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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지 쓸모를 위해 도서관서 엉덩이 붙이는 청년들 [노동의 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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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종필 평론가]

서울에는 매년 1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전입한다. 그 사람들이 원하는 건 뭘까. 각자 다르겠지만 대부분은 쓸모를 찾는 일이다.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취업준비생이나 시로 말하려는 시인 모두가 마찬가지다. 제주도에서 서울로 온 부영우 시인은 자기 자신의 쓸모를 찾기 위한 시도를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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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청년들이 고향을 떠나 서울로 몰린다.[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고향을 떠나는 사람들은 각자 자신만의 사연이 있다. 일자리를 찾아 고향을 떠나는 경우가 있을 수 있고, 가족과의 불화로 일찌감치 고향을 떠나는 경우가 있다. 지루하고 따분한 일상을 벗어나기 위해 시공간을 바꾸는 경우가 있을 수 있고, 사랑을 찾아 과감히 고향을 버리는 사람도 있다.


고향을 벗어나는 것이 자신의 의도이든 그렇지 않든 익숙했던 공간을 밀어내는 행위는 새로운 경험을 쌓게 한다. 동시에 닿을 수 없는 고향의 흔적과 직면해야 한다. 이 과정은 상처를 뚫고 올라오는 새살을 경험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최근에 읽은 부영우 시인의 첫 시집 「양재(시인의 일요일, 2026년)」 역시 이런 경험을 다룬다. "섬에서 자란 놈이 서울서 혼자 살면서/ 서울도 섬이란 걸 알게 됐어요"('한강을 건너요')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시인은 고향인 제주를 떠나 서울에서 느꼈던 감각을 시집에 재현한다.


동시에 제주에서 보낸 과거의 흔적 또한 상당 부분 많은 지면을 할애해 이야기한다. 그래서 부영우 시인의 첫 시집은 썰물과 밀물 사이에 놓인 작은 모래알처럼 과거와 현재의 감정을 동시에 담아내면서 지금, 이곳의 시간을 노래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시집이 의미 있다면, 한 청년이 고향에서 뿌리내려 살아가기보다는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 꿈꾸고자 했던 모습을 담아냈다는 데 있다. 고향의 감각과 낯선 땅에서의 감각이 새롭게 조합되는 과정에서 흘러나온 언어의 '맛'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 의미 있다.


시인 부영우가 청년의 '기준'은 될 수 없을지라도, 누구나 청년 아닌 적이 없으며, 삶 속에 시적 긴장을 품고 살아가는 이들은 누구나 청년이라는 점에서, 그의 목소리는 충분히 낯선 땅에 놓인 존재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데 손색없다.


시인 부영우는 자신이 "자란 곳에선 시가 잘 안 써진다"고 고백한다. 이유는 고향에서 경험하는 익숙함이 원인일 수 있고, 편안함이 원인일 수 있다. 하지만 그가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생활하는 과정에서 "섬에서 자란 놈이 서울서 혼자 살면서/ 서울도 섬이란 걸 알게 됐어요"('한강을 건너요')라고 깨닫게 되는 순간 사정은 달라진다. 낯선 곳에서 느끼는 실존적인 타자 의식으로 인해 다시 주변의 모든 것들과 새롭게 관계 맺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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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자료 | 국가데이터처, 참고 | 20~34세 기준] 


그가 제주에서 머물고 있었다면 이 경험은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먼 훗날 다시 제주에 복귀할 때 이 감정은 사라지지 않고 변주한다는 점에서 그가 용기 내 얻은 이 경험은 소중해 보인다.


서울에 와서 처음으로 기차 탔던 날

빠르게 흩어지는 풍경을 바라보며

뭔가 다짐한 것도 같았는데 이상도 하지

나는 가만히 있는데 풍경은 변하고

가만히 있는데 어른이 되고 아무것도 안 하는데 살아져

- '가만히 있어도 가는' 부분


그가 보고 있는 서울의 풍경은 낯설다. 이곳에서 어른이 되는 경험은 과거와 현재를 명확하게 구분하게 하는 자의식의 반영물이다. 이 자의식으로 인해 그는 "먼저 죽은 것들을 사랑"('한강을 건너요')하게 되는 능력을 갖춘다. 죽어가는 것을 메모하는 습관도 터득한다. 그의 첫 시집은 이것의 전시물이다.


