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급등하면 1500원 레벨 상단...실물경기도 위축
李 대통령 ‘100조 시장안정 프로그램’ 집행 지시
[디지털데일리 이호연기자] 미국·이란 군사 충돌 여파로 원-달러 환율이 야간 거래에서 1500원까지 치솟으면서 변동성이 확대됐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이후 약 17년만의 일이다. 중동 전쟁이 장기화되면 국제유가 급등, 달러 강세 심화가 동시에 전개되며 환율이 1540원까지도 치솟을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5일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 종가 대비 12.2원 내린 1464.0원으로 출발했다. 전날 환율은 야간 거래에서 한 때 1500원을 넘어섰으며, 1480원대를 웃돌다 1476.2원으로 마감했다. 달러화도 주요 통화 대비 강세를 보이며 달러인덱스도 99선까지 상승했다.
미국의 이란 공습 이후 위험회피 심리가 커지면서 지난달 27일부터 3거래일 연속 상승한 환율은 이날 불안 심리가 다소 진정된 모습이다. 공습이 지속되고 있지만 국제유가 상승 폭이 크지 않고, 미국 주요 경제 지표도 예상치를 상회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문정희 KB국민은행 이코노미스트는 “중동 전쟁이 진행중이지만 미국이 호르무즈 해협 유조선 호송 등 유가 방어 의지를 보이자, 유가 상승폭이 둔화되며 환율도 안정세를 찾았다”며 “전날은 공포심리로 환율이 1500원을 터치했지만, 현재 시장은 고비는 넘겼다고 평가하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다만, 환율이 안정세를 보였음에도 미국과 이란의 대립이 장기화 될 경우 변동성은 다시 확대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향후 환율의 관건은 호르무즈 해협 상황에 달렸다고 보고 있다.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길어질수록 국제 유가가 올라 원화 가치에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문 이코노미스트는 “이란 사태가 3~4일 이내에 진정된다면 환율 상단은 1480원 수준에 머물 것”이라면서도 “만약 3~4주가량 지속돼 유가가 배럴당 85달러를 상회할 경우 환율은 1470~1500원 구간을 오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2~3개월 이상 장기화되고 정유시설 타격 등 전면전으로 확전될 시에는 “유가가 110달러를 돌파하며 환율 상단 또한 1540원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박형중 우리은행 이코노미스트 역시 “중동 사태에 따른 국제 유가 추이에 따라 환율이 1500원선을 수시로 넘나들 수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외환 당국이 1,480원선을 경계하고 있어 이 수준에서 상승폭이 제한될 가능성도 있지만, 현재 글로벌 지정학적 위험이 매우 엄중한 상황”이라며 “원화뿐만 아니라 전 세계 주요 통화가 달러 대비 약세를 보이는 흐름에서 원화만 예외이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어 “중동 문제가 장기화되거나 전면전으로 확전될 경우, 환율 레벨 자체가 1500원대에 안착하며 고착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고환율과 유가 고공행진이 지속되면 실물경제 부담도 커질 수 있다. 나이스신용평가는 “우리나라는 전체 에너지 수입의 70%를 중동에 의지하고 있다”며 “전쟁 장기화 시 환율 상승 압력은 더욱 높아질 것이며 고환율 지속 시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도 증폭될 전망”이라고 우려했다. 고환율 장기화는 국내 소비를 둔화하고 경제 심리를 위축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현대경제연구원도 시나리오를 통해 국제유가가 배럴당 150달러까지 오르면 한국의 경제 성장률은 최소 0.8%포인트(p) 하락하고, 소비자물가는 2.9%p 상승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에 정부와 금융권도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비상 대응 체계를 가동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임시 국무회의를 열고, 주식과 환율 등 금융시장 변동성 확대에 대응하기 위한 100조원 규모 시장안정 프로그램의 신속 집행을 지시했다.
한은도 “환율이 일시적으로 1500원을 넘었지만 과거 금융위기와 다르고, 달러 유동성이 풍부한 상황”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전날 해외 출장 일정을 미루고 오전 8시 30분 ‘중동상황 점검 태스크포스(TF) 회의’를 긴급 소집했다.
은행권도 환율·금리·유가 등 시장 지표를 긴급 점검하고 대책 마련에 나섰다. 우리금융그룹은 임종룡 회장 주재로 중동 상황 관련 현안 점검 회의를 열고 시장 영향을 점검했다. 임 회장은 “환율이 다시 급등세로 돌아선 만큼 외환시장 변동성을 예의 주시해야 한다”며 은행은 외화 유동성 상황을 면밀하게 점검하고, 당분간 일별 관리 체제로 전환해 대응할 것을 주문했다.
하나금융그룹도 지주사와 주요 계열사의 자금 담당 임원들이 참여하는 대응 채널을 만들고 시장 상황 실시간 공유에 나섰다. KB금융그룹도 비상 대응 체계를 가동하면서 그룹 차원의 외환 포지션 노출 관리에 나섰으며, 신한금융그룹은 위기관리 단계를 ‘주의’ 수준으로 유지하면서 중동 지역 사업과 거래 현황 모니터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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