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퍼너 월마트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말 마감된 월마트의 2026회계년도 실적보고서 첫 페이지에서 이같이 밝혔다. 당시 월마트는 연간 매출액이 전년대비 5.6% 증가한 1907억달러(환율 제외)로, 글로벌 전자상거래 매출이 매장 픽업과 배송, 마켓플레이스 부문 성장에 힘입어 24% 증가했다고 밝혔다. 세계 최대 오프라인 유통기업인 월마트는 글로벌 최대 e커머스 플랫폼 아마존과 경쟁에서 여전히 유통 시장 왕좌를 지키고 있다.
정부여당이 국내 대형마트의 심야영업 금지 규제 완화를 추진하면서 쿠팡이 장악한 새벽배송 시장이 재편될지 주목을 받고있다. 전국 수백개 점포를 보유한 대형마트가 새벽배송 경쟁에 뛰어들면 월마트처럼 온·오프라인의 결합을 통해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할 수 있어서다.
2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대형마트의 새벽배송 허용을 골자로 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이 지난달 잇따라 올라왔다. 김동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개정안은 대형마트와 준대규모점포(SSM)의 온라인 배송은 제한없이 허용하고, 오프라인 영업규제(공휴일 의무휴업)은 유지하는 내용이 담겼다.
김성원 국민의힘 의원은 SSM 가맹점을 영업규제에서 제외하고, 대형마트와 SSM에 대한 자정부터 오전 10시까지 심야영업 금지 규제를 삭제하는 내용이 담긴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이번 개정 논의의 핵심은 '물류'다. 현행 유통산업발전법은 오프라인 소비자를 전제로 한 규제였지만, 온라인 주문·배송까지 함께 묶이면서 대형마트의 심야 물류 활용을 원천적으로 차단해왔다. 반면 온라인 전업 플랫폼은 규제 밖에서 새벽배송을 확장하며 시장을 선점했다. 개정안은 매장을 열지 않더라도 점포를 물류 거점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이 같은 규제 비대칭을 해소하려는 취지로 풀이된다.
새벽배송 왜 중요한가…쿠팡 점유율 75%
새벽배송은 배송 시간을 앞당긴 서비스가 아니다. 소비자가 아침에 눈을 떴을 때 현관 앞에 상품이 놓여 있는 경험은 구매 빈도를 높이고, 구매 품목을 확장시키며, 특정 플랫폼에 대한 의존도를 강화한다. 생필품과 신선식품, 공산품을 한 번에 해결하는 소비 패턴이 정착되면 플랫폼은 생활 인프라로 기능하게 된다.
이 때문에 새벽배송은 수익성보다는 '락인(lock-in)' 효과가 핵심이다. 단기 손실을 감수하더라도 이용자를 붙잡으면, 이후 멤버십·광고·입점 수수료로 수익을 회수할 수 있다. 쿠팡이 수년간 대규모 적자를 감내하면서도 물류 투자와 새벽배송을 멈추지 않았던 배경이다.
현재 국내 새벽배송 이용자는 약 2000만명으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 쿠팡의 시장 점유율은 약 75%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단순한 선두를 넘어 사실상 독점에 가까운 구조다.
쿠팡 독점의 기반은 물류와 상품 구색이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쿠팡이 물류창고업으로 등록한 전국 물류 거점은 246곳이다. 여기에 로켓배송이 가능한 상품 수(SKU)가 500만개 이상으로 추산된다. 네이버 쇼핑의 도착보장 상품이 20만~30만개, 마켓컬리가 약 4만개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격차는 압도적이다.
1800여 점포 갖춘 마트…기존 새벽배송 업체도 긴장
대형마트 역시 전국 단위 점포망을 갖추고 있었지만, 영업 규제로 인해 이를 심야 물류에 활용하지 못했다. 전국에 흩어진 점포는 낮 판매 공간으로만 쓰였고, 새벽배송 경쟁에서는 사실상 출발선에 설 수조차 없었다.
