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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왜 그 일을?…제 ‘소명’이라 여기며 이 길 걸었죠”[여자, 언니, 선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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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1호’ 장례지도사 심은이
경향신문

지난달 5일 서울 서초구에서 만난 심은이 장례지도사. 2001년 ‘여성 1호’로 일을 시작한 그는 장례를 ‘소명’이자 ‘천직’으로 여기며, 숱한 편견 속에서도 고인을 존중하는 장례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간호조무사로 중환자실 근무 중
장례지도학과 생기자 1기로 입학
예전보다 나아졌지만 편견 여전

숱한 사연들 접하며 많은 깨달음
죽음 준비하는 사람들 점차 늘어
고인이 원하는 ‘이별’ 될 수 있게
남겨진 가족들과 세심한 소통

“좋아하는 일이라면 주변 시선은 신경 쓰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하는 일은 내가 밀고 나가면 된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장례에는 주인공이 참석하지 않는다. 장례를 치르는 건 유족과 조문객이고, 고인을 무사히 보내드릴 수 있도록 유족을 안내하는 것은 장례지도사의 일이다. 장례지도사는 장례 전 과정을 안내하고 사망진단서 확인과 염습·입관, 조문 예절 안내, 화장·매장 절차 관리 등을 총괄한다.

‘여성 1호’로 꼽히는 심은이 장례지도사(48)는 2001년 일을 시작한 이래 숱한 편견과 마주했다고 했다. 그럼에도 장례지도업을 계속한 이유로 그는 ‘소명’을 꼽았다. 장례 문화를 고인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바꿔야겠다는 책임감도 일할수록 커졌다. 그는 현재 평화누리에서 강사로 일하며 자신의 현장 경험을 미래의 후배들에게 전하고 있다.

누구나 겪는 죽음,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마지막 의례는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경향신문 여성 서사 아카이브 플랫은 지난달 5일 서울 서초구에서 심 장례지도사를 만나 수많은 ‘마지막 순간’을 목격하며 길어 올린 깨달음과 고민을 들었다.

그는 20대 초반 부산에서 장례지도사로서 처음 일하기 시작했다. 심 장례지도사는 “중환자실에서 간호조무사로 근무할 때 사람들이 고인을 함부로 다루던 태도가 머릿속에 남아 잊히지 않았다. 마침 장례지도학과가 처음 생긴다는 보도를 봤고,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돌아봤다. 주변인과 가족들이 “미쳤냐” “여자가 그 과를 왜 가”라며 말렸지만 ‘인생 멘토’인 어머니의 지지가 컸다.

1기 입학생이자 졸업생이 됐지만 당시 여자 동기들 중 현업에 남아 있는 사람은 없다. 업계 안팎에서 그는 ‘여성 1호’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심 장례지도사는 “그렇지만 ‘최초’ ‘1기’라는 표현은 좋아하지 않는다. 자격증을 땄다 뿐이지 이전부터 성당에는 여성 봉사자가 계셨고 현업에도 꾸준히 하신 분들이 계시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유족에게도 여성 장례지도사는 낯설었다. 심 장례지도사는 “상담하러 와서 남자 직원을 찾는다거나 하면 자존심이 많이 상했다”고 했다. 그렇지만 여성의 섬세함, 이성에게 맨몸을 보이기 꺼리는 문화 등으로 인해 최근에는 여성 장례지도사를 원하는 고인과 유족도 종종 있다고 한다. 그는 “여성 고인이 ‘남자가 손대지 않게 해달라’는 유언을 남기기도 한다. 남성 고인도 마찬가지”라고 전했다.

장례지도사란 직업을 향한 편견은 예전보다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존재한다. 심 장례지도사도 “결혼하면 그 손으로 시어머니 밥을 해줄 텐데”라는 말을 듣기도 했고, 취미 모임에서 직업을 밝히니 다른 사람들이 슬슬 피하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유족이 그의 면전에 소금을 뿌린 일도, 그와 손이 닿기 싫어 상복을 떨어뜨린 일도 겪었다.

이러한 시선을 견딘 힘을 그는 ‘소명’에서 찾았다. 그에게 소명은 다른 말로 ‘천직’이다. 그는 “소명의식이라는 건 이 일을 하면서 돈을 먼저 생각하지 않고 고인에게 집중하는 것”이라며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인데 남의 시선을 의식하다 보면 못한다는 걸 지나고 나서 알았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돈을 번다는 것에 감사하다”고 했다.

2019년 남편과 사별하며 그의 관심은 ‘남겨진 가족’들에게로 더욱 확장됐다. 심 장례지도사는 “그래도 나는 (호스피스에서) 준비를 했지만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한 유족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며 “유족과 상담하면서 ‘미리 준비하라’고 말하곤 했지만, 막상 의사가 내게 ‘준비하라’고 하니 상주 입장에서 준비한다는 건 정말 어렵구나 다시 한번 알게 됐다”고 말했다. 사별의 고통을 호스피스 봉사자 교육으로 치유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유가족 심리 상담을 공부하고 싶다고 했다.

고인의 다양한 사연을 접하는 장례지도사는 무엇을 깨닫게 될까. 심 장례지도사는 “인생 공부를 했다는 생각을 늘 한다. 예를 들어 사업을 하시던 분이 상가가 커져서 이제 자녀한테 일 맡기고 놀러 다니기로 했는데 암으로 돌아가셨다. 그때 느낀 감정은 ‘진짜 부질없구나’였다. 지금을 중요하고 소중하게 생각하면서 즐겨야겠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자녀들에게도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는 이야기를 항상 한다고 했다. “그러니 후회하면 안 된다고, 지금 이 시간을 감사하게 잘 살아가자”는 것이다.

사람들은 보통 죽음과 관련된 언급을 꺼린다. 장례를 ‘준비’한다는 개념도 낯설다. 심 장례지도사는 이 부분을 바꾸고 싶다고 했다. 그는 “내 장례인데도 내가 원하는 대로 하는 게 없지 않나. 고인의 생각을 반영하긴 하겠지만 남아 있는 사람들의 취향대로 가게 된다. 장례만큼은 그래도 내가 준비하고 가는 게 맞지 않나 생각한다”고 밝혔다. 고인이 바라던 대로 그가 좋아했던 책으로 제단을 꾸민 것, 유언에 따라 드레스를 입혀드린 것 등이 그의 기억에 남았다. 그는 “지금은 죽음을 준비하는 분들이 예전보다 늘어나는 추세다. 요청하시면 최대한 맞춰드리려고 노력한다”고 전했다.

최근엔 장례지도사에 도전하는 여성이 늘고 있다. 자격증 소지자 4분의 1이 20대 여성이라는 통계도 나온다. 그렇지만 여전히 장례지도사는 진입하기와 버티기 모두 쉽지 않은 직업이다. 심 장례지도사는 후배 여성들에게 “편견을 생각하면서 일을 포기했더라면 내가 좋아하는 일을 못했을 것”이라며 “주변 시선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격려했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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