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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황제의 진짜 고향, 크로아티아의 이스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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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보다 저렴하게, 로마를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크로아티아의 이스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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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드리아해를 사이에 두고 이탈리아와 마주한 크로아티아 이스트라(Istria) 반도는 같은 문화권에서 출발했지만 다른 방향으로 익었다. 로마 황제들이 건설한 원형경기장이 2천 년째 온전히 서 있고, 프랑스 페리고르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트러플이 미르나 강 유역 숲에서 캐어지며, 국제 올리브 오일 품평회가 해마다 이 반도 이름을 호명한다. 관광지로 소비되기 전의 토스카나가 이런 모습이었을 것이다.

두브로브니크의 성벽에서 출발해 흐바르의 보라빛 오후를 지나 이스트라의 언덕 마을에 닿는 여정. 크로아티아는 한 영토 안에서 전혀 다른 세 가지 시간을 산다.

이탈리아 밖에서 마주한 로마 건축의 정점, 풀라

크로아티아 이스트라 반도 최남단에 자리한 풀라는 3천 년 역사가 살아 숨 쉬는 도시다. 이곳에 발을 딛는 순간, 방문자를 압도하는 것은 고대 로마로 시간을 되돌린 듯한 거대한 석조 건축물이다. 기원전 27년부터 서기 68년 사이에 완성한 풀라 아레나(Arena)는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큰 로마 원형경기장이며, 현존하는 로마 원형경기장 가운데 유일하게 네 개의 탑이 온전히 남은 역사적 걸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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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공에서 본 풀라 아레나. 사진제공|크로아티아관광청/CNTB



장축 132.45m, 단축 105.10m, 최고 높이 32.45m의 풀라 아레나는 한때 2만 3천 명의 관중을 수용했다. 이탈리아 로마의 콜로세움이 원래 구조의 3분의 2를 잃어버린 것과 대조적으로, 풀라 아레나에는 도리아식·이오니아식·코린트식 세 가지 로마 건축 양식이 모두 고스란히 남아 있다. 현지에서 채취한 석회암으로 쌓아 올린 외벽 상단에는 빗물을 모으던 홈통과, 관중을 햇볕으로부터 보호하던 천막을 고정하던 돌판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경기장 바닥 아래, 맹수와 검투사들이 결전을 준비하던 지하 통로는 현재 이스트라의 올리브 오일과 와인 제조 역사를 보여주는 박물관으로 재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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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아티아인들에게 아레나는 박물관이 아닌 공원에 가깝다. 사람들은 그 안에서 시장을 열고 영화를 즐기고 커피와 함께 담소를 나눈다. 1954년 시작한 풀라 영화제(Pula Film Festival)는 크로아티아에서 가장 오래된 영화제로, 여름밤 2천 년 된 돌 위에 앉아 별빛 아래 스크린을 바라보는 경험은 세계 어디에서도 재현하기 어려운 낭만이다. 6월 중순부터 9월 중순까지 매주 저녁 펼쳐지는 스펙타큘라 안티크바(Spectacula Antiqua) 검투사 재현 공연은 로마 시대로의 완벽한 귀환을 연출하고, 루치아노 파바로티(Luciano Pavarotti), 엘튼 존(Elton John), 안드레아 보첼리(Andrea Bocelli) 같은 전설들이 이 무대에서 공연을 펼친 걸 보면 아레나의 음향시설과 분위기가 얼마나 압도적인지 알 수 있다.

아레나 관람 후에는 도보 5~10분 거리의 광장으로 발길을 옮기자. 기원전 2년부터 서기 14년까지 16년에 걸쳐 완성한 아우구스투스 신전(Temple of Augustus)과 세르지우스 개선문(Arch of the Sergii)이 골목 사이로 불쑥 나타나, 카메라를 쥔 손을 더욱 바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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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토스카나에서 즐기는 미식 허니문, 트러플·와인·올리브 오일의 삼중주

