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 평안북도 철산에서 태어난 노경억 소령(당시 대위)은 육군사관학교 제7기 장교후보생 교육을 마치고 1948년 소위로 임관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전면 남침이 시작되자 제17연대 대전차포중대장으로 웅진반도(현 공주 일대) 방어에 투입됐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전면 남침이 시작되자 제17연대 대전차포중대장으로 웅진반도(현 공주 일대) 방어에 투입돼 활약한 노경억 소령. [사진=국가보훈부 제공] 2026.03.01 gomsi@newspim.com |
북한군 기갑부대가 밀려오자 그는 57㎜ 대전차포 4문을 강령강 동쪽 강둑에 배치, 적 전차 측면을 정밀 조준 사격해 북한군 전차 3대와 장갑차 2대를 파괴했다. 당시 제17연대의 해상철수를 성공적으로 엄호한 이 전투는 개전 직후의 패퇴 속에서도 전선을 지킨 대표적 항전으로 기록됐다.
이후 노 소령은 계속된 전투 중 중상을 입고 후송 중 1950년 11월 23일 순국했다. 정부는 그의 공적을 기려 같은 해 12월 충무무공훈장과 1계급 특진(소령)을 추서하고, 1954년에는 화랑무공훈장을 추가로 수여했다.
란가라지 인도 육군 중령은 1950년 11월부터 1953년 2월까지 인도 제60야전병원 지휘관으로 복무하며, 국군·유엔군 부상자들의 생명을 지키는 '전장의 의사'로 활약했다. 외과·마취·일반의 등 341명 규모로 조직된 제60야전병원은 부산에 도착한 뒤 영국군 제27여단을 지원, 전선별로 이동하며 부상자 치료를 이어갔다. 평양 진출–흥남 철수–재반격 작전 등 주요 전투에서 혹한과 포화 속에서도 진료를 멈추지 않았다.
6·25전쟁 당시 문산 공수작전에서는 미 제187공정연대전투단과 함께 공수낙하 후 현장수술을 집도하기도 한 란가라지 중령. [사진=국가보훈부 제공] 2026.03.01 gomsi@newspim.com |
특히 1951년 2월 중공군 공세와 코만도 작전(Operation Commando) 당시 의료진은 총 대신 의약품과 수술기구를 들고 공격부대를 따라 이동, 전상자의 응급수술과 후송을 맡았다. 문산 공수작전에서는 미 제187공정연대전투단과 함께 공수낙하 후 현장수술을 집도하기도 했다.
란가라지 중령은 25개월간 최전선에서 직접 수술을 지휘하며 헌신했고, 인도 정부는 그에게 '마하르 비르 차크라(Mahar Vir Chakra)' 훈장을 수여했다. 이는 인도 최고 무공훈장 중 하나로, 전투 현장에서의 탁월한 용기와 공로를 기리는 상이다. 보훈부 관계자는 "노경억 소령과 란가라지 중령은 각기 다른 자리에서 '전우의 생명을 끝까지 지켜낸 영웅'으로, 한·인도 양국이 공유한 희생과 우정을 상징한다"고 말했다.
한편, 국가보훈부는 올해 '3월의 독립운동가'로 3·1운동 확산에 앞장선 여성 독립운동가 이선경(1902~1921), 조화벽(1895~1975), 김향화(1897~미상) 선생을 선정했다. 숙명여학교생으로 항일 신문을 배포하고 임시정부 합류를 시도하다 순국한 이선경, 개성과 양양 지역 만세운동을 이끈 조화벽, 수원 기생조합을 조직해 만세시위를 주도한 김향화 등은 여성의 헌신으로 3·1운동이 전국적 민족운동으로 확산되었음을 보여주었다. 정부는 이들의 공훈을 기려 각각 건국훈장 애국장, 애족장,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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