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서울 강동구 자택에서 만난 전경철(64세)씨가 황달로 검누런 빛이 도는 얼굴로 힘겹게 입을 뗐다. 전씨는 지난해 4월 간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전씨는 “차라리 마음이 편했다”고 했다. 20여년간 중증 자폐 아들을 홀로 돌보고, 치매 노모까지 수발하며 이미 만신창이가 된 그에게 죽음은 비로소 마주한 ‘해방구’였다.
중증 발달장애인 아들을 둔 전경철씨가 27일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아들 제원씨의 거주시설 입소 긴급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전씨는 지난해 4월 간암 말기 판정을 받고 4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았지만 기적적으로 버티며 아들의 거주시설을 찾고 있다. 이제원 선임기자 |
◆간암말기 아빠의 숙제…발달장애 아들 시설 입소
다만 전씨에게는 꼭 해결해야만 할 숙제가 하나 있다. 바로 아들 제원(27)씨의 주거 문제다. 한때 정보기술(IT) 기업을 일구며 앞만 보고 달렸던 엘리트 경영자의 삶은 20여년의 독박 돌봄 끝에 보증금 3000만원짜리 월세방으로 쪼그라들었다. 전씨는 “무일푼인 내가 죽으면 아들을 맡길 수 있는 곳은 장애인 거주시설뿐”이라며 “시설 찾는 데 실패한 부모는 결국 자기와 함께 떠나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사회는 해결책은 주지 않고 (살인자라고) 손가락질만 한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보건사회연구원의 ‘발달장애 자녀를 둔 부모의 자녀 살해 후 자살에 관한 탐색적 연구’에 따르면 2000∼2023년간 공식 보도된 발달장애 자녀 부모의 ‘동반자살’ 건수는 52건이며 비공식 및 실패 사례까지 포함하면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씨가 열달여간 전국 방방곡곡을 수소문해 찾아낸 거주시설은 겨우 2곳. 그마저도 한 곳은 제원씨를 맡은 지 만 하루도 안 돼 퇴소 조치했고, 다른 한 곳도 체험 입소 약 한 달 만에 입소 불가 통지를 보내왔다. 의사소통이 거의 불가능한 93㎏ 20대 남성의 돌발 행동과 폭력성 등을 시설에서 감당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전씨의 마지막 희망 강동구청 “전국 시설 접촉 중”
24일 전씨는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수희 강동구청장에게 제원씨의 거주시설 입소를 보장해달라는 내용의 ‘공적보호조치 이행촉구서’를 보냈다. 보건복지부 실무지침서에 따르면 긴급이용자(인권침해상황 발생 시 구제조치를 해야 하는 이용자 및 갑작스러운 사고 등으로 인해 무연고가 된 이용자)를 위한 구제조치가 시·군·구청장이 의무로 명시돼 있는데 제원씨가 이 긴급이용자에 해당한다는 판단에서다.
전씨는 “10달 동안 몸무게가 15㎏가량 줄었고 안전바 없이는 혼자 일어서지도 못할 정도로 상태가 안 좋다”며 “하물며 육중한 아들을 돌보는 것은 불가능해 사실상 제 아들은 생존위협상황에 처해 있다”고 말했다. 투병 전에는 아들이 위협을 하거나 말을 듣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 통제가 가능했지만 이제는 일방적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전씨의 발목에는 최근에 제원씨에게 당한 상처 위에 검붉은 딱지가 내려앉아 있었다.
강동구 측도 긴급이용자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다만 관내 장애인 거주시설이 이미 모두 과포화 상태인 탓에 구청장 직권으로 제원씨를 입소시킬 수 없다는 것이 강동구 측의 설명이다. 관내 시설 한 곳은 대기가 무려 60명에 달한다고 한다. 특히 제원씨처럼 의사소통이 거의 불가능한 최중증 발달장애를 가진 20대 성인 남성에 맞는 시설을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이 구청장이 직접 이 사안을 챙기며 서울시 등 전국에 공문을 보내 제원씨를 받아줄 시설을 물색하고 있지만 결과를 장담하기는 어려운 모양새다. 전영미 강동구 복지가족국장은 “구청장님도 아버님 상황을 굉장히 안타까워하시고 어떻게든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계신다”며 “다만 구 차원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 서울시와 계속 소통해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도록 해보겠다”고 말했다.
만약 강동구가 거주시설을 찾지 못한 상태에서 전씨가 숨을 거둘 경우 제원씨는 수용 여유가 있는 단기거주 시설 이곳저곳을 떠돌 수밖에 없다. 이 경우 환경 변화에 민감한 중증 발달장애인에게 큰 심리적 부담을 줘 자해나 타해 같은 ‘도전행동’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시설은 ‘축소’ 인프라는 ‘아직’…속 타는 장애 가정
이처럼 전씨와 강동구청이 거주시설을 찾는 데 애먹는 이유 중 하나는 정부의 장애인 ‘탈시설’ 정책이다. 장애인의 자립을 돕는다는 취지는 좋지만, 전씨의 아들처럼 24시간 밀착 돌봄이 필요한 최중증 장애인들에게 시설은 ‘감옥’이 아닌 ‘최후의 보루’이기 때문이다.
장애인 복지 정책의 패러다임이 자립지원 중심으로 바뀌며 2015년 3만명을 웃돌던 시설 수용인원이 현재는 약 2만7000명으로 줄었다. 이는 국내 발달장애인 인구(2024년 기준 27만3341명)의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이에 따라 2021년 843명이었던 시설 대기자는 2022년 1056명, 2023년에는 1223명까지 늘더니, 지난해에는 1500명을 넘겼다. 전씨는 “두 번째 시설에서 퇴소하는 날 원장님이 ‘예전 같으면 제원이를 맡을 수 있는데 이제는 못한다’고 했다”며 “탈시설이 국가 목표라서 해마다 정원을 축소하는 추세라 갈 곳이 점점 줄어든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그는 “몸이 불편한 장애인이나 경증 발달장애인에게는 시설을 나가 사회와 어우러져 사는 게 좋겠지만, 제원이 같이 의사소통이 안 되는 중증 장애인에게는 시설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불충분한 복지 사업 규모를 지적한다. 현재 ‘장애인의 선택권 존중과 맞춤형 돌봄’이라는 정책 방향은 맞지만 복지가 있어야 하는 모든 장애인에게 혜택이 돌아가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전지혜 인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최근 장애인 복지가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과거 부모나 친척에게 돌봄을 100% 책임지게 하는 구조에서 80% 정도로 낮아진 수준에 불과하다”며 “탈시설을 추진한 지 10년이 넘었는데 지역사회에 이를 위해 필요한 인프라나 복지 돌봄 서비스는 제대로 구축되지 않은 상황에서 시설 규모는 줄여버리니 중증 발달장애인 부모 입장에서는 시설에 매달리는 비극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씨는 제원씨 사진을 바라보며 “내가 눈 감기 전에 우리 아들이 살 곳이 정해지고 그곳에 잘 적응하는 게 내 마지막 소원”이라고 나지막이 읊조렸다.
채명준 기자 MIJustic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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