규제가 완화될 경우 상황은 달라진다. 이마트·롯데마트 등 대형마트 3사가 보유한 전국 점포 수는 약 670곳이다. 이 가운데 온라인 주문을 받아 상품을 선별·배송하는 피킹 스토어 역할을 수행하는 점포는 69%에 달하는 460여 곳으로 파악된다. 여기에 SSM까지 포함하면 약 1800여개 점포로 늘어난다. 별도의 대규모 투자 없이도 새벽배송 거점으로 전환할 수 있는 인프라다. 점포 수 기준으로 보면 대형마트 업계는 쿠팡의 물류 거점 수를 웃돈다. 물류센터 중심의 쿠팡 모델과 달리, 주거지 인근 점포를 활용한 '생활권 밀착형 배송'이라는 다른 해법이 가능해진다.
대형마트 3사 가운데서는 이마트가 가장 유리한 위치에 있다는 평가가 많다. 쓱닷컴을 중심으로 온라인 주문·배송 체계를 이미 구축했고, 점포 기반 피킹 역량도 가장 앞서 있다. 수도권과 주요 광역시에 점포 밀도가 높아 새벽배송 초기 확장 속도에서 강점을 가질 가능성이 크다.
롯데마트는 롯데온과의 연계를 통한 통합 플랫폼 전략이 강점이지만, 실행 속도와 조직 간 조율이 관건이다. 홈플러스는 점포 접근성이라는 장점이 있으나, 최근 수년간 점포 폐점을 이어온 데다 현재 기업회생절차를 밟고 있어 새벽배송 경쟁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기에는 여력이 제한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대형마트의 진입은 컬리와 오아시스마켓 등 기존 새벽배송 전문업체에도 적잖은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이들 업체는 프리미엄 신선식품과 큐레이션으로 시장을 개척했지만, 상품 구색과 물류 규모에서는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다.
당장 컬리는 주문 당일 자정 전 상품을 받아볼 수 있는 '자정 샛별배송'을 도입하는 등 배송 시간 세분화 전략으로 대응에 나섰다. 오아시스마켓도 티몬 리오프닝과 연계한 새벽배송 강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연합뉴스 |
"시장 바꾸는 분기점 될 듯"…노동 이슈 넘겨야
업계에서는 이번 유통산업발전법 개정 논의가 쿠팡 독주를 단번에 무너뜨리지는 않더라도, 유통 시장의 균형점을 바꾸는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새벽배송이 특정 플랫폼의 특권이 아니라, 유통 전반의 기본 옵션이 되는 순간 경쟁의 기준은 다시 설정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미 시장에서는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리테일 분석 서비스 와이즈앱·리테일에 따르면 올해 1월 쿠팡의 월간 활성 이용자 수(MAU)는 3318만863명으로, 전달 대비 3.2% 감소했다. 한 달 새 109만9901명이 이탈했다. 지난해 12월 감소율이 0.3%에 그쳤던 점을 감안하면 낙폭이 크게 확대됐다. 지난해 말 발생한 개인정보 유출 사고의 여파가 본격적으로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실제 지난해 쿠팡의 연간 매출은 49조원을 웃돌며 성장세를 이어갔지만, 지난해 4분기만 놓고 보면 와우 회원 수는 10만명 가량이 이탈했다.
다만, 제도가 현실로 작동하기까지는 넘어야 할 변수도 적지 않다. 특히 대형마트 새벽배송 확산의 최대 변수로는 노동 이슈가 꼽힌다. 심야 시간 포장·분류·배송 업무가 늘어날 경우 근무 형태 변화와 인력 충원이 불가피하고, 노동계에서는 사실상 야간 노동 확대라는 반발 가능성도 제기된다.
소상공인 반대도 넘어야할 산이다. 지난달 정부여당은 소상공인 단체들과 비공개 간담회를 갖고 대형마트 새벽배송 허용에 대비한 상생방안을 논의하기로 했지만, 소상공인들은 규제 완화를 원점에서 재검토해달라고 요청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이번 제도 논의가 당장의 지각변동으로 이어지지는 않겠지만, 새벽배송 시장의 경쟁 조건이 달라지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며 "제도가 시행되더라도 새벽배송은 외형 성장 지표와 달리 고정비 부담이 매우 큰 사업인 만큼, 현장 수용성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확장 속도는 제한되고 시장 역시 체력 있는 사업자 중심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한예주 기자 dpwngk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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