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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미 철권통치’ 37년, 하루 아침에 폭사···이란 최고지도자 하메네이는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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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가 지난해 3월8일(현지시간) 전임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네이 초상화 아래에서 연설하는 모습. AP연합뉴스


미국과 이스라엘의 28일(현지시간) 공습으로 사망한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는 신정체제 이란에서 40년 가까이 절대 권력자로 군림해 왔다. 대외적으로는 반미 정책, 내부로는 군사력을 동원한 철권통치로 오늘날 반서방 동맹 ‘저항의 축’의 핵심인 이란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하메네이는 이란이슬람공화국 초대 최고지도자인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가 1989년 사망한 이후 최고지도자 자리를 이어받아 이날까지 37년간 집권했다. 종신직인 최고지도자는 정책 최종 결정권, 군 통수권은 물론 대통령 인준·해임권까지 갖고 있어 사실상 무소불위로 여겨진다.

하메네이는 1939년 이란 북동부 도시 마슈하드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이슬람 시아파 중간급 성직자였던 부친을 따라 신학자의 길을 걸었다. 호메네이와 인연을 맺은 건 19세 때인 1958년부터 이란 시아파 성지인 곰으로 이주해 신학을 배우고 정치 활동에 나서면서다. 1960년대 후반 국외 망명 중이던 호메이니 편에서 비밀 임무를 수행하고 이슬람주의 활동가 네트워크를 조직했으며, 이 과정에서 여러 차례 투옥됐다.

1979년 이슬람혁명으로 왕정이 폐지되고 현 신정 체제가 들어선 이후에는 승승장구했다. 호메이니 치하 국방부 차관으로 등용돼 공직에 입문했으며 최고지도자 보위 조직인 혁명수비대를 감독하기도 했다. 1981~1989년엔 성직자 출신 중 처음으로 대통령을 지냈다.

하메네이의 국내 통치는 반대파 숙청과 엄격한 이슬람 율법에 따른 소수자 탄압으로 요약된다. 1999년 개혁파 신문 살람 폐간에 항의한 학생 시위, 2009년 강경파 마무드 아마디네자드의 대통령 당선에 반발하는 시위, 2022년 ‘히잡 시위’ 등 진압에 군사력을 동원했다.

대외적으로는 반미·반이스라엘 노선을 유지해 왔다. 이란의 핵 개발은 방어적 권리이며 국제사회의 제재는 서구의 내정간섭이라고 주장해왔다. 그의 집권 기간 이란은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 예멘 후티 반군,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등과 지역 군사 동맹을 강화해 중동 내 반서방 세력의 주축으로 자리했다.

그러나 2023년 10월 가자지구 전쟁 발발 이후 이스라엘이 이란의 대리 세력을 궤멸하면서 하메네이의 영향력은 매우 축소됐다. 지난해 6월 미·이스라엘의 공습에 무력하게 당한 것도 시아파 맹주라는 이란의 위상에 큰 타격을 입혔다. 지난해 12월 발생한 대규모 반정부시위를 유혈 진압한 것은 민심 이반을 초래했다. 시위대 사이에선 “하메네이에게 죽음을” 구호가 나왔다.

CNN 방송은 “하메네이의 사망은 그의 취임 이후 이란이 가장 약해진 시기에 찾아왔다”며 “이란과 중동 지역을 미지의 영역으로 몰아넣는 지각변동”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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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현지시간) 이란 테헤란 한 광장에서 시위대가 전날 사망 소식이 전해진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의 모습을 담은 손팻말과 이란 국기를 들고 있다. EPA연합뉴스


조문희 기자 moon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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