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테헤란 거처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86)는 지난 37년간 이란 신정체제의 정점에 서서 절대 권력을 행사해온 인물로 평가된다.
이란에서 최고지도자는 국가 정책의 최종 결정권자이자 권력 구조의 정점일 뿐 아니라 종교적으로도 신의 대리인으로 받아들여진다. 최고지도자는 대내 정책의 최종 승인과 집행 감독권, 각종 선거 승인권을 비롯해 사법부 수장과 국영 매체 경영진 임명권, 대통령·내각 임면권, 사면권 등 광범위한 권한을 행사한다. 파트와(종교지도자의 칙령 또는 이슬람 율법 해석)를 내릴 수도 있다.
1939년 4월 19일 이란 북동부 마슈하드에서 태어난 하메네이는 시아파 성직자 가문 출신이다. 네 살 때부터 이슬람 경전 쿠란을 익힌 것으로 전해진다. 그의 이름 앞에는 고위 성직자를 뜻하는 ‘아야톨라’, 이슬람 선지자 무함마드의 직계 후손임을 의미하는 ‘세예드’ 등의 호칭이 붙는다.
그는 1958년 시아파 성지 곰으로 옮겨 루홀라 호메이니에게 신학을 배우며 정치적으로도 밀착했다. 두 사람은 팔레비 왕조의 모하마드 레자 샤 정권에 맞선 반정부 운동을 함께 전개했고, 하메네이는 이 과정에서 여섯 차례 체포되고 3년간 추방되기도 했다. 이후 초대 최고지도자에 오른 호메이니는 하메네이를 국방차관에 기용하기도 했다.
하메네이는 1981년 대통령 모하마드 알리 라자이가 암살된 뒤 치러진 대선에 출마했다. 선거운동 중 녹음기에 숨겨진 폭탄이 터지는 암살 시도를 겪어 오른팔을 크게 다쳤지만 생존했다. 이후 치러진 선거에서 97%의 득표율로 당선돼 이란 최초의 성직자 출신 대통령이 됐다. 그는 취임 연설에서 “일탈과 자유주의, 미국의 영향을 받은 좌파 세력 제거”를 천명하며 강경 노선을 분명히 했다. 하메네이는 재선에 성공해 1989년까지 대통령직을 수행했다.
1989년 호메이니가 사망하자 일찍이 후계자로 낙점됐던 하메네이가 뒤를 이어 제2대 최고지도자에 올랐다. 이후 반대 세력을 숙청하고 충성파를 육성하며 권력 기반을 더욱 공고히 했다. 또 이란이 이스라엘에 대한 ‘저항 축’ 구축을 목표로 지원한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와의 관계를 강화하며 대외 강경 노선을 주도했다.
국내 통치에서는 엄격한 이슬람 율법을 근거로 여성과 성소수자, 종교적 소수자에 대한 억압 정책을 지속했다. 2022년 히잡 착용 규정 위반으로 체포된 쿠르드족 여성 마흐사 아미니의 의문사 이후 촉발된 전국적 반정부 시위를 강경 진압한 것도 대표적 사례다.
지난해 말 서방 제재로 누적된 경제난 속에서 테헤란 상인 시위가 전국적 반정부 운동으로 확산되자 혁명수비대(IRGC)와 바시즈 민병대를 동원한 유혈 진압을 단행했다. 이 과정에서 대규모 사상자가 발생해 국제사회 비판이 고조됐다.
이 같은 내부 불안과 대외 긴장이 격화되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란 소요 사태를 계기로 군사 개입 가능성을 시사하며 핵 협상 재개를 압박해 왔다. 이후 미국과 이란 간 3차 협상이 열린 지 이틀 만인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이 단행됐고, 하메네이는 테헤란 거처에서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완기 기자 kingear@sedaily.com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