풀라가 건축으로 이스트라를 대표한다면, 반도 전체는 미식으로 여행자의 심장을 사로잡는다. 이스트라가 ‘제2의 토스카나’로 불리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트러플, 국제 무대에서 상을 휩쓰는 올리브 오일, 그리고 토착 품종으로 빚은 개성 넘치는 와인이 한 반도 안에 모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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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금보다 귀한, 이스트라 트러플

모토분(Motovun) 언덕 아래 미르나(Mirna) 강 유역의 울창한 숲은 세계 최고급 트러플 산지다. 흑트러플과 백트러플이 모두 나는 이 숲에서 훈련된 트러플 사냥개와 함께 숲길을 걷는 체험은, 이스트라 여행의 백미다. 개가 코를 땅에 박고 분주히 움직이다가 갑자기 멈추는 순간의 긴장감, 흙 속에서 투박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트러플 한 덩어리가 주는 기쁨은 색다른 원초적인 설렘을 안긴다. 진정한 럭셔리란 화려한 시설이 아니라 오히려 이런 경험에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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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토분 인근 리바데(Livade) 마을은 ‘트러플 수도’라 불릴 만하다. 세계에서 가장 큰 백트러플이 발견된 곳이다. 트러플 식당과 마켓이 밀집해 경쟁적으로 특별한 트러플 요리를 낸다. 갓 캔 트러플을 얇게 저며 올린 타글리아텔레 한 접시, 이스트라산 올리브 오일을 두른 트러플 오믈렛, 그리고 현지 말바지아(Malvazija) 화이트 와인 한 잔이면 두 사람만의 완벽한 언덕 마을 만찬이 완성된다. 매년 가을 열리는 모토분 트러플 축제(Motovun Truffle Days)에 맞춰 여행 일정을 조율하면 갓 수확한 트러플의 향기를 온몸으로 느끼는 행운을 누릴 수 있다. 트러플 애호가라면 여행 경비가 아깝지 않을 만큼, 가격도 맛도 진귀하다.

봄에 이스트라를 찾는다면 선택지가 하나 더 생긴다. 매년 5월 초 노비그라드(Novigrad)를 거점으로 이틀간 열리는 노바 에로이카 이스트리아 트러플 투어(NOVA Eroica Istria – Truffle Tour)다. 모토분과 리바데를 지나는 150킬로미터 트러플 루트를 비롯해, 와인 품종 이름을 딴 100킬로미터 테란 루트, 60킬로미터 말바지아 루트까지 세 가지 코스 가운데 체력에 맞게 고를 수 있다. 전체 구간의 80퍼센트 이상이 이스트라 특유의 흰 비포장도로다. 트러플 향이 채 가시지 않은 숲길을 두 바퀴로 달리며, 쉼터마다 올리브 오일과 와인을 곁들이는 여정은 이스트라 미식 여행의 연장선이자 전혀 다른 차원의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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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바 에로이카 이스트리아 트러플 투어 현장. 사진제공|CNTB



아드리아해의 황금, 이스트라 올리브 오일

이스트라 산 올리브 오일은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국제 올리브 오일 가이드 ‘플로스 올레이(Flos Olei)’에서 셀 수 없이 많은 수상 이력으로 다년간 세계 최고 수준을 인정받았다. 이스트리아 비앙케라(Istarska Bjelica) 등 지역 고유 품종으로 압착한 엑스트라버진 오일은 강렬한 허브 향과 풋풀·토마토 향이 특징이다. 올리브 오일의 맛과 향이 이처럼 다양할 수 있다는 것을, 이스트라가 아니었다면 평생 알지 못했을 것이다.

