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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서양 해역서 벌어지는 ‘금징어 전쟁’···대형선 허용 vs. 지역업체·환경단체 반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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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30일 서울 시내 대형마트에 진열된 오징어. 연합뉴스


정부가 최근 ‘금징어’라 부를 만큼 급등한 오징어 가격을 잡겠다며 국내 오징어 공급의 핵심 어장인 남서대서양 공해에 7700t급 대형 원양 트롤선(저인망 어선) 조업을 추가로 허가했다. 이 해역에는 중국 어선 500여척이 조업하고 있는데, 한국도 국제적인 규제 도입시 어획량 할당을 확보하기 위해 조업 실적을 미리 쌓겠다는 계산도 깔려 있다.

그러나 수십 년간 이곳에서 오징어를 잡아 온 부산 지역 중소업체들은 수익 감소를 우려하며 반발하고 있고, 환경단체는 해양 생태계 파괴를 경고했다. 물가 안정과 대·중소기업 상생 문제, 생태 보전이라는 세 가지 가치가 충돌하는 양상이다.

2일 정부와 업계의 말을 종합하면, 해양수산부는 지난달 9일 브라질·아르헨티나 동쪽 바다인 남서대서양에서 원양 트롤선 4척의 오징어 조업을 추가로 허가했다. 남극바다에서 크릴을 잡던 동원산업의 7700t급 원양 트롤선 세종호가 남서대서양으로 이동해 오징어를 잡고 있다. 내년부터는 북태평양에서 명태를 잡던 트롤선인 남북수산의 남북호, 사조오양의 제99오양호, 한성기업의 준성호도 투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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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서대서양 해역에서 조업 중인 오징어 어선들의 불빛이 인공위성에 찍혔다. NASA 지구 관측소 제공.


정부가 조업을 허가한 곳은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지정한 남서대서양 41해구(FAO 41해구)다. 아르헨티나와 영국령 포클랜드섬 사이에 있는 공해로, 양국의 영유권 분쟁으로 사실상 ‘주인 없는 바다’다. 이곳엔 어획량을 규제할 국제기구인 ‘지역수산관리기구(RFMO)’도 없어 중국, 스페인, 대만, 한국, 어선 등이 경쟁적으로 조업해 왔다. 밤이면 오징어 집어등 불빛이 우주에서도 선명히 보일 정도다.

이 해역은 국내 오징어 수급의 핵심 어장이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은 국내에서 소비되는 오징어의 약 90%가 이 해역에서 생산된다고 추산했다. 그동안 부산 지역 500t급 채낚기 어선 29척과 3000t급 트롤선 11척이 정부 허가를 받아 이 해역에서 조업 중이었다.

정부가 대형 트롤선 조업 추가 허가에 나선 이유는 급감한 어획량과 치솟은 가격 때문이다. 기후 위기로 동해 수온이 2~4℃ 높아지며 동해안에서 오징어가 자취를 감췄다. 국가데이터처 국가통계포털을 보면, 연근해에서 잡힌 오징어는 2021년 6만880t에서 지난해 3만1006t으로 4년 만에 반 토막 났다. 원양 어획량도 같은 기간 7만3867t에서 5만2122t으로 줄었다. 그 결과 가격이 급등했다. 수협중앙회 수산경제연구원이 발표한 ‘2026 수산경제전망’을 보면, 냉동 오징어의 소비자 가격은 2021년 1㎏당 1만5260원에서 지난해 2만108원으로 31.8%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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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대형 트롤선 투입으로 올해 오징어 생산량이 최대 2000t 늘고, 소비자 가격은 10% 하락할 수 있다고 기대한다. 해수부 관계자는 “물가 안정 대책으로 국내에서만 팔아야 한다는 조건을 달아 트롤선 조업을 추가로 허용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기존 조업 업체들은 반발했다. 윤동호 남서대서양 오징어 채낚기위원회 위원장은 “조업 중인 29척은 모두 500t급 채낚기 어선인데, 8000t급 대기업 어선이 새로 들어오면 경쟁이 안 된다”며 “중소업체들은 생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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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원산업의 7700t급 원양 트롤선 세종호. 동원산업 제공


어획 방식에 따른 환경 영향 논란도 제기된다. 채낚기는 밤에 불빛을 밝혀 오징어를 낚싯줄에 한 마리씩 낚는 반면, 트롤은 자루 모양의 그물을 끌어 어류를 한꺼번에 잡는 방식이다. 남서대서양에서 조업 중인 전선중 정일산업 부사장은 “저인망식 트롤은 오징어뿐 아니라 다른 어종까지 함께 잡아 생태계에 더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며 “우리 정부가 국제사회에서 중국 어선의 무분별한 조업을 비판하면서 초대형 선박을 투입하는 것이 과연 설득력이 있나”라고 반문했다.

정부도 반박 논리가 있다. 앞으로 생길 국제 규제에 대비해 FAO 41해구에 어획량 쿼터를 확보하려면 지금부터 조업 실적을 쌓아야 한다는 것이다. 해수부 관계자는 “FAO 41해구에 지역수산관리기구(RFMO)가 생긴다면 어획량 쿼터를 확보할 때 우리 어선의 조업 실적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중국 배들이 남서대서양에서 잡은 오징어가 매년 6만t씩 우리나라로 수입되고 있다”며 “중국 어선들은 이 해역에서 편안하게 잡고 있는데, 우리만 손을 놓을 순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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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 채낚기 배가 남서대서양에서 오징어를 낚고 있다. 남서대서양 오징어 채낚기위원회 제공


환경단체들도 반발에 가세했다. 기후해양정책연구소(CORI)는 지난달 23일 논평에서 “기후위기 시대에 원양 오징어 조업 허가를 확대하는 것은 근시안적인 조치이며, 해양 생태계를 고갈시켜 미래 세대에게 부담을 넘기는 일”이라며 원양 오징어 조업 허가 확대 방침 재고를 촉구했다.

오징어는 멸종위기종은 아니지만 해양 생태계에서 먹이사슬 중간고리 역할을 한다. 그린피스는 “오징어 남획은 이를 먹이로 삼는 바다사자, 고래, 상어, 바닷새를 비롯한 전체 생태계에 심각한 위협을 가한다”고 했다. 국제환경단체인 환경정의재단(EJF)은 지난해 발간한 보고서에서 “오징어는 수명이 짧아 환경 조건에 매우 민감하다”며 “단 한 해의 남획만으로도 개체군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동원산업은 그러나 과도한 우려라는 입장이다. 동원산업 관계자는 “어획량은 선박 규모가 아닌 그물 크기가 좌우하는데, 세종호의 그물의 크기는 기존에 조업 중인 다른 트롤선들과 똑같아서 잡을 수 있는 물량은 비슷하다”며 “많이 잡아야 올해 1500t 수준이고 전량 국내로 들어가는 물량을 대체한다”고 말했다.

대형 트롤선 투입이 실제 오징어 소비자 가격 인하로 이어질지, 아니면 어장 경쟁과 환경 논란만 키울지는 향후 조업 결과로 판가름 날 전망이다.

김윤나영 기자 nayo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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