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의 기대를 확신으로 바꾸어 놓는 배우다. 감미로운 목소리와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대극장을 압도하던 박강현이 이번에는 노래 한 곡 없이 오직 연기에 쏟아붓는 무대로 돌아왔다.
박강현은 맨부커상 수상작 파이 이야기를 원작으로 한 라이프 오브 파이에서 주인공 파이로 분했다. 작품은 태평양 한가운데에서 호랑이와 함께 작은 구명보트에 남게 된 소년 파이의 경험담으로 전개된다. 하나는 동물들과 함께한 가장 믿기 어려운 판타지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들과 함께한 잔혹한 표류기다.
4일 만난 박강현은 작품의 핵심 질문인 ‘두 가지 이야기 중 무엇을 믿을 것인가’라는 질문을 받자 “나는 무조건 첫 번째(동물들과의 이야기)다. 대부분 두 번째(비극적인 인간들의 이야기)가 진짜라고 생각하겠지만 연출님께 ‘나는 조금 더 첫 번째를 믿을 수 있게 연기해 보겠다’고 했다. 희박한 가능성이라도 열려 있는 쪽을 선택하는 편이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근거 없는 믿음은 자신의 삶과도 닮아 있다고 고백한다. “어릴 때 나는 소심하고 내세울 게 없는 아이였다. 하지만 내가 선택한 길이 좋은 쪽일 거라는 강한 믿음이 있었다. 누군가 나를 도와주고 있다는 생각으로 살았다. 그리고 치열하게 연습을 하다보니 이렇게 관객과 만나는 날이 오더라”고 덧붙인다.
매번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처절한 사투를 경이롭게 그려내는 중이다. 지난 2일 서울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부산 공연을 앞둔 박강현은 “퇴장이 없는 공연이라 육체적으로 엄청난 지구력이 필요했다. 연습 때는 ‘제대로 해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막막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제작사 에스앤코는 “이 공연은 대사 중심의 연극도, 노래로 발산하는 뮤지컬도 아니다”라고 설명한다. 이어 배우의 연기·무대 장치·영상 그리고 동물 인형 퍼핏(Puppet, 인형)이 하나의 서사처럼 작동하는 라이브 온 스테이지로 명명했다. 덕분에 배우들은 육체적·정신적으로 전례 없는 도전을 해야 했다. 거대한 폭풍우와 광활한 수평선이 조명과 영상으로 스펙터클하게 구현되는 무대 위에서 박강현은 거의 모든 장면에 등장하며 극을 이끈다.
“연기 전공자로서 대학 시절(성균관대 연기예술학)로 돌아간 듯한 행복을 느끼고 있다”며 특히 초연에 대한 남다른 애착을 보였다. “발자국 없는 곳에 길을 만드는 걸 좋아한다. 누군가 한 것을 영상으로 먼저 접하면 나도 모르게 영향을 받게 된다. 레퍼런스가 없으니 내가 하는 모양대로 길이 나는 게 재밌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그런지, 고통의 크기를 미리 알고 무대에 오르니 조금씩 해내게 되더라. 체력적으로 나를 성장시켜 준 작품이라 이제는 어떤 역할이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웃어 보인다.
기술적으로는 전달력에 사활을 걸었다. 앙상블과의 떼신이나 듀엣 대사에서 자칫 흐려질 수 있는 정보를 관객에게 명확히 전달하기 위해서다. “말의 빠르기와 장단음, 에너지의 안배를 통해 중요한 포인트를 전달하는 데 집중했다. 소리를 하도 질러서 사실 지금 목이 상한 상태다. 작품을 위해 목을 갈아 넣고 있는 셈인데, 에너지를 쏟다 보니 차분해지고 소통에 대해 깊게 생각하게 됐다”며 너스레를 떤다.
박강현이 꼽는 이 작품의 진정한 주인공은 퍼핏이다. 정교한 퍼핏티어의 움직임으로 생명력을 얻은 벵갈 호랑이 리처드 파커와 얼룩말, 거북이는 무대 위에서 마법 같은 순간을 만든다. “퍼핏만 보이는 순간이 있다. 무대 위의 약속을 믿고 그것들을 진짜 동물로 느끼며 몰입한다. 연습실에서 처음 봤을 때부터 영상과 극장 연출이 어우러지면 관객들이 정말 좋아할 거라 확신했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오는 7일부터 15일까지 부산 드림씨어터에서 항해를 이어간다. 그는 “체력적으로 힘들지만 마음은 어느 때보다 행복하다. 이렇게 좋은 컴퍼니와 동료들, 특히 이름만으로 신뢰를 주는 배우 박정민 형과 함께할 수 있어 영광이다”라고 각오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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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아 기자 cccjjjaaa@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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