그렇다면 시인에게 제주의 기억은 어떤 흔적일까. 이 시집에서 제주의 기억은 과거의 유물과 다름없다. 하지만 이 유물은 매번 새롭지만 익숙하지 않은 방식으로 감각되기 때문에 과거의 기억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누나와 양재를 걸으면서 속삭였던 "우리도 늙는구나"('나는 누나를 생각하며 양재에 가는데 누나는 나를 생각하면 철학이 떠오른다니')라는 말이라든지, "꽃을 보려는 마음"('면책')으로 고독하게 돌아가신 아버지를 응시했던 기억이라든지, "자기를 잘게 나누어서 그 위에 금가루 뿌리는/ 그것도 평생/새끼가 하얘져도"('마마') 챙기는 엄마의 사연은 서울 생활에서 더 깊게 길어 올릴 수 있었던 그리운 감정이다. 아마 시인이 고향을 떠나지 않았더라면, 이런 감각은 온전히 움켜잡지 못했을 것이다. 닿을 수 없어서 닿게 되는 자연스러운 이치다.


하지만 시인은 낯선 고향을 떠나 느껴야 했던 이방인의 정서라든지, 볼 수 없기에 닿을 수 있었던 가족의 애틋한 정서만으로 서울 생활을 채웠던 것은 아니다. 보통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노동자라는 점에서, 애쓰며 살았던 삶의 흔적은 과거도 미래도 아닌 지금, 이 순간을 주목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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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시인의 일요일 제공]


그가 이곳에서 꾸는 꿈은 별것이 아니다. "재수하는 조카 시험 치러 서울 왔을 때/ 맘 편히 잠이라도 잘 수 있도록/ 섬에 남은 친구 나들이 왔을 때/ 발 뻗고 놀다 갈 수 있도록/ 거실 딸린 방 한 칸 생겼으면"('독서실에서 시를 씁니다') 좋겠다는 소박한 공간 하나 얻는 것이다. 그 집이 자가이든, 전세이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 그의 목표이다. 그러나 이 바람이 쉽지 않다. 이방인이 서울에서 자신의 집을 얻는 것은 하늘에서 별 따기처럼 어려우니 그렇다.


그런데도 이 시집 속에 담긴 희망의 언어들은 사뭇 진지하다. "누구나 한 번쯤 빛"('거품-빛이 구멍에 걸려 있다')났고, 빛나려는 순간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확신으로 인해 절망적이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때 노동의 표정이 빛난다는 것이다.

독서실에서 시를 씁니다

시인증을 따려 하는데

어쩐 일인지 여기 사람들은 벌써 시인입니다

쓸데없이 귀가 밟아 애먼 소리 잘 듣고

괜한 사람 관찰해서 비꼬기 잘하고

책상에 붙은 미래의 자기와 대화할 줄 압니다

(중략)

사회인이 되려고 필사적인 이들에게

나도 부끄럽지 않으려고

힘을 내서 몽상하고 사색합니다

- '독서실에서 시를 씁니다' 부분

좁은 공간에서 사회인이 되기 위해 엉덩이를 붙인 채, 의자에서 일어나지 않는 취업준비생이나 시인은 쓸모 있는 존재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에서 비슷한 처지다. '쓸모'의 방식이 같지는 않겠지만, 함께 군집해 애쓴다는 점에서 독서실에서의 표정은 장엄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우리는 어디를 향해 가는 것일까. 그 정착지가 어디든 쓸모를 위해서 산다. 그 기저에 노동이 곁에 있다.


문종필 평론가 | 더스쿠프

ansanssunf@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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