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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북방협력 다시 움직일 때, 한국은 무엇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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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덕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jedeka88@naver.com)]
러우 전쟁 이후 중국과 러시아의 시선이 동북아로 이동함에 따라 동 지역의 질서는 다시 급변하고 있다. 이는 국가 역량을 동북아에 투사하려는 양국의 의지에 기반한 지정학적 변화이자 중장기적인 역학 구도의 재배치이다. 이 재편 과정에서 한국은 관찰자에 머물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질서의 설계자와 조정자의 자리를 선점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 그레이터 투먼 이니셔티브(GTI; 광역두만강개발계획)가 있다. GTI는 오랫동안 '성과 없는 지역 개발 협의체'로 평가받아 왔지만, 이제 단순한 개발 프로젝트가 아니라 동북아 지정학과 지경학이 교차하는 제도적 실험 공간으로 그 성격이 달라지고 있다.

지금 다시 GTI가 활성화되는 이유는 개발 수요와 질서의 공백 때문이다. 중국은 동북 3성의 장기 침체를 해소해야 하고, 러시아는 제재 장기화 속에서 극동을 유라시아 전략의 실질적 축으로 만들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북한 역시 중국· 러시아와의 협력을 확대하고자 한다.

두만강 유역은 이 세 행위자의 이해가 교차하는 공간이자 서구 질서의 사각지대이다. GTI는 지역 개발 사업을 넘어 세 국가의 이해를 충족하며 북·중·러 중심의 새로운 질서를 창출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이 지점에서 한국이 취해야 할 전략은 분명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자본과 기업을 앞세운 성급한 참여가 아니라, 거버넌스 구축에 대한 선제적 개입이다. GTI 회원국이라는 지위는 상징이 아니라 실질적 자산이다. 이는 중국·러시아·몽골, 그리고 잠재적으로 북한이 북방에서 어떤 구상을 하고 있는지를 제도 내부에서 가장 먼저 파악할 수 있는 통로다.

GTI는 이미 한국·중국·러시아·몽골이 제도적으로 얽혀 있는 협의체다. 한국이 소극적일수록 이 틀은 중국 주도의 지역 질서로 굳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되면 향후 북한이 참여하더라도 한국은 규칙을 만드는 주체가 아니라 사후적으로 적응하는 주체로 남게 된다.

지금은 한국이 GTI 내에서 제도적 영향력을 키울 수 있는 시점이며, 제도적 영향력 확보는 사실상 북한 복귀 이후의 의사결정 구조를 규정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측면에서 GTI에 대한 한국 정부의 거버넌스적 참여는 투자 여부가 아니라 질서 설계에 참여할 것인가의 문제다. 지금은 참여의 위험보다 불참 비용이 더 클 수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한국은 북방 협력에서 반복적으로 딜레마를 경험해 왔다. 과거 한국 기업들은 정치적 리스크와 제도의 미비 속에서 손실을 감수해야 했다. 이러한 경험은 현재 정책 판단을 보수적으로 만든다.

과거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투자 이전 단계의 국가 리스크 관리 체계를 갖춰야 한다. 제재·법률·정치 리스크를 상시 점검하고, 정부는 거버넌스를 담당하되 민간 투자는 단계적으로 연결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이는 향후 남북경협 재개 시 민간이 혼자 위험을 떠안지 않게 하는 최소한의 조건이다.

한국 정부는 GTI 전담 컨트롤타워 또는 범부처 협의체를 구성해 중장기 시나리오를 관리해야 한다. GTI를 단발성 국제회의가 아니라 전략적 플랫폼으로 활용하려는 의지가 필요하다. 한국은 실무 워킹그룹, 규범·표준 설계, 국제기구와의 공동 프로젝트를 주도함으로써 중·러·몽·북한(잠재적 참여자) 사이의 중간 조정자 역할을 제도적으로 강화할 수 있다.

GTI의 전략적 가치는 남북경제협력과 연결될 때 더욱 분명해진다. GTI와 같은 다자협력체는 남북 간 직접 협력이 막혀 있을 때도 정치적 부담이 상대적으로 낮은 우회적 협력 공간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현재 남북관계는 경색되어 있지만 언제든 해빙기가 올 수 있고 협력의 기회는 미리 준비했을 때 잡을 수 있다.

한국은 북한의 참여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 북한은 2009년 탈퇴 전까지 GTI의 회원국이었고, 두만강 유역 협력의 핵심 공간에 있다. 중국 역시 GTI의 실질적 활성화를 위해서는 북한의 참여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 북한이 복귀할 경우를 대비해 한국은 지금부터 제재에 저촉되지 않는 협력 의제를 중심으로 GTI의 내용을 고도화할 필요가 있다. 환경 관리, 기후·수자원 협력, 보건·방역, 산림·생태 복원, 학술·인적 교류 등은 북한 참여 시에도 정치적 부담 없는 영역이다.

나아가 정부는 GTI 내에서 북한 복귀 이후를 가정한 남북경협 모델을 미리 설계해야 한다. 남북 철도·물류 연결의 단계적 로드맵, 에너지·전력 협력의 소규모 시험 사업, 두만강 유역 관광·접경지역 공동관리 모델 등은 다자적 틀에서 추진될 때 리스크를 낮출 수 있다. 이는 남북관계가 개선될 경우 즉시 실행 가능한 협력 패키지가 된다.

GTI와 두만강 협력은 단기간에 성과를 내는 사업은 아니지만, 지금 참여하지 않는다면 향후 북방에서 한국의 입지가 좁아질 수 있다. 한국은 북방의 질서가 다시 설계되는 시점에 GTI 거버넌스 설계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GTI는 남북경협을 준비하는 현실적인 플랫폼 중 하나이며, 지금은 한국이 그 틀 안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는 중요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프레시안

▲ 그레이터 투먼 이니셔티브(Greater Tumen Initiative, GTI) 홈페이지. ⓒGTI 홈페이지 갈무리



[최재덕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jedeka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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