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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지상군, 1991년 걸프전 투입…2003년엔 이라크 침공, 후세인 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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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미국 백악관이 공개한 지난달 28일 대이란 군사작전 ‘에픽 퓨리’ 진행 점검 상황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자택인 플로리다주 마러라고에 트럼프와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수지 와일스 백악관 비서실장 등이 모여 있다. 백악관 X 갈무리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이란에 지상군 투입 가능성을 시사하면 미국이 과거 중동지역에 지상군을 투입한 사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미국은 1991년 걸프전쟁, 2001년 아프가니스탄전쟁, 2003년 이라크전쟁에 대규모 지상군을 투입한 바 있다. 이 중엔 소기의 성과를 거둔 사례도 있지만, 막대한 인적 희생에도 민주 정권으로의 체제 전환과 정세 안정화란 목표를 이루는데 실패한 경우가 많다.

걸프전은 1990년 8월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면서 발발했다. 당시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은 침공 하루만에 쿠웨이트를 점령한 뒤 자국의 19번째 주(州)로 편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전 세계 석유 매장량의 약 20%(이라크와 쿠웨이트 매장량 합친 비중)를 손에 넣겠다는 후세인의 야망은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에너지 질서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다. 이에 미국은 1991년 1월부터 공군력을 앞세운 이라크 공습을 시작했고, 그해 2월 24일 지상군 투입을 전격 단행했다. 이라크군은 압도적인 미국의 군사력에 제대로 반격조차 못한 채 쿠웨이트에서 물러났고, 같은 달 28일 미국의 종전 선언으로 전쟁은 막을 내렸다. 쿠웨이트에서 이라크를 몰아내겠다는 명확한 전쟁 목표를 달성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다만, 후세인 독재 체제를 종식시키지는 못한 건 한계라는 지적을 받았다.

2001년 ‘9·11 테러’ 직후인 당시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그해 10월 7일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항구적 자유’ 작전을 개시했다. 9·11 테러를 기획한 오사마 빈 라덴 알카에다 수장이 아프간에 머물며 탈레반 정권의 비호를 받는 다는게 전쟁 개시 배경이었다. 당시 미국은 개전 12일 만에 지상군을 투입했다. 같은 해 11월 아프간 수도 카불 탈환, 12월 탈레반 근거지 칸다하르 함락 등을 통해 미국은 개전 초기 탈레반 정권을 신속히 몰아내는데 성공했다. 또 미국은 2011년 5월 파키스탄에 은신해 있던 빈 라덴을 사살했다. 하지만 아프간에 2조 달러가 넘는 예산을 투입하고도 민주 정권 수립이란 목표를 이루는 데 실패했다. 결국 2021년 8월 20년 만에 미군은 아프간에서 철수했고, 탈레반은 다시 아프간을 장악했다.

부시 행정부는 아프간전이 진행되는 와중에 2003년 3월 20일 이라크를 침공했다. 후세인 정권의 대량살상무기(WMD) 개발 의혹과, 9·11 테러를 일으킨 알카에다와의 연계 혐의를 앞세워 감행한 공격이었다. 미국은 2003년 12월 고향에 은신하던 후세인을 생포했지만, 개전 명분이었던 WMD 개발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 도덕성에 큰 타격을 입었다. 또 이라크 내 종파 갈등과 무장세력 테러에 직면해 2011년 12월 18일 미군이 이라크에서 완전 철수할 때까지 이라크인 18만여 명과 미국인 약 4500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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