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억원 금융위원장이 2월 23일 오후 서울 마포구 저축은행중앙회에서 업계(저축은행중앙회장, 12개 저축은행 대표), 유관기관(금융감독원, 예금보험공사), 전문가(금융연구원 박준태 박사)와 함께 '저축은행 건전 발전방안'을 논의했다. |
[서울경제TV = 이연아 기자] 금융당국이 저축은행 업권을 대상으로 과거 부실의 후유증을 마무리하는 동시에, 중장기 체질 개선을 본격적으로 요구하는 정책 패키지를 연이어 내놓고 있다. 예금보험기금 특별계정 운영기한을 1년 연장하며 잔여 부실 부담을 정리하는 한편, 생산적 금융 확대와 건전성 규제 정비를 통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에 편중된 업권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겠다는 구상이다.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안전망을 마지막으로 연장한 뒤 구조 전환을 요구하는 신호”라는 평가가 나온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2월 11일 예금보험기금 저축은행 특별계정 운영기한을 기존 2026년 말에서 2027년 말까지 1년 연장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특별계정은 2011년 저축은행 부실 사태 당시 금융시스템 전반의 위기 확산을 막기 위해 설치된 제도로, 은행·보험·금융투자업권 등 전 금융권이 예금보험료 일부를 분담해 운영해 왔다.
당초 특별계정 설치 당시 예상했던 지원 규모는 약 15조원이었지만, 이후 추가 부실이 발생하면서 실제 투입액은 27조2000억원까지 확대됐다. 이에 따라 2026년 말 기준 약 1조2000억~1조6000억원 규모의 결손이 발생할 것으로 전망된다. 금융당국은 운영기한을 1년 연장해 잔여 부채를 안정적으로 상환하겠다는 계획이다.
특히 이번 결정은 전 금융업권이 추가 부담에 동의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저축은행 업권의 건전성 문제가 금융 시스템 전체의 안정성과 연결돼 있다는 공감대가 다시 확인됐다는 분석이다. 금융위는 특별계정 연장을 위한 예금자보호법 개정을 추진하며 국회와 협의를 이어갈 방침이다.
◇ ‘지원’에서 ‘전환’으로…당국 정책 방향 변화
특별계정 연장 발표 이후 금융위가 곧바로 ‘저축은행 건전 발전방안’을 내놓은 점은 정책 방향의 변화를 분명히 보여준다. 단순한 지원이나 연착륙 조치에 그치지 않고, 업권의 사업 모델 자체를 재편하겠다는 의도가 담겼다는 해석이다.
2월 23일 금융위원장 주재로 열린 저축은행 CEO 정책간담회에서 당국은 생산적 금융 지원 확대, 영업 규제 합리화, 건전성 체계 고도화 등을 핵심 축으로 제시했다. 저축은행이 부동산 담보 대출 중심 성장 모델에서 벗어나 실물경제와 지역경제를 지원하는 금융기관으로 역할을 재정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금융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현재 저축은행 기업대출 가운데 부동산 및 건설업 비중은 45.2%에 달한다. 또한 수도권 지역내총생산(GRDP) 비중이 약 52.8% 수준임에도 저축은행 여신의 66.1%가 수도권에 집중돼 있어, 지역 금융기관이라는 정체성과 실제 자금 흐름 사이 괴리가 커졌다는 지적이 이어져 왔다.
금융위는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견기업까지 대출 대상을 확대하고, 비수도권 대출에 대한 예대율 우대 방안을 추진할 계획이다. 수도권 대출 가중치는 높이고 비수도권 가중치는 낮춰 자금이 자연스럽게 지역으로 흘러가도록 유도한다는 전략이다.
◇ PF 의존 줄이고 ‘생산적 금융’ 확대
이번 대책의 핵심은 PF 의존 축소다. 저축은행 업권은 그간 높은 수익성을 이유로 부동산 PF 대출에 집중해 왔지만, 부동산 경기 하강과 연체 확대가 겹치며 리스크가 누적됐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당국은 앞으로 저축은행 자금이 중소·중견기업, 개인사업자, 소상공인 등 실물경제 영역으로 보다 균형 있게 공급되도록 제도적 기반을 정비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유가증권 운용 규제를 완화해 혁신·성장 산업 투자 여력을 확대하고, 온투업 연계 투자 허용 등 신규 영업 기회도 단계적으로 검토한다.
또한 자산 1조원 이상 중·대형 저축은행에 대해서는 법인과 개인사업자 대상 신용공여 한도를 상향하고, 일정 조건을 충족하는 대형사에는 전자지급수단 취급 등 새로운 사업 영역도 일부 허용할 예정이다. 업권 경쟁력 강화를 위해 기존 ‘업무·부대업무’ 체계를 개편해 신규 업무 진입 문턱도 낮춘다.
◇ 규제 완화와 동시에 건전성 기준 강화
영업 규제 완화가 추진되는 만큼 건전성 기준은 오히려 강화된다. 금융위는 자산 5조원 이상 대형 저축은행에 대해 은행 수준으로 자본 규제를 단계적으로 고도화할 계획이다. 신용리스크 측정 방식을 세분화하고, 향후 시장·운영 리스크 기준 도입도 검토한다.
특히 기업대출에 대해 미래상환능력(FLC, Forward Looking Criteria) 기반 자산 건전성 분류를 도입해 사후 연체 중심 관리에서 사전 리스크 관리 체계로 전환한다는 방침이다. 이는 경기 변동에 취약했던 기존 평가 방식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소유·지배구조에 대한 규제도 강화된다. 대형 저축은행을 대상으로 자산 규모에 따른 단계적 지분 보유 한도 규제를 도입하고, 대주주 적격성 심사 체계도 개선해 공공성과 책임성을 높인다는 계획이다.
아울러 예수금 모니터링 체계 개선, 유동성비율 산정 방식 조정, 업권 차원의 자산관리회사 설립 추진 등 리스크 관리 인프라도 정비될 예정이다.
◇ 업권 반응 “기회이자 부담”
업계에서는 이번 정책을 두고 기대와 부담이 동시에 나타난다. 중견기업 대출 확대와 영업 규제 완화는 새로운 수익 기반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지만, 대형사를 중심으로 자본 부담과 내부통제 강화 요구가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저축은행 업계 관계자는 “정책 방향 자체는 PF 편중 구조를 완화하고 지속 가능한 모델로 가겠다는 점에서 공감대가 있다”면서도 “자본 규제와 리스크 관리 요구 수준이 빠르게 높아질 경우 중소형사와의 격차가 더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결국 업권 내 구조 재편 가능성도 높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자본 여력과 리스크 관리 역량을 갖춘 대형사는 사업 영역 확대를 통해 성장 기회를 잡을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중소형사는 경쟁력 확보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금융당국은 특별계정 연장을 통해 과거 부실에 대한 안전망을 사실상 마지막으로 유지해 주는 대신, 업권 스스로 미래 성장 모델을 재정립하라는 메시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이번 정책 패키지는 저축은행 업권을 단기적인 안정화 단계에서 중장기 구조개편 단계로 이동시키는 분기점이라는 평가다. PF 중심 수익 구조를 벗어나 생산적 금융으로 전환할 수 있을지, 그리고 지역·서민금융기관으로서의 정체성을 회복할 수 있을지가 향후 업권의 생존과 성장을 좌우할 핵심 변수로 꼽힌다. yalee@sedaily.com
이연아 기자 yale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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