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국 "지배구조 당국 규제보다 주주 역할" 강조
의결권 운용사 위탁 추진…견제기능 약화 우려도
금융당국이 직접적인 강제나 개입보다 주주권 행사를 통한 금융회사 지배구조 개선에 힘을 실으면서,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자들의 행보가 '정기 주주총회'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회장 셀프연임, 사외이사 거수기 등 논란에도 사실상 '우군' 역할을 해온 주요 금융지주 최대주주인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수탁자 책임 원칙) 강화 기조에 따라 지배구조 개편에 실질적인 견제 장치로 작용할지 주목된다.
국민연금 4대금융지주 지분 보유 현황/그래픽=비즈워치 |
주총 향방 '국민연금'이 키 잡아
3일 금융권에 따르면 KB, 신한, 하나, 우리금융 등 주요 금융지주회사들이 이달 하순 정기 주주총회를 개최한다. 특히 이번 주총에는 진옥동 신한금융 회장과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 빈대인 BNK금융 회장 등 지주 회장 연임 안건이 상정될 예정이어서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동안 회장 선임이나 연임 안건은 주총에서 대부분 압도적인 지지율로 통과됐다. 회장후보추천위원회에서 단독 후보로 회장을 추천하면 사실상 선임이나 연임이 확정된 것으로 인식됐다. 일각에서 주총이 통상적인 절차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 지난 2023년 11월 양종희 KB금융지주 회장 선임 관련 주총 찬성률은 발행총수 대비 80.9%였다. 출석주식수로 따지면 찬성률은 97.5%에 달했다. 앞서 2023년 3월 진옥동 회장 선임과 2025년 3월 함영주 회장 연임 안건 역시 80% 이상 찬성률로 통과됐다.
이 같은 찬성률에는 금융지주의 최대주주인 국민연금도 한몫했다. 국민연금은 현재 KB금융 지분 8.94%, 신한금융 9.03%, 하나금융 8.66%를 보유하고 있다. 우리금융은 6.78%를 보유해 최대주주는 아니지만 대주주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2022년 김태현 전 국민연금 이사장 취임 후 금융지주 회장 연임을 지배구조 문제로 직접 언급하며 개선하겠다고 밝히면서 2023년 정기 주총에서는 반대표가 꽤 행사됐다.
특히 진옥동 신한금융 회장 선임의 경우 라임자산운용 사모펀드 환매중단 사태 관련 경징계를 이유로 반대표를 던졌고, KB, 하나, 우리금융의 사외이사 및 감사위원 선임에도 반대의사를 전달한 바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금융지주 주총 안건에 대부분 '찬성표'를 던졌다. 거의 유일한 견제장치지만 경영진의 든든한 우군 역할을 해온 것이다.
국민연금 금융지주 의결권 행사 내역/그래픽=비즈워치 |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달 12일 은행 최고경영책임자(CEO) 간담회 자리에서 "지배구조 개선방안 발표 전이라도 즉시 (개선을) 추진해 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이번 금융지주 주총 안건에 지주 회장 연임과 관련한 특별결의 안건 등은 담기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사실상 연임에 큰 영향이 없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국민연금 등 연기금과 기관투자자의 의결권 행사에 이목이 더 쏠리는 이유다. 경영권을 침해하지 않는 이상 대주주로서 회장, 사외이사 등 이사 선임에 반대하거나, 위법행위 임원에 대한 해임 청구, 배당 제안 반대 등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가 가능하다.
최근 해외에서는 연기금들이 주총 전 미리 상정 안건에 대한 의견을 표명해 다른 소액주주들의 방향타 역할을 하고 있다. 사실상 주총 향방을 가를 막대한 키를 쥐고 있는 셈이다.
당국 주주역할 강화 추진…견제 기능 발휘할까
올해는 국민연금의 행보가 다를지 주목된다. 금융지주 회장 연임과 관련해 이재명 대통령의 "부패한 이너서클" 발언으로 금융당국이 국민연금 등 연기금과 보험, 자산운용사 등 기관투자자들에게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를 주문하고 있어서다.
관련 법안도 추진된다. 김남근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은 금융당국이 운용사의 스튜어드십 코드 활동을 점검·평가하는 금융사 지배구조법 일부 개정안을 발의했다. 기관투자자가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를 하도록 해 스튜어드십 코드 실효성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금융당국도 올해 자율에 맡겼던 스튜어드십 코드 이행 점검 방안을 발표한 바 있다. 수탁자책임 정책, 이해상충 정책과 이행지침 마련, 주주활동, 기업가치 제고 활동 공개, 의결권 행사 관련 가이드라인과 내역 등을 점검한다. 연기금, 68곳 자산운용사가 대상으로 내년부터 범위를 확대한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금융회사 지배구조 관련 내용들이 대부분 자율적인 모범규준인 만큼 당국 개입이나 규제보다는 주주의 결정에 맡기자는 게 기본적인 스탠스"라며 "연기금 등 주주가 제 역할을 해야 하며 구체적인 방안은 '지배구조 선진화 TF'를 통해 조만간 답을 내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일부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최근 국민연금이 자체적으로 행사하던 의결권을 위탁운용사(GP)에 넘기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어서다. 위탁운용사들은 국민연금 자금을 일임해 운용하고 일부 안건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하지만, 의결권 자체는 국민연금에 귀속돼 있어 국민연금을 대신해 대리 행사하는 구조였다.
그러나 위탁 방식을 펀드출자 형태로 변환하게 되면 주식 명의가 GP로 이전돼 위탁자금에 대한 의결권을 국민연금이 행사하지 못하게 된다. 관치금융 논란을 피하려는 조치로 풀이되지만, 전문가들은 이해상충과 기업 견제기능 약화를 우려한다.
이남우 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국민연금이 의결권을 자산운용사로 넘길 경우 재벌 관계사나 금융지주 산하 자산운용사가 많은 만큼 이해상충 소지가 있다"면서 "이들이 과연 독립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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