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를 조작한 박테리아가 종양 내부로 침투해 증식한 뒤 암 조직을 단계적으로 공격하는 개념을 시각화한 이미지. 종양 중심부에서 활성화되는 박테리아 치료 원리를 표현했다. 챗GPT 생성 이미지 |
항암제가 잘 도달하지 못하는 종양 중심부를, 박테리아가 스스로 침투해 내부에서 무너뜨리는 새로운 항암 접근법이 제시됐다. 혈관이 부족해 약이 잘 스며들지 않는 종양 중심부(저산소 구역)를 미생물이 ‘서식지’처럼 활용하도록 설계한 접근이다.
바이오공학 융합 연구로 알려진 캐나다 워털루대 연구팀은 종양 내부에서 증식한 뒤 일정 조건에서만 생존 능력이 강화되도록 ‘유전자 스위치’를 탑재한 박테리아 설계 기술을 제시했다. 연구 내용은 과학 전문 매체 사이언스데일리(ScienceDaily)를 통해 25일 소개됐다.
● 항암제가 닿지 못하는 ‘암의 속’을 노렸다
고형암은 겉과 속의 환경이 다르다. 바깥쪽은 혈관이 비교적 존재하지만, 종양 중심부는 산소가 거의 없는 경우가 많아 항암제나 면역세포가 충분히 도달하지 못한다.
연구진이 주목한 지점이 바로 이 ‘암의 내부’다. 일부 박테리아는 산소가 부족한 환경에서 오히려 잘 증식한다. 종양 중심부가 박테리아에게는 일종의 번식 공간이 될 수 있다는 발상이다.
하지만 한계도 있었다. 연구에 사용된 클로스트리디움 계열 박테리아는 종양 내부에서는 잘 늘어나지만, 산소가 존재하는 종양 가장자리로 이동하면 생존력이 급격히 떨어졌다. 암 중심부에는 도달해도 공격을 끝까지 이어가기 어려웠던 것이다.
● “숫자가 모이면 공격 시작”…몸속에서 켜지는 유전자 스위치
연구진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박테리아에 산소 환경에서도 더 오래 생존할 수 있는 유전 기능을 추가했다.
다만 해당 기능이 처음부터 작동하면 정상 조직이나 혈류에서도 박테리아가 살아남을 위험이 생긴다. 치료가 아닌 부작용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연구팀은 ‘쿼럼 센싱(quorum sensing)’이라는 방식을 적용했다. 박테리아가 서로 신호물질을 주고받다가 개체 수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늘어났을 때만 특정 유전 기능이 켜지도록 만든 것이다.
박테리아는 먼저 산소가 거의 없는 종양 내부에서 충분히 증식한다. 이후 개체 수가 임계치에 도달하면 생존 모드가 전환되고, 산소가 있는 종양 가장자리에서도 더 오래 버티며 공격을 이어갈 수 있게 된다.
반대로 정상 조직에서는 박테리아 수가 충분히 늘어나기 어렵기 때문에 해당 기능이 쉽게 활성화되지 않는다.
즉, 종양 내부에서만 단계적으로 공격력이 강화되도록 설계된 일종의 ‘생물학적 안전장치’다. 연구진의 설계를 비유하면, 박테리아가 종양 내부에 충분히 침투했을 때만 작동하는 ‘기폭 장치’를 단 정밀 유도 시스템에 가깝다.
● 아직은 치료가 아닌 ‘조종 기술’ 단계
이번 연구의 핵심은 박테리아가 암을 실제로 제거했다는 데 있다기보다, 살아 있는 미생물을 종양 내부에서만 작동하도록 제어할 수 있는 설계 방식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연구진 역시 실제 치료 적용을 위해서는 안전성 검증, 면역 반응 확인, 정상 조직 영향 평가 등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암 치료의 과제는 단순히 강한 약을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약이 도달하지 못하는 영역을 어떻게 공략하느냐다. 이번 연구는 종양 중심부 같은 치료 사각지대를 겨냥할 새로운 접근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로 평가된다.
향후 항암제나 면역치료와 결합될 경우 기존 치료의 한계를 보완하는 전략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박테리아가 종양 중심부 구조를 먼저 흔들 경우, 그동안 내부까지 침투하지 못했던 항암제나 면역세포의 접근성이 높아지는 ‘협공 효과’도 기대된다는 분석이다.
참고
https://www.sciencedaily.com/releases/2026/02/260224023101.htm
최현정 기자 phoeb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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