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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부전과 살아가기] 체한 게 아닌 우심실의 비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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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희 인천세종병원 심장이식센터장
이데일리
[김경희 인천세종병원 심장이식센터장] 심부전 환자들이 진료실을 찾을 때 가장 흔하게 호소하는 증상은 ‘숨이 차다’는 것이다.하지만 의외로 많은 환자가 내과나 가정의학과를 전전하며 위장약을 달고 살다가 뒤늦게 심장내과를 찾는다. 바로 ‘소화불량’ 때문이다. 이 환자와의 첫 만남 또한 그러했다.

2022년 가을, 지방에서 올라온 그녀는 잔뜩 겁먹은 표정이었다. 인근 대학병원에서 심장 판막 수술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수술이 두려워 다른 소견을 듣고자 인천세종병원을 찾았다고 했다. 검사 결과, 심장은 이미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심실 조기 수축을 동반한 부정맥, 심한 삼첨판 역류증(TR), 그리고 폐 고혈압 소견이 보였다. 당시 좌심실의 펌프 기능(EF)은 60%로 수치상으로는 괜찮아 보였지만, 진짜 문제는 ‘우심실’이었다.

우심실은 온몸을 돌고 온 혈액을 받아 폐로 보내는 역할을 한다. 이 우심실 기능이 떨어지면(우심실 부전), 혈액이 심장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간이나 위장관에 정체된다. 이로 인해 위장관 점막이 붓고 소화액 분비가 안 되어, 조금만 먹어도 배가 부르고 구토감이 드는 것이다. 환자가 호소하던 극심한 소화불량은 단순한 체기가 아니라, 우심실이 보내는 위험한 구조 신호였다.

내려진 진단명은 ACM(부정맥 유발 심근병증). 심장 근육 세포를 연결하는 단백질 유전자(PKP2, DSP 등)에 결함이 생겨, 근육이 서서히 지방이나 섬유 조직으로 대체되는 희귀 난치성 질환이다.

처음에는 판막 수술을 고려했으나, 정밀 검사 결과 수술은 불가능했다. 우심실은 좌심실보다 벽이 얇아 구조적으로 약한데, 이미 기능이 심각하게 망가진 우심실은 개흉 수술이라는 거대한 스트레스를 견뎌낼 ‘맷집’이 없었기 때문이다. 억지로 수술을 감행했다가는 심장이 다시 뛰지 않을 위험이 너무 컸다.

“수술은 무서우니 조금 더 지켜보자”며 약물 치료에 기대를 걸었던 환자의 바람과 달리 병은 야속하게 진행됐다. 결국 우심실이 무너지자 잘 버티던 좌심실 기능마저 35%까지 곤두박질쳤다. 의료진은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자칫하면 에크모(ECMO, 체외막산소공급장치)를 걸어야 할 수도 있는 일촉즉발의 상황. 나는 환자에게 심장이식을 강력히 권유했다. 하지만 환자는 덜컥 겁을 먹었다. 기약 없는 병원 대기 생활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위태로운 줄다리기가 이어지던 2025년 말, 환자에게 뜻밖의 계기가 찾아왔다. 척추협착증 통증을 견디다 못해 시술을 받으러 정형외과를 통해 입원한 것이었다. 나는 협진 의뢰를 받자마자 병실로 달려가 환자를 설득했다. “이제는 정말 물러설 곳이 없습니다. 여기서 나가시면 다시는 못 오실 수도 있어요.” 마침내 환자는 내 간곡한 권유를 받아들이고 이식 대기 등록에 동의했다.

결과적으로 이 입원은 신의 한 수였다. 기다리는 동안 환자의 손발은 얼음장처럼 차가워졌고 심장 상태는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었다. 만약 그때 허리가 아프지 않아 집에 머물렀다면, 그는 병원에 오지도 못한 채 자택에서 급사했을 것이다.

하지만 병원에서의 기다림 또한 고통의 연속이었다. 심한 우심실 부전으로 인한 위장관 부종 때문에 물 한 모금도 힘겨워했다. “입맛도 없고, 억지로 먹어도 바로 토해버려요. 사는 게 지옥 같아요” 살기 위해 먹어야 하는데 먹는 행위 자체가 고통이 된 상황. 유일한 희망은 심장이식뿐이었다. 하지만 환자의 혈액형은 O형. O형은 오직 O형에게만 받을 수 있어 대기 기간이 매우 길다. 우심실 부전이 심해 좌심실보조장치(LVAD)조차 삽입할 수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이었다.

