 수요가 늘어날 가능성도 짚었다. 5일 <로이터>는 이 사안에 정통한 소식통 6명을 인용해 인도 정유업체들이 원유 공급 부족을 타개하기 위해 수백만 배럴의 러시아산 원유를 즉시 구매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란 분쟁이 장기화할 경우 미국이 아시아에서 눈을 떼며 중국이 반사 이익을 볼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톰 하퍼 영국 이스트런던대 국제관계학 강사는 3일 호주 학술전문매체 <컨버세이션> 기고를 통해 장기전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억지력을 강화하는 데 사용될 수 있는 자원을 고갈시켜 중국이 이 지역에서 입지를 공고히 할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고 봤다.
그는 이어 "이란 분쟁이 중국 경제에 단기적 타격을 줄 수 있지만 시간이 흐른 뒤엔 이 순간을 중국이 아시아와 세계에 걸쳐 영향력을 강화하는 데 있어 중요한 지점이었다고 여길지도 모른다"고 전망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베네수엘라 모델'을 언급하며 이란 차기 지도자 선출에 관여할 뜻을 드러냈다. 그는 5일 미 <악시오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란 차기 지도자 선출에 "베네수엘라의 델시(로드리게스 임시 대통령)처럼 내가 임명에 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유력한 후계자로 거론 중인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의 아들 모즈타바 하메네이를 "하찮은" 인물로 평가하며 모즈타바의 최고지도자 등극을 "용납할 수 없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같은 날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도 "우린 이란을 미래로 이끌 지도자 선택 과정에 참여하고 싶다. 그래야 5년마다 반복해서 이 일을 할 필요가 없다"고 경고했다. 이란 쿠르드족의 이번 분쟁 개입 가능성이 보도되는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그들이 그렇게 한다면 좋은 일"이라며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5일(현지시간) 스페인 마드리드 인근 핀토의 액화석유가스(LPG) 공장 저장 탱크 근처에 가스통이 쌓여 있다. ⓒAFP=연합뉴스 |
[김효진 기자(hjkim@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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