이프사(Ipsa), 치아발론(Chiavalon) 같은 농가에서는 올리브 수확과 압착 과정을 직접 볼 수 있는 농장 투어를 운영한다. 오일의 온도와 향을 비교하는 테이스팅 후, 갓 구운 빵을 오일에 찍어 먹는 소박한 행복을 누린다. 바닐라 아이스크림 위에 올리브 오일과 굵은 소금, 다크초콜릿을 올려 내는 감각적인 디저트 페어링까지, 올리브 오일 하나로도 반나절이 금세 지나간다. 맛도 맛이지만, 병에 소중한 이의 이름을 새겨 맞춤 제작해 주니, 이스트라의 올리브 오일은 기념품으로도 더없이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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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사 올리브 농장. 사진제공|CNTB



말바지아와 테란, 언덕을 따라 이어지는 와인 루트

이스트라 와인의 두 주인공은 토착 화이트 품종 말바지아(Malvazija Istarska)와 레드 품종 테란(Teran)이다. 꽃향기와 아몬드 뉘앙스가 감도는 말바지아는 아드리아해 해산물과 천생연분이고, 철분이 풍부한 붉은 흙 테라로사(terra rossa)에서 자란 테란은 깊고 거친 탄닌감으로 트러플 파스타, 이스트라산 양고기 요리와 완벽하게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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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빈(Rovinj)에서 출발하는 ‘베스트 오브 이스트라 와인 투어’는 하루 만에 3곳의 부티크 와이너리를 방문하며 5~8종의 와인을 시음하고, 트러플 요리·치즈·살라미·올리브 오일을 곁들인 점심과 모토분 산책까지 엮어주는 알찬 코스다. 일부 와이너리는 올리브 밭과 채소 정원을 함께 갖춘 부티크 스테이를 운영하는데, 포도밭을 내려다보며 즐기는 선셋 프라이빗 디너는 이스트라 여행의 결정적 장면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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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노바 바텔리나의 음식들. 사진제공|CNTB



4대째 이어온 바다의 식탁, 코노바 바텔리나

풀라 남쪽 반욜레(Banjole) 마을의 코노바 바텔리나(Konoba Batelina)는 이스트라 미식 여행의 화룡점정이다. 4대째 어부이자 요리사로 살아온 스코코 가문이 2000년 문을 열었고, 아버지 다닐로(Danilo)와 어머니 알다(Alda), 셰프 다비드(David)가 함께 운영한다. 메뉴는 그날 아침 직접 잡아 올린 해산물로 당일 구성한다. 물고기 간 파테, 생선 내장 요리 등 바다에서 나는 모든 것을 낭비 없이 활용하는 다비드 스코코의 창의적인 요리는 미슐랭 가이드 비브 구르망(Bib Gourmand)을 획득했고, 앤서니 부르댕(Anthony Bourdain)도 방문한 식당이다. 말바지아 한 잔을 곁들이면 여행의 피로가 씻은 듯 사라진다. 예약 필수, 현금 결제만 가능하며 8월 첫 3주는 운영하지 않는다.

이스트라의 미식과 유적을 충분히 음미했다면, 이제 크로아티아 전체를 잇는 여정으로 시선을 넓힐 차례다. 두브로브니크의 성벽에서 시작해 스플리트의 황제 궁전을 거쳐 이스트라의 언덕 마을에서 마무리되는 10일 일정은, 크로아티아가 품은 세 가지 시간을 하나의 호흡으로 완성한다.

크로아티아 10일 추천 일정

인천에서 두브로브니크 또는 자그레브로 입국해 이스트라를 중심으로 크로아티아의 핵심 코스를 엮는 일정이다. 현재 중동 지역 정세를 고려해 두바이·아부다비 경유 노선은 피하고, 루프트한자(프랑크푸르트 경유), 터키항공(이스탄불 경유), 대한항공 혹은 오스트리아 항공(빈 경유), KLM(암스테르담 경유) 등 유럽 허브를 이용한다. 두브로브니크로 입국해 북상하는 루트로 여행하면 효율적이다.

1~3일차 | 두브로브니크(Dubrovnik): 성벽 위의 아드리아해

‘아드리아해의 진주’라 불리는 두브로브니크는 크로아티아 여행의 가장 극적인 출발점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구시가지 성벽(City Walls)을 걸으며 바라보는 코발트빛 아드리아해는 세계 어느 여행지와 견줘도 뒤지지 않는다. 스르지(Srđ) 언덕 케이블카에서 내려다보는 구시가지의 붉은 지붕은 일생에 꼭 한 번은 봐야하는 풍경이다. 드라마 ‘왕좌의 게임’ 촬영지로도 유명해 킹스 랜딩의 골목을 걷는 특별한 경험도 놓칠 수 없다.

