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1일 싱가포르 한 호텔에서 열린 동포 만찬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26.3.1 |
(더쎈뉴스 / The CEN News 주진노 기자) 이재명 대통령의 3·1절 싱가포르 방문을 계기로 독립운동가 정대호와 정원상 부자의 삶과 싱가포르 한인회의 뿌리가 재조명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일 싱가포르 국빈방문 일정 중 현지 교민들과 만나고 SNS에 글을 남기며 "독립운동가 정대호 선생의 뜻을 이어 아들 정원상 선생이 1963년 창립한 싱가포르 한인회"라고 언급했다. 이 한 문장이 화제가 되면서 정대호의 생애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1909년 가을, 이토 히로부미가 하얼빈에서 암살되기 직전 안중근 의사는 의형제 가족들의 안전을 우려했다. 거사 이후 일본 경찰의 보복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안중근 의사의 부탁을 받고 진남포에서 하얼빈 수분하 지역까지 가족들을 안전하게 호송한 인물이 정대호다.
임무를 마친 뒤 일본 경찰의 의심을 받아 고문을 당했으나 끝내 입을 열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러한 행적은 정대호의 독립운동 의지를 보여주는 대목으로 남아 있다.
정대호는 1919년 상하이에서 임시정부 수립에 기여했으며, 1921년 김규식, 여운형, 여운홍, 조동호 등과 함께 신한청년당에 가입해 활동했다. 이후 1926년 중화민국 국부로 불리는 쑨원의 권유로 싱가포르행을 택했다. 당시 독립운동 자금 마련에 어려움을 겪던 정대호에게 쑨원이 현지 화교 사회와의 인연을 활용해 교사로 일할 수 있도록 도운 것으로 전해진다.
정대호는 1926년 싱가포르에 정착한 뒤 도남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며 독립운동 자금을 모으는 활동을 이어갔다. 1940년 8월 6일 싱가포르에서 별세했으며, 유해는 1990년에 국내로 봉환됐다.
정대호의 3남 정원상은 1910년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부친의 싱가포르 이주 과정에서 함께 건너간 것으로 추정된다. 부친 사후에도 현지에 정착해 생활했다.
1963년 3월 정원상은 7명의 발기인과 함께 싱가포르 한인회를 발족하고 초대 회장을 맡았다. 당시 교민 수는 17명 남짓이었고, 한국과 싱가포르 간 정식 외교관계도 수립되지 않은 시기였다.
정원상은 약 20년간 회장직을 수행하며 교민 사회의 기반을 다졌고, 2012년 향년 103세로 별세했다. 부친이 싱가포르 한인 사회의 출발점에 섰다면, 정원상은 이를 조직화해 공동체로 발전시키는 역할을 맡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일 교민들을 향해 "대한민국의 '민간 외교관'으로서 양국의 밝은 미래를 열어가 달라"고 당부했다. 이어 "먼 이국 땅에서 땀 흘리며 삶의 터전을 일구고 계신 재외동포 분들이 나라 걱정만큼은 하지 않게 해드리겠다"고 밝히고, "어디에 계시든 존중받으며 더 큰 기회를 누리실 수 있도록 정부가 든든히 지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1963년 17명으로 출발한 싱가포르 한인회는 현재 약 3만 명의 교민을 대표하는 단체로 성장했다. 금융, IT 등 전문직 종사자가 다수를 이루는 현지 한인 사회는 한-싱가포르 양국을 잇는 민간 교류의 한 축으로 자리하고 있다.
싱가포르 한인사의 출발은 독립운동가 정대호의 발걸음에서 비롯됐으며, 그 뜻은 정원상을 거쳐 오늘날 공동체로 이어지고 있다.
(더쎈뉴스 / The CEN News) 주진노 기자 evelev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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