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자 팔레비. 1979년 호메이니의 이슬람 혁명으로 축출되기 전 이란 마지막 국왕이었던 모하마드 레자 팔라비(1941∼1979년 재위)의 아들이다. 1980년 부왕의 사망 후 명목상 이란 국왕을 승계했다. 로이터연합뉴스 |
레자 팔레비는 2월28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군의 이란 공습 사실을 발표한 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페르시아어 연설 영상을 올렸다. 대상은 이란 국민과 해외에 거주하는 이란 동포, 하메네이에 저항해 온 이란 반체제 세력 등이다.
연설에서 그는 “미국 대통령이 용감한 이란 국민에게 약속한 지원이 도착했다”며 “이슬람 공화국이 붕괴의 길로 접어들었다”고 강조했다. 이는 앞서 트럼프가 ‘이란 국민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 ‘이란의 정권 교체를 희망한다’ 등 취지의 발언을 한 점을 거론한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14일 독일에서 열린 뮌헨안보회의(MSC)에 참석한 레자 팔레비는 “우리 동포들은 현 이란 정권을 완전히 무너뜨려 달라는 요구를 하고 있다”며 트럼프를 향해 “그들(이란 국민)을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이란에서 이슬람 공화국이 무너지고 새 정권이 들어서면 본인과 그가 이끄는 세력이 중요한 역할을 맡을 것이란 점도 분명히 했다. 레자 팔레비는 “우리의 최종 목표는 이란을 되찾는 것”이라며 “승리에 거의 다 와 있다. 빨리 여러분 곁에 서서 함께 이란을 되찾고 다시 세우고 싶다”고 외쳤다.
2월28일(현지시간) 미국 수도 백악관 근처에서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을 지지하는 시민들이 하메네이의 사망 소식을 접하고 성조기, 이란 국기, 레자 팔레비(이란 옛 왕세자)의 얼굴 사진 등을 흔들며 환호하고 있다. AP연합뉴스 |
레자 팔레비가 말하는 ‘이슬람 공화국’은 대통령 위에 이슬람 최고 지도자(라흐바르)가 존재하며 주요 현안에서 최종 결정권을 행사하는 정교 일치의 신정(神政) 체제다. 1979년 이란 혁명으로 팔레비 왕조가 무너지면서 초대 라흐바르에 오른 호메이니(1902∼1989)가 사망한 뒤 하메네이 전 대통령이 2대 라흐바르가 돼 40년 가까이 군림해 왔다.
1979년 혁명 당시 19세 청년이자 왕세자이던 레자 팔레비는 부왕 모하마드 레자 팔라비(1941∼1979년 재위)와 함께 국외로 망명했다. 아프리카, 중남미 등을 전전하다가 1980년 이집트에 정착했다. 부왕이 사망한 뒤 명목상 왕위를 물려 받았으나 이는 허울뿐이었다. 1981년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시민권을 취득하고 미국 대학에 입학해 정치학을 공부했다.
올해 1월 레자 팔레비는 미국에서 기자회견 도중 이란의 낙후한 경제를 비판하며 한국과 북한을 나란히 거론해 국내에서 큰 화제가 됐다. “(1979년 혁명 당시) 이란의 국내총생산(GDP)은 한국의 5배 이상이었다”고 운을 뗀 그는 “지금쯤 이란은 중동의 한국이 됐어야 했지만 되레 북한이 돼 버렸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레자 팔레비가 집권에 성공하면 이란·한국 관계가 급속히 가까워 것임을 암시한다.
하지만 미국 행정부는 하메네이가 죽었어도 이란의 체제 변혁은 당분간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메네이를 대체할 만한 반체제 운동 지도부가 허약한 상황에서 강경파가 헤메네이 후임으로 집권하면 지금의 이슬람 공화국 시스템이 계속 유지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란을 되찾겠다”는 레자 팔레비의 꿈이 과연 이뤄질 것인지 주목된다.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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