환자를 지켜보는 일은 매일이 피를 말리는 기다림이다.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KONOS) 전산망을 수시로 확인하고, 환자의 응급도가 올라갈 때마다 서류를 갱신하며 마음을 졸인다. 병실에서 강심제 주사를 달고 하루하루 말라가는 환자를 보며 의료진과 코디네이터의 속도 타들어 갔다.

크리스마스 다음 날, 수술을 마치고 나온 흉부외과 동료가 지친 얼굴로 걱정스레 말을 건넸다. “올해 이식은 이걸로 끝일까요? 환자분 상태가 더 안 좋아지기 전에 기증자가 나와야 할 텐데요” 그 말속에 담긴 무거운 안타까움을 알기에, 나 역시 간절한 마음을 담아 대답했다. “아직 며칠 남았잖아요. 우리 조금만 더 기다려 봐요. 꼭 기적이 올 겁니다”

간절함이 통했을까. 바로 다음 날, 기적처럼 인근 병원에서 60대 뇌사 장기기증자가 발생했다는 연락이 왔다. 본원의 대기자가 1, 2순위에 올랐다는 소식에 코디네이터의 손이 바빠졌다. 코디네이터는 새벽 시간,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병동으로 전화를 걸었다. “환자분 저녁 와파린(항응고제) 드셨을까요? 혹시 모르니 내일 아침 식사는 금식하고 기다려 주세요” 구체적인 설명은 없었지만, 밤늦은 시간 코디네이터의 전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는 병동 간호사는 수화기 너머로 안도의 숨을 내쉬며 조용히 웃었다.

새벽 2시, 매칭 검사 결과가 나왔다. 1순위였던 다른 환자는 아쉽게도 교차반응 양성이 나와 수술이 어려웠고, 기회는 2순위였던 이 환자에게로 넘어왔다. 주말 새벽, 휴일을 반납한 적출팀과 수술팀, 마취과 의료진이 병원으로 집결했다. 한 생명을 살리기 위해 수십 명의 의료진이 톱니바퀴처럼 움직이는, 가장 뜨겁고 긴박한 밤이었다.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우심실과 좌심실이 모두 망가져 소화조차 시키지 못하고 부정맥으로 덜컹거리던 병든 심장은 이제 없다. 중환자실에서 만난 환자는 언제 그랬냐는 듯 식사를 깨끗이 비우며 환하게 웃었다. “지금이 천국 같습니다. 밥맛이 너무 좋아서 큰일입니다.”

ACM은 유전적 소인이 강한 병이다. 환자 본인의 치료도 중요하지만, 가족들에 대한 유전자 검사와 조기 스크리닝으로 비극을 미리 막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2025년의 끝자락, 마지막 주인공이 된 그녀가 병상에 앉아 밥 한 공기를 뚝딱 비우는 모습. 그 평범하지만 위대한 일상의 회복이, 우리가 이 치열한 현장을 지키는 이유이자 정답이다.

[잠깐! 의학 상식] ACM(부정맥 유발 심근병증)이란?

1. 유전자의 문제, 가족 검사가 필수 ACM은 심장 근육 세포 결합에 관여하는 유전자(PKP2, DSP, DSG2 등)의 변이로 발생한다. 유전성이 강하므로 환자가 진단받으면 가족들도 증상이 없더라도 심전도나 유전자 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안전하다.

2. 심부전보다 부정맥이 먼저 온다 일반적인 심근병증(DCM)이 심장 펌프 기능이 떨어지면서 증상이 나타나는 것과 달리, ACM은 심장 기능이 정상처럼 보여도 심실세동 같은 치명적인 부정맥이 먼저 발생해 급사할 위험이 높다. 운동 중 실신이나 심계항진이 있다면 정밀 검사가 필요하다.

3. 소화불량은 우심실의 눈물 ACM이 우심실을 침범하면 우심실 부전이 발생한다. 이때 전신에서 돌아온 피가 심장으로 못 들어가고 간과 위장에 고이면서(울혈), 심한 소화불량과 복부 팽만감이 나타난다. 이를 단순 위장병으로 오인해 치료 시기를 놓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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