두 번째 날에는 엘라피티 제도(Elaphiti Islands) 보트 투어를 추천한다. 콜로체프(Koločep), 로푸드(Lopud), 시판(Šipan) 세 섬을 하루에 돌며 투명한 에메랄드빛 바다에서 스노클링을 즐기고 한적한 섬 마을을 산책하는 투어는 두브로브니크 여행의 가장 사적인 페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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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브로브니크 항구. 사진제공|CNTB



4~5일차 | 흐바르(Hvar) 데이투어 포함 스플리트(Split): 황제의 궁전과 보라빛 섬

두브로브니크에서 페리나 쾌속선으로 스플리트로 이동한다.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Diocletianus)가 말년을 보내기 위해 4세기에 지은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Diocletian‘s Palace)은 지금도 사람들이 일상을 살아가는 살아 있는 유적이다. 궁전 안에 식당과 카페, 갤러리가 들어서 있어 고대 로마의 돌 사이로 현대 크로아티아의 일상이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스플리트에서 페리로 약 1시간 거리의 흐바르(Hvar)는 크로아티아에서 가장 매력적인 섬으로 꼽힌다. 라벤더 밭과 포도밭이 어우러진 섬 내륙, 베네치아 시대의 고풍스러운 구시가지 광장, 그리고 일몰 명소인 포르타나(Fortana) 언덕까지, 흐바르는 크로아티아 여행자라면 반드시 들러야 할 섬이다. 파클레니 제도(Pakleni Islands)로 나가는 보트 투어에서 숨겨진 해변들을 발견하는 것도 흐바르만의 특권이다. 당일 데이투어로 방문하거나 하룻밤을 더 머물러도 아쉬움이 남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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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0일차 | 이스트라(Istria): 미식과 유적, 그리고 아드리아해의 낭만

스플리트에서 자그레브를 경유하거나 국내선 항공을 이용해 풀라로 이동한다. 이스트라에서의 5일은 크로아티아 여행의 가장 느리고 깊은 챕터다.

풀라에 짐을 풀고 첫날은 아레나와 포럼 광장을 천천히 둘러본다. 이틀째는 모토분과 리바데를 찾아 트러플 헌팅과 언덕 마을 산책을 즐기고, 셋째 날에는 로비니의 골목과 와이너리 투어로 말바지아와 테란을 만난다. 넷째 날은 파지자나(Fažana)에서 보트를 타고 브리유니 국립공원(Brijuni National Park)으로 들어간다. 티토 대통령의 여름 별장이 있던 이 섬에는 지중해 식생과 사파리 공원, 고고학 유적지가 어우러져 있어, 아드리아해의 자연을 가장 깊숙이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마지막 날 저녁은 반드시 코노바 바텔리나를 예약해 두자. 4대째 이어온 바다의 식탁에서 이스트라 여행의 대미를 장식한다.

5월 초 방문이라면 노비그라드에서 열리는 노바 에로이카 이스트리아 트러플 투어를 하루 일정에 얹는 것도 좋다. 자전거를 타지 않더라도 노비그라드 중심부의 엑스포 구역에서 생산자 시식 행사와 음악 공연을 즐길 수 있어, 이스트라 축제의 분위기를 온전히 체험하는 하루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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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차 | 귀국

풀라 공항에서 유럽 허브 공항을 경유해 귀국한다. 여름 성수기에는 유럽 주요 도시에서 풀라 직항 저가 항공편이 늘어나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

이스트라는 아직 대중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숨겨진 목적지다. 트러플 향 가득한 숲길을 걷고, 천 년 묵은 올리브나무 아래 오일을 시음하고, 2천 년 된 원형경기장에서 별빛 아래 영화를 보는 여행. 이탈리아가 질투할 법한 이 모든 경험이 크로아티아 이스트라에서 기다리고 있다.

강석봉 기자 ksb@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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