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의 최고지도자로 37년간 군림한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86)가 28일(현지 시간)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에 사망했다. 사진은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가 지난해 9월 23일(현지 시간) 이란 TV를 통해 연설하고 있는 모습. [AP 뉴시스] |
[헤럴드경제=장연주 기자] 이란의 최고지도자로 37년간 군림한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86)가 28일(현지시간)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에 사망하면서 그의 일생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알리 하메네이는 지난 37년간 신정체제의 정점에서 이란을 철권 통치해온 인물이다.
하메네이는 1939년 이슬람 시아파의 가장 성스러운 도시로 꼽히는 마슈하드에서 태어났다.
신학 교육을 거쳐 종교 지도자의 길을 걸었으며, 팔레비 왕정 시절에는 반정부 성향 인사로 활동하면서 수차례 투옥되기도 했다. 루홀라 호메이니에게서 신학을 배우며 그와 가까워졌고 정치활동에 나서기 시작했다.
그는 1979년 이슬람혁명 이후 그는 혁명 세력의 핵심으로 급부상했다. 혁명수비대 및 국방 관련 요직을 거치며 권력 기반을 다졌고, 이후 국회의원과 이슬람공화당 지도부를 역임했다.
1981년 대통령에 선출된 그는 두차례 연임하며 정치적 입지를 강화했다. 1989년 노환으로 사망한 호메이니 뒤를 이어 2대 최고지도자에 올랐다.
이란에서 종신직인 최고지도자는 국가 정책의 최종 결정권자로서 권력의 정점일 뿐 아니라 종교적으로도 신의 대리인으로 받아들여진다. 선출직 대통령과 의회가 존재하지만, 핵·미사일·대미 정책의 최종 결정권은 최고지도자에게 있다.
이란의 대내 정책의 최종 결정·집행 감독권, 각종 선거 승인권뿐 아니라 사법부 수장, 국영 매체 경영진, 대통령·내각의 임면권, 사면권 등 광범위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하메네이는 2003년 대량살상무기(WMD)를 금지한다는 파트와(종교지도자의 칙령)를 직접 발표했다.
2015년 온건파인 하산 로하니 대통령이 서방과 타결한 이란핵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에 회의적인 입장을 보이면서도 이행을 반대하지 않은 등 대외적으로는 실용적인 접근법을 취했다.
그러나 엄격한 이슬람 율법에 따라 대내적으로 여성, 동성애자, 종교적 소수자를 탄압하며 억압적인 정책을 펼쳤다.
1999년 개혁파 신문 살람이 폐간된 데 항의하는 학생 시위, 2009년 강경파인 마무드 아마디네자드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데에 반발하는 시위, 2022년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붙잡힌 22세 쿠르드족 여성 마흐사 아미니가 의문사하며 촉발된 대규모 반정부시위 등을 강경 진압했다.
특히 지난해 말 이란 핵개발에 따른 서방의 제재가 수년간 이어지며 누적된 경제난에 테헤란 상인들의 항의하며 시작된 시위가 올해 초 대규모 반정부시위로 번지자 IRGC와 바시즈민병대를 동원해 무차별적 유혈 진압을 밀어붙였다.
이 사태로 이란 당국은 사망자를 3117명으로 집계했지만 외부에서는 3만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추산했다.
이를 계기로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소요사태에 따른 군사개입을 시사하며 핵협상 재개를 종용했다.
미국과 이란의 3차회담이 열린지 이틀 만인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하메네이는 사망했다. 1989년 이후 37년간 이어진 하메네이 철권통치가 막을 내리게 된 것이다.
이란 헌법상 88명의 성직자로 구성된 ‘전문가 회의’가 차기 지도자를 선출해야 하지만 이번 공습으로 핵심 지도부가 제거된 상황에서 제대로 승계절차가 이뤄질 지는 미지수다.
하메네이는 최근 심복인 알리 라리자니 이란 최고국가안보회의(SNSC) 사무총장을 자신의 유고시 권력을 대리할 인